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과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4월
평점 :
품절


60대 킬러 조각.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청부 살인을 업으로 삼아오며 업계에 명망을 떨쳤지만 몸도 기억도 예전 같지 않자 퇴물 취급을 받는다. 흘러간 세월만큼 변해버린 주변과 달라진 세상의 태도에 조각에게도 이전과는 다른 마음이 생겨난다.

노인, 여성, 킬러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세 개의 키워드가 한 데 묶여 새로운 영역을 구축했다. 주인공 조각이 가지고 있는 서사만큼이나 다른 등장인물들의 서사도 탄탄하다. 그들의 사연이 모여 굵직한 뼈대를 이룬 이야기는 지루할 틈 없이 흘러간다. 평범하지 않은 서사를 가진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는 만큼 두 번째로 읽을 때에는 다른 인물에게 시선이 갈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여전히 조각에게 집중하게 된다.

잘 짜인 구성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조각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조각의 삶을 쫓아가다 보니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했던 조각이 흘러들어간 골목이 그곳이 아니었다면, 그 순간 만난 사람이 류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조각이 타인을 신경 쓰는 게 나이가 들어서 새롭게 생겨난 감정이 아니라 그의 마음속 한구석에 늘 자리 잡고 있었지만

애써 외면해왔던 감정은 아닐까? 등 조각에 대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누구나 각자의 이야기와 사연을 가지고 있다. 흘러온 세월의 크기만큼 살아남은 그들의 모습은 쉽게 바뀔 수 없다. 하지만, 깨지고 상한 손톱도 다듬고 관리하면 그 손끝에 불꽃놀이가 일어날 수도 있는 법이니까. 잃어버린 게 많아도 살아있다면 빛이 다시 차기 마련이니 조각의 시간이 조금은 편안해지길 파과를 보는 순간마다 생각한다.

깨지고 부서져도 다르지 않은 #파과


▷ P. 225 l 달콤하고 상쾌하며 부드러운 시절을 잊은 그 갈색 덩어리를 버리기 위해 그녀는 음식물 쓰레기 봉지를 펼친다. 최고의 시절에 누군가의 입속을 가득 채웠어야 할, 그러지 못한, 지금은 시큼한 시취를 풍기는 덩어리에 손을 뻗는다. 집어 올리자마자 그것은 그녀의 손안에서 그대로 부서져 흘러내린다.

▷ P. 342 l 그러나 이 순간 그녀는 깨지고 상하고 뒤틀린 자신의 손톱 위에 얹어놓은 이 작품이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그것은 진짜가 아니며 짧은 시간 빛나다 사라질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파과 #구병모 #위즈덤하우스 #책 #책스타그램 #책리뷰 #책기록 #독서스타그램 #독서리뷰 #독서기록 #플로버책숲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