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너리 푸드 : 오늘도 초록 띵 시리즈 3
한은형 지음 / 세미콜론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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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에서 완두콩을 보면 늘 마음이 급해졌다. 어서 집으로 데려가고 싶다는 생각에. 어쩌자고 망사 주머니도 연두색인지연두색 망사 틈으로 보이는 완두콩의 꼬투리색과 형태가 완벽하다. 이 꼬투리를 엄지손가락으로 눌러 가르고, 벌려, 콩알들이 얼굴이 내미는 순간을 보는 건 도무지 지루하지가 않은 것이다. , 이 연두가 주는 흥분이란. (본문 중에서)

 

이제 막 피워 오른 연두는 여린 입 안 같다. 지난봄은 대체로 혼란스러웠고,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 갔다 하는 마음을 조금 잠재울 수 있었던 건, 연두와 함께 흔들리고 투명해지는 시간 덕분이었다.

조금만 빨리 걸으면 이마에 땀이 맺히는 것이, 차차 한여름 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다. 봄의 나와 지금의 나는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연두를 보는 것만큼, 적당한 온기를 지닌 책이 있기에. 다가오는 계절에는 조금 더 나아질 거라는 무언의 믿음을 갖게 되었다.

근래에는 띵 시리즈인 세 번째 책 오늘도 초록을 소중히 읽었다. 띵 시리즈는 민음사 출판그룹의 만화, 예술,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세미콜론에서 올해 3월 론칭된 시리즈다. 간단히 말하자면 음식 에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오늘도 초록그리너리 푸드라는 주제로 발간되었다. 책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었던 건 연두색인 표지 색이었다. 그리고 와인잔, 콜리플라워와 아티초크가 그려진 심플하고도 귀여운 디자인이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선 시리즈의 소개 문구에 항상 들어가 있는 <‘인생의 모든 하는 순간, 식탁 위에서 만나는 나만의 작은 세상>이라는 눈에 띄는 문장이 좋다. ’나만의‘, ’작은‘, 그리고 발음이 재미있는 까지! 이어서 표지를 넘기면 에디터의 편지가 나온다. 저자의 서문도 아닌, 말도 아닌, 그야말로 에디터의 편지. 요즘 에세이집을 읽으며 즐겁게 살피는 부분이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글이다.

무엇보다 전체적인 책의 만듦새가 마음에 들었다. 한 손으로 들고 읽기 좋은 작은 판형과, 잘 구부러지는 부드러운 표지, 손가락에 착 감기는 무광 재질의 촉감이 좋았다. 작은 천 가방에 툭, 넣어 다니기에 알맞았고 초록의 기운이 가득한 야외에서 읽으면 맑고 눈부신 기운으로 지은 옷을 입는 듯한 느낌이 들어 내가 여름을 좋아했던가, 생각해보기도 했다.

맛의 묘사와 음식의 생김새가 생생하게 떠올려지는 문장은 정말이지 황홀하다. 싱싱하거나 시큼하거나 담백한 맛이 입속에 뒤엉켜 고이는 느낌. 막연히 출출해지는 기분. 연한 낙지와 미나리의 은은함, 달고 시큼한 장아찌의 냄새, 말랑하고 순수한 아보카도의 맛, 포도잎 쌈의 깔깔함, 민트와 쿠민의 색과 고기 결 등 재료들의 조화와 색감을 떠올리고 맛을 상상하다가 안타깝게 침을 꿀꺽 삼킨다. 아무래도 먹방보다 더 괴로운 건 먹글이 아닐까.

저자는 우연히 들른 식당에서 주키니를 맛있게 먹고 나선, 다음날 주키니를 사서 간단한 요리를 만들어 먹는다. 이후 때에 따라 주키니에 버터를 넣거나 오일을 넣거나 새우를 넣어, 자신의 입맛에 가장 맛있는 레시피를 만든다. 재료의 조화와 조합에 신경을 쏟고, 시간에 따라 재료를 다르게 넣는 등, 우연을 나의 행복으로 만드는 분명한 행동력이 무척 닮고 싶었다. 그래서인지 글 속에선 한 그릇에 온전히 담긴, 맛의 풍요로움이 자유롭게 느껴진다. 초록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것의 기가 방울방울 매달려 반짝이는 책이다. 나아가는 여름에는 이 책을 쓰다듬으며 조금 더 환해져 봐야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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