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엽 감는 새 1 - 도둑까치 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199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태엽감는 새 전 4권은 살아가는 길을 갑자기 차단당한 주인공 오카다 도오루가 어떻게 다시 자신의 삶의 방향을 회복하는가를 다룬 글이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아내의 가출로 인해 지금까지의 자신의 삶이 순식 간에 붕괴되는 사태를 경험하게 된다. 자기와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며 살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아내의 가출은, 주인공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인공을 삶의 미아 상태로 전락시키고 만다. 그리고 이러한 아내의 까닭모를 가출을 묻고 그녀를 되찾고자 하는 노력 속에서 그는 자신의 삶이 태엽 감는 새의 태엽을 끊임없이 감는 행위를 통해서만 비로소 유지됨을 깨닫는다. 깜깜한 우물 바닥 속에서 발견된 빛의 화사함은 말하자면 너무나도 익숙해져 당연시되고 있는 우리의 삶이 실은 끊임없는 죄임 없이는 언제나 붕괴의 가능성을 안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밝음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죄임은 과연 어떻게 가능한가. 먼저 출구가 없는 골목, 날수 없는 새, 물이 없는 우물 등은 햇빛 속에 어지럽게 움직이던 주인공의 삶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꽉막혀 버렸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막힘은 그 주변의 인물들로 확장되어 간다. 몇 겹으로 얽혀있는 현실 속에서 자신의 현실을 찾고자 하는 여러 등장 인물들은 그 누구나가 이러한 막힘을 경험하고 있는 수라장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수라장을 떠받치는 하나의 맥은 없는 것인가. 마미야 중위를 통해 저자는 먼저 이러한 수라장을 통일하는 원리로서 운명을 제시한다. 나는 나라고 하는 인간이 그냥 지나가는 길에 불과하다는 말은 어쩌면 생에 대한 체념같이도 느껴진다.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체념에서 멈추지 않는다. 태엽 풀린 새는 다시 태엽을 감고 말라붙은 우물은 다시 물을 뿜어내는 우물로 재생되고 있기 때문이다.

삶은 어쩌면 단순히 내 몸을 통과하는 커다란 흐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삶의 태엽, 달리 말하면 어떤 빛을 자신의 빛으로 선택할 지는 자신의 문제이다. 저자는 분명 내 몸을 통과하는 하나의 거대한 흐름을 주체적으로 자신의 흐름으로 살 것을 요구한다. 내 몸을 통과하는 그 무엇을 보는 주체가 되는 것 자체가 삶의 특권이자 의의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무의미할지도 모르나 삶의 태엽을 죄이는 행위는 자기가 어디에 있으며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해가는 유일한 길이라는 말이다.

이 소설의 매력은 이처럼 무엇보다도 수많은 가치관의 혼재와 부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의 의미와 무의미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태엽감는 새는 말하자면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의 표류하는 삶을 지탱하는 삶의 나침반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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