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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산책
다니구치 지로 지음, 주원일 옮김 / 애니북스 / 201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다니구치 지로의 작품을 가장 먼저 만난 것은 "산책"이었다.
주인공이 유유자적하게 산책을 다니면서 일본 거리의 모습을 표현한 소위 말하는 힐링계 에세이 만화였다.
그 다음으로 눈에 띄인 것은 "우연한 산보". 이 또한 "산책"의 연장선상에서 일본의 거리 모습을 느긋하게 즐기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에도 산책"을 구매함으로써 현재 정발된 다니구치 지로의 "산책" 시리즈를 다 모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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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다니구치 지로의 작품 세계는 넓고 다양하여 "신들의 봉우리", "시튼", "고독한 미식가" 등 유명한 작품들의 분위기는 내가 접한 작품들과는 좀 다른 편이다.
그러나 위 세 작품을 통해 다니구치 지로의 작품을 처음 접해서 그런지 다니구치 지로의 인상은 일상의 거리와 그 안에 깃든 느긋하고 섬세한 분위기를 묘사하는데 탁월한 작가로 남아있다.
특히 앞의 두 작품이 현대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에 비해 가장 최근에 읽어본 "에도 산책"은 도쿄의 옛 이름인 에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상당히 흥미롭다.
이름 모를 주인공은 에도의 거리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사계절에 상관없이 산책을 즐기며 보폭을 이용한 측량을 하고 있다. 애니북스 카페의 설명에 의하면 우리 나라의 김정호와 같은 실존 인물이라고 한다. 지도를 만들겠다는 그의 커다란 야망과는 별개로 그를 통해 실제 에도의 거리를 산책하는 것 같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작가 특유의 묘사력으로 에도의 풍경을 생생하고 세세하게 표현하고 있어 읽고 있으면 나도 같이 에도의 풍경에 빠져드는 느낌이 든다.
만화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인간의 시점만이 아닌 다양한 시점으로 에도를 바라보는 장면은 탁월한 발상으로 생각된다. 만화 속에서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주인공의 특수한 능력인데 그는 가끔 동물의 시점을 빌려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가능하다. 이것이 그의 꿈인지 환상인지 모르겠지만 여러 동물들의 시점으로 바라보는 장면이 꽤 인상적이었다. 특히 잠자리와 개미의 시점 표현이 흥미로웠다. 이런 묘사를 보고 있으면 작가의 다른 작품인 "시튼"에서는 동물들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한번 보고 싶어진다.
이 작품은 알게 모르게 다양한 일본 문화를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있다. 하이쿠와 만담가의 등장씬이 그렇다. 하이쿠는 저런 경치를 보면 저런 시상이 떠오르겠구나 하며 감탄을 하였고, 만담은 사실 문화적 차이인지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그리고 중간중간 주인공이 즐기는 식사는 직접 먹어보고 싶을 정도로 무척 맛있어보였다. 이 식사 장면들을 보고 있으면 작가의 다른 작품인 "고독한 미식가"가 저절로 떠오른다.
추천 포인트 :
옛 일본의 풍경을 느긋한 마음으로 즐겨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는 작품이다.
옛 일본 문화도 가볍게 알 수 있어 그쪽에 관심이 있는 사람도 읽어볼만한 것 같다.
이 만화에는 아름답고 마음이 평온해지는 좋은 장면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다음 장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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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과 오에이(아내?)가 달을 담아 한잔 하는 장면. 나도 저곳에서 같이 한잔 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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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차분한 성격의 오에이가 주인공을 은근히 디스하는 장면. 개인적인 이 작품 최고의 웃음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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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우연히 펼쳤다 깜짝 놀랐던 장면. 호러 만화로 장르가 바뀌는줄 알았다. 어떤 장면인지는 직접 보기를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