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위의 주먹 - 2023 뉴욕타임스 올해의 그림책
엘리즈 퐁트나유 지음, 비올레타 로피즈 그림, 정원정 외 옮김, 이경신 감수 / 오후의소묘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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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아름답다. 비올레타 로피즈의 그림만으로도 이 그림책은 소장각. 책에서 새소리와 풀벌레소리, 기타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림책으로 숲을 산책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니! 


그림이 워낙 아름다워 한참 정신이 팔렸지만 몇 번을 읽고 나니 이 그림책이 진짜 아름답다 느껴지는 이유는, 학교에 다닌 적 없어 글을 모르고, 전쟁과 가난에 밀려 타국에서 이주해왔으며, 젊을 적엔 집도 없이 공사판에서 일했고, 온몸에 문신이 가득한,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말을 하는 할아버지가, (아무래도 이런 묘사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해내기란 쉽지 않다) 아이의 눈엔 특별한 손을 가진 정원사이자 최고의 요리사이며 앙리 루소같은 멋진 그림을 그리면서 새와 고양이와 소통할 줄 아는 더없이 경이로운 존재로 그려진다는 점. (이거 한문장인 거 실화인가)

아이가 느끼는 경외의 감정은 비올레타 로피즈의 신비로운 그림으로 한층 생명력을 얻는다. 문맹 이민자 할아버지라는 (세간의 시선에서) 작은 존재는 그림의 아름다움이 강력할수록 아이의 눈에서 더욱 더 커다란 숲같은 존재가 된다. 어쩌면 문신일지도 모를 할아버지의 몸은 아이의 눈에 할아버지의 정원 그 자체. 글과 그림이 공명하며 얻어지는 층위와 풍성함은 대부분의 그림책이 가진 매력이겠지만 이 책에서 특히 눈부시다.

아이는 할아버지에게서 학교에서는 배우지 않는 땅의 가르침을 얻지만 이 관계는 일방통행이 아니다. 아이가 집 대신 카라반에서 자면 여행하는 기분일 거라며 부러운 마음을 드러내고 할아버지의 모국어로 노래를 부르면서 좋아하며 난닝구를 선물받고 신이 날 때, 할아버지의 어떤 순간들은 아이의 시선에서 뒤집혀 반짝인다. 아이와 할아버지가 나누는 우정은 어쩌면 흔한 주제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소하다면 사소한 순간에 슬쩍 감춰둔 이런 태도가 마음을 움직인다. 

원서와 한국어판의 표지그림이 다른 것도 흥미롭다. 숲으로 물든 할아버지의 손과 하얀 도화지같은 아이의 손이 만나는 장면은 책을 다 읽고 나면 한층 뭉클하게 다가온다. 

내게도 조카들이 있다. 아이들의 책장에 꽂아줄 것이다. 이 이야기가 왜 아름다운지 몇 번을 들춰보며 생각하는 동안 아이가 한 뼘 더 자랄 수 있다면 무척이나 기쁠 것 같다. 


나는 루이 할아버지가 만들어 내는 이상한 말들을 정말 좋아해.
"섬 위에 주먹을 날려라!"
이건 서로 솔직하게 말하자는 뜻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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