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파이 나누는 시간
김재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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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하는 별처럼 빛을 잃어가는 우리 존재를 위로하는 가장 낭만적인 문학적 상상력"

 

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자신에게 던져진 상처와 아픔을 인내하며 살아가는 주인공들 때문에 가슴이 시려왔지만 한편으로는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각 단편마다 저자만의 개성이 느껴지고 유려한 문장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에 만나 본 한국 소설 중에서 내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은 책이라 할 수 있다
초신성, 암흑에너지, 중성자별등 우주론적 존재의 이야기들은 신비로움으로 다가왔고 진화에 관련된 이야기들은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저자의 세상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는 내 주변에 존재하는 것에 대해 사람과 사물들을 돌아보게 했다
탁월한 묘사 문장들은 여러 번 읽게 만드는 매력을 지녔고 소설 곳곳에서 낭만적인 문장들을 음미하는 즐거움도 있었다

<사과파이 나누는 시간>을 쓴 김재영 작가의 글은 처음 접한다
이주민의 삶과 인권문제를 다룬 장편 소설 <코끼리>는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그녀의 글이 어떤 매력과 감동을 선사할지 기대감 없이 펼쳤는데 기대 그 이상이었다
책은 제목으로 설정된 「사과파이 나누는 시간」과 「미로, 모기, 특별한 만찬, 「얼음 사과」, 무지갯빛 소리, 그 섬에 들다,
더 러브렛 까지 총 여덟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회의 어두운 면을 다양한 배경과 인물 설정으로 흥미롭게 이끌어 간다
재개발과 관련해 국가의 잔인한 폭력 앞에 삶이 송두리째 무너진 사람들의 이야기와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문제, 삼포세대, 사랑, 소통의 단절 등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의 고통을 드러낸다
현대의 자본주의 논리로 양산된 과도한 경쟁과 차별은 삼포세대를 출현시켰고 사포세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더 나은 삶을 꿈꾸고 무던히도 애쓰지만 우리에게 남은 건 무기력증과 불안감에 허덕이는 현재의 참담한 모습뿐...
독립적으로 구성된 각 단편마다 주인공들의 우울감과 외로움이 전해진다
그들의 결핍과 상처는 무엇으로도 채워지거나 치유되기 힘들지만 비록 소외되고 존재감이 미약하더라도 세상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와 희망을 품을 수 있다는걸 발견하게 된다
세상은 암흑물질 같은 평범한 우리 소시민들이 유지시키는 것이니까...
세상 모든 것이 반짝여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사랑하는 것도 자신의 꿈을 펼치기에도 녹록지 않은 현실... 저자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패되고 부조리한 것들로 생긴 상처에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고  그 환부를 따뜻하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보듬는다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소시민들이기에 소외와 상처로 몸부림치는 그들의 모습에서 일정 부분 나의 모습도 보여져서 가슴 한켠이 먹먹했다
우리 삶에 애잔함이 느껴지지만 우린 모두 중성자별의 자녀들이니까 조금은 낭만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권리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사과파이 나누는 시간>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부모를 잃고 홀로 살아가는 미래와 그녀의 친구인 우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주와 미래... 그들의 이름은 희망적이지 않은 현실에서 희망을 찾고자 하는 작가의 바램은 아니었을까?
미래는 뉴욕에서 몇 개월을 여행하다 한국으로 돌아와 부모님과 함께 살던 옛집으로 들어가지만 주인 잃은 집의 모습은 흡사 그녀의 고통스럽고 암울한 현실을 대변하는듯하다
나라로부터 외면당하고 억울한 누명까지 뒤집어쓰며 소중한 가족을 잃은 평범한 소시민인 우주...
과거와 현재 시점을 오가며 부드럽고 담담한 어조로 차분하게 전개되는 서사는 그래서인지 더욱 무게감 있게 마음에 와닿는다
잔잔하고 아련하게 묘사되는 이야기 속엔 깊은 슬픔이 어룽거린다
그래서 오히려 더욱 남다른 공감과 생각을 하게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마당에 자라고 있던 주목나무는 그녀가 품고 싶고 발견하고 싶은 희망이라는 다른 이름은 아닐런지 생각해 본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불행들~
소설 속 허구의 이야기지만 곧 우리의 현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현실감이 느껴져 소설속으로 빠져들었다

누구나 잘 살아보겠다고 애쓰지만 우리 사회에서 목격하게 되는 수많은 사건, 사고에 대해 명확한 책임과 사과를 받는다는 건 찾아보기 힘들다
억울함을 호소해도 해결되는 것을 털끝 만큼도 기대하기 어렵다
저자가 밀란 쿤데라의 소설 「무의미한 축제」에서 인용한 문장을 자꾸만 되뇌어 본다

"그래도 나는 사람들이 모두 빠짐없이, 쓸데없이, 지나치게, 괜히, 서로 사과하는 세상, 사과로 서로를 뒤덮어버리는 세상이 더 좋을 것 같아."

사과할 수 있는 용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감정이다
그러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게 함정이긴 하지만 말이다

김재영 작가의 글은 우리의 참담한 현실을 다루어 문제의식을 드러내면서도 작가 고유의 서정적인 문체, 현실 너머의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우리의 고통을 중화시켜 살아갈 수 있는 힘의 원동력을 마련해 주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녀만의 섬세하고 탁월한 문장과 진정성 있는 사유와 인간애는 현재의 아픔과 상처를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승화시키기에 충분하다

책에도 나와 있듯 일보 전진하고 이보 후퇴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비인간적이고 비인격적인 여러 사회 현상에 노출되어 있지만 아름다움의 지푸라기 하나 건져 올리기를 바란다는 저자의 말처럼 그녀의 글을 통해 공감하고 따스한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발견하게 된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사과파이를 나누어 먹으며 서로의 마음을 전하고 위로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그래도 살아갈 만한 인생이라고 축복해 주고 싶다

 

 

 

 

"바로 그거야. 재밌잖아? 이 세상도 재벌이나 권력자, 유명인이 아니라 암흑물질처럼 평범한 사람들로 채워져 있고, 결국 그들이 사회를 지탱하고 있다는게." ---31p

 "이런 어둠 속에서는 어떤 꽃이든 일찍 시들고 말아. 모하비 사막으로 가봐, 아가씨. 모하비는 인디언 말로 생명을 뜻하지. 거기서 소금나무를 찾아야 해. 수만 년 전엔 그 풀도 바다에서 살았다지, 아마. 바다 밑에 있던 땅이 솟구쳐 사막이 된 뒤에도 바다 풀들이 살아남아 나무가 되었다고 들었어. 소금기를 간직한 그 나무를 끓여 마시면 바다의 힘이 아가씨를 되살릴 거야." ---70p

 

인간의 언어를 대체할 다른 소통 도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는 차라리 바랐다. 벌 춤처럼 사랑이 쉽게 눈에 띄기를. 꽃향기처럼 공기 중에 퍼져 전달되기를. 돌고래의 초음파 언어처럼 먼거리에서도 분명하게 느껴지기를. 누군가를 이해하고, 또 사랑한다는 것은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가장 사랑한다고 여기는 순간부터 서로를 오해하기 시작하고, 제멋대로 판단하고, 무시해버린다. 다시 낯선 존재가 되어 기어코 떠날 때까지. ---244~24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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