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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풍경 -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 개정증보판
김두식 지음 / 교양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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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종교를 인정받는 방법`이 `타인의 종교를 인정하는 것`이라는 이야기. 비단 종교에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은 구절.

따지고 보면 양심의 자유, 사상의 자유, 종교의 자유가 그리 쉽게 구분되는 개념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무신론도 일종의 신앙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가끔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들의 처벌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보수적 기독교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중국에서 기독교인들을 탄압하는 공산주의자들의 모습이 저렇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볼 때가 있습니다.

자기 종교의 자유를 지키려고 하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다른 사람의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지켜주는 데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자기 사상의 자유를 지키려는 공산주의자라면 기독교인들의 종교를 지켜주는 데 남보다 더 열심일 수 있어야 합니다. 음란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요? 예를 들어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가 출판되었다고 칩시다. 기독교인들은 그 작품에 대해 청소년의 영혼을 좀먹는 쓰레기 같은 책이라며 구입 거부 운동을 벌일 수 있습니다. 서점 앞에서 "기독교인이라면 <즐거운 사라> 같은 쓰레기를 파는 이런 서점에서 절대로 책을 구입해서는 안됩니다." 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보이콧을 선동하는 시위를 벌여도 좋습니다. 이것도 역시 표현의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국가 공권력이 <즐거운 사라>의 저자 마광수를 붙잡아가려고 할 때에는, 마광수와 어깨를 겯고 함께 싸울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기독교 서적이 청소년들의 이성을 마비시킨다는 명분으로 판매 금지되고 저자가 붙잡혀간다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이는 반드시 필요한 태도입니다. 종교의 자유, 양심의 자유, 사상의 자유가 일종의 형제 관계이듯, 그 우산 아래 보호를 받는 우리 `이상한 사람들`도 헌법 아래에서는 일종의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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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
최민석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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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를 잃는다는 것에 대해서 나는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요즘 읽고 있는 한강 작가의 장편소설 『희랍어 시간』에서도 말을 잃은 여자의 이야기가 나오기는 하지만, 그것은 또 `언어 그 자체`를 잃는다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상실이니까.
여튼, 부르스는 언어를 잃었고, 생존을 위해 익힌 언어는 부산 사투리였고, 방송 출연 후 동료들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서울말을 익혔다. 그런데 그들과의 소통을 위해 영어를 배워야 하다니, 게다가 내가 잃어버린 (그러니까 원래 가지고 있던) 언어가 영어였고. 그 영어를 다시 배워야 하다니. 으아아아. 영어라니. 오늘의 나에게, 우리에게 영어란 어떤 존재였던가.

최민석 작가의 `외계인 이야기`사이에 은근슬쩍 끼워넣는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 그 말들을 참 좋아한다.

자신들의 경험과 가치관에 부합하면 그것은 진실이고, 불편하면 거짓이다. 이 나라에서 소통이라 일컬어지는 거의 모든 것이 이러한 식으로 작동되고 있었다. 간편하고, 이기적인 방식이다.

"나여, 부르스. 나, 라돈치치. 나 못 알아보겄는감."
심각한 충청도 사투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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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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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랑탕에 다녀와 페이스북에 사진을 남기는 데, 내 가이드였던 칸차가 그런 말을 했다. ˝Not enough to visit one time in Nepal...˝ 그 글을 보자마자 고개를 끄덕였다. 칸차의 말의 의미가 단순히 네팔에 가볼만한 곳이 많아서가 아니라 한번 다녀오고 나면 그곳이 사무치게 그리워져서일 것이라 생각했다.

다녀온지 9개월쯤 되었지만 가끔 생각이 난다. 아무 생각 없이, 원대한 목표 없이, 그저 한 발, 한 발 내딛었던 걸음. 그 날의 하늘, 구름, 바람. 눈 부시던 눈.

그야말로 네팔병에 제대로 걸려버렸다.

`네팔병`이라는 게 있다고 한다. 한 번 히말라야에 다녀오면 반드시 또 가고야 만다는 불치병이란다. 여정의 험난함과 육체적 고통 속에서 누리는 영혼의 자유로움, 온전히 자기 자신과 만나는 특별한 순간들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고산병만큼이나 흔하게 걸린다는 이 지병에서 나 역시 피해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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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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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전에 누워서 `읽다가 자자`라는 마음을 편 책. 결국 끝까지 읽고. 엉엉 울다가 잠들었다. 읽는 나도 이리 힘들었기에 글을 쓰는 작가는 정말 마음이 힘들었겠구나, 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그날의 광주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다면 이런 것이었던 것 같다.
`이 이야기를 쓰지 않고서는 다른 이야기도 할 수가 없다 / 힘들어도 써야만 했던 이야기다.' 후에 북콘서트에 가서 작가님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마주해야만 했던 그 진실의 무게가 소설을 써 나가는 힘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어도. 마주해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다. 분명.

암것도 속에 없는 허재비 같은 손을 맞잡고, 허재비 같은 등을 서로 문지름스로 얼굴을 들여다봤다이. 얼굴 속에도 암것도 없고, 눈 속에도 암것도 없는 우리들이 내일 보자는 인사를 했다이.
무섭지 않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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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주인
레지 드 사 모레이라 지음, 이희정 옮김 / 예담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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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졸업앨범을 보는데 나의 장래희망에 `책방아줌마`라 적혀있더라.

그리고 성인이 된 어느 시점에 내가 좋아하는 일, 좋아하는 것들을 모아서 들여다보니 `책`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연결지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형제와 누이들은 책방 주인이 사는 도시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세상 곳곳에 흩어져 살다가 가끔 책방 주인이 보내오는, 여러 책에서 뜯어낸 페이지를 우편으로 받았다.
아무런 설명 없이.

책방 주인은 이따금 생각했다. 자신이 죽으면 형제와 누이들, 그리고 조카들이 세상 어느 한구석에 모여 울고 웃으며 축하해주면 좋겠다고. 그때 그들이 받았던 페이지들을 모두 모아 책방 주인의 책을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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