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7 아무일도 없었던 해
황런위 지음, 박상이 옮김 / 가지않은길 / 1997년 11월
평점 :
절판


대학원 2학기차에 학교에서 '예학연구' 수업을 들었다. '예'가 무엇인가를 탐색하는 수업이었다. 그 때 교수님은 정치와 예의 밀접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황런위의 '1587년 아무 일도 없었던 해'를 읽어보라고 하였었다. 그리고 2년여의 시간이 흐른 지금 우문연 RT에서 황런위의 책을 읽는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다시 '1587년-'을 떠올리게 되었다. '정말 아무일도 없었던 걸까?'

옆에 친구는 내가 책 읽는 것을 보고서 '아무 일도 없었는데 왜 읽어?' 하고 묻는다. 일면 타당한 질문이다. 책을 다 읽어 보니 1587년 그 해에는 중국에서 정말 아무런 특별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아무런 일도 없었기 때문에 아주 의미있는 해이다. 정중동이라 하지 않았는가? 1587년의 고요 속에는 명조 200년의 결과와 누루하지에 의해 명망할 미래 황실의 운명이 담겨 있었다. 이 책은 독자에게 아주 특별한 선물을 준다. 황런위의 친절한 설명을 통해 우리는 예치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정말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듣기만 해도 지루한 황실의 예식들, 그리고 그 중심에 서 있는 박제가 된 황제의 모습은 가히 애처롭기까지 하다. 또 부록도 있다. 이 책은 명왕조에서 왜 상업이 발달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하나의 설명을 제공한다.

'명조에서 상공업은 경제의 중요요소로 간주되지 않았기 때문에, 상공업으로 얻은 소득도 농업으로 얻은 소득과 똑같은 방식으로 분배될 뿐 경제발전의 원동력인 산업자본으로 전환될 기회를 갖지 못했다. 명조는 관료집단의 통일과 협조를 가장 중요시하였다. 관료집단은 홍무제의 간소한 농경사회에 대한 구상을 받아들임으로써 국가 경제의 윤할류 역할을 할 수 있는 상업의 활성화와 발달에 적극 나서지 않았다. 상공업이 발달했더라면, 명조의 행정체계와 정치철학, 법제도, 관직체계는 상당히 달려졌을 것이다. 두 가지 상반된 철학과 그에 근거한 행정방식은 결국 충돌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부조직은 상공업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통제할 능력이 없었기에 상공업의 활성화를 금지했다. '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말로 끝을 맺는다. '1587년은 겉보기에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해였다. 그러나 그 당시 명조는 발전의 한계지점에 도달해 있었다. 그 당시 상황에서는 황제가 성실한가 무책임한가, 수보가 진취적인가 보수적인가, 고급 무장들이 독창적인가 무능한가, 문관들이 청렴한가 부패한가, 사상가들이 진보적인가 보수적인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들은 모두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지 못했다. 따라서 우리는 비극적인 결론을 내려야 한다. 1587년 정해년의 연감은 실패의 기록으로 역사 속에 남겨질 것이다.'왜 명조의 관리들은 그들의 진가를 발휘할 수 없었을까? 이는 중요한 사실이고 의미있는 질문이다. 언제 어디서나 물을 수 있는 물음이기 때문이다. 황런위가 보여주는 명조를 들여다보면 그 답을 찾아보는 것은 어떻까? 재미가 솔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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