은퇴 후 이제부터 진짜 인생을 즐기겠다는 남자와 내 인생은 여기 있다며 어쩐지 시큰둥한 여자.생기 가득한 눈으로 하고 싶은 일들을 나열하며 같이 하자고 조르는 남자가 귀엽기도 하고, 내일로 다음으로 자꾸만 미루는 여자의 심정도 이해가 되어요. 긴 세월 함께 살았어도 각자가 처한 상황은 달랐을 테니 삶의 태도 또한 다를 수 있지요. 서로 달라서 서로의 오목한 부분을 볼록하게 채워줄 수 있었을 테고요. 그러나 책장을 덮고 나면 어쩐지 두 사람이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림의 여운 위로 그제서야 글이 안착하는 느낌. 책의 마지막 문장은 어쩌면 두 사람이 한 목소리로 독자들에게 외치는 것일까요? 인생이 설거지든 다른 무엇이든, 쌓아두어서는 안 된다고요. 인생은 지금이니까요. 책의 장면장면이 다 좋지만 두 사람이 푸른 이불을 덮고 누운 장면도 참 좋아요. 밤낚시하던 지난 날의 추억을 이불 삼아 덮은 두 사람의 마음이 처음으로 같아 보이거든요. 여자가 마음을 돌린다면 이 장면이 그 시작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우리가 인생은 지금이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은 모순적이게도 지난 날을 돌아볼 때인 것 같아요. 좋든 나쁘든 모든 날들은 지나간다는 것,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을 더 소중히 여기게 되더라구요. 오늘을 가꾸는 일에 소홀해질 때마다 펼쳐보고 싶은 책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