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아니었으면 좋았을 텐데 - 길 위에서 만난 나와 너, 그리고 당신의 이야기
조아연 지음, 고요한 사진 / 하모니북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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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이 단어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가슴 한 켠이 솜방망이 치듯이 쿵쿵거리는 설레임을 가지게 되곤 한다. 이 지구상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삶에서 늘 갈망하지만 쉽게 행하지 못하는 일들 중 하나가 바로 여행일 것이다. 누구는 경제적 이유로, 또 다른 누군가는 시간적 이유로 각자 저마다의 상황으로 인해 쉽사리 떠나지 못하며 우리는 변함없는 오늘, 일상을 살아가는 중이다.

우스개 소리로 가진 것이 없으면 떠남도 쉽다는 말이 있다. 소유와 일탈의 관계 사이에서의 어떠한 공식이 성립되는지는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삶을 바라보는 개인의 시선에 따라 여행의 방향과 과정들이 달라짐은 지명한 사실이다.

작가는 일상의 무게를 벗어나고자 수많은 여행을 계획하고 떠남의 반복을 그녀의 언어로덤덤히 풀어내고 있다. 그녀가 마주한 많은 나라의 도시에서의 계절, 음식, 색깔, 향기 들이 사진과 글로 다가와서 귓가에 속삭이며, 어느새 나를 그 장소에 데려가 앉아 있는 상상을 하게끔 해준다.

‘그래, 그랬겠다.’ 라는 충분한 이해와 시공간을 넘어 그녀와 나란히 앉아 같은 풍경을 바라보는 느낌이 책을 읽는 내내 함께 한다. 그것은 바로 나와 같은 사람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들이기에 내게 더 성큼 다가와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다.





여행은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들을 당연하지 않은 일로 만들었다. p.21

아마도 이런 일상이 일상적이지 않은 순간이 될 때까지 난 여행을 할 것이다. p.23

그래서일까 틈만 나면 도망칠 궁리를 했고 또 도망쳤다. 그리고 가능하면 아주 선명하고 선연하게 그곳을 떠올릴 수 있도록 두 눈으로 사랑하는 것들을 가득 담았다. 그 덕에 다시 그럭저럭 끔찍한 일상을 버틸 수 있었다. … 그렇게 사랑했음에도 잊는 것은 한 순간의 일이었다. P.43

이따금 떠오르는 기억의 편린들은 무더운 여름날의 소나기와 같아서 나도 모르게 넋 놓고 감상하게 된다. 아는 맛에 추억이 더해지면 그 음식은 강력한 기억의 매개체가 된다. 그 소소한 기억들이 나라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p.47

어른이 되어버린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싫어하는 일들은 확실해졌다….. 있잖아 사실 취향이라는 건 기름지고 넉넉한 토양에서 피어나는 꽃이 아닐까.p.61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햇빛이 주는 행복으로 마음 구석구석이 잘 마른 빨래처럼 따끈해졌다. 그 해 여름은 낭비로 가득했다. 우리는 가지고 있는 시간을 한 톨로 남기지 않고 훌훌 털어 행복을 샀다. p.71

한동안 부다페스트의 비는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비가 내린다고 해서 그 도시는 빛을 잃지 않았다. p.94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여행을 떠나라는 말은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이 건조해지기 때문이리라. 마음이 건조해진 인간은 쉬이 감동하지 못하고 좋은 것을 봐도 그것보다 더 좋은 것들을 떠올린다. 현재를 온전히 즐기지 못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나이를 먹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하지만 나이를 먹는 일은 꼭 나쁘지만은 않다. 나이를 든다는 것은 나도 몰랐던 새로운 나와 만나는 일이기도 했다. 어쩌면 나이를 먹는다는 건 이전과 다른 방법으로 무엇인가를 즐길 수 있게 된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황홀하게 멋있는 장소에서 적당히 사진 몇 장을 찍고 불편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수다를 떠는 재미를 알게 되는 것. p.152

아주 오래 여행을 떠날 거야. 짧으면 일 년 길면 그것보다 조금 더. 여행을 핑계로 나는 일상의 많은 것에게서 도망쳤다. 여행은 아주 정당하고 그럴싸한 핑계였기 때문에 누군가의 기쁨도 무너지는 슬픔도 함께하지 못한 채 그저 짧은 메시지로 모든 것을 대신했다. 여행을 떠나 있는 나에게 그 누구도 직접적으로 서운하다고 말하지 않았고 나 또한 그런 반응을 당연하게 여겼다. 일상에서 멀리 떨어져 나왔기에 소중했던 것들을 홀대해도 괜찮다는 면죄부가 쥐어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느낌은 여행을 조금 가볍게 만들어 주었다. p.161

여행은 누군가의 노동의 현장을 엿보는 일이기도 하다. 생계를 위한 노동의 순간이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장면으로 기억되는 그 순간을 우리는 여행이라고 부른다. p.167

#여행이아니었으면좋았을텐데 #교보북살롱 #쉐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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