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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성경 2단 국판 (지퍼) - 금장.반달색인
주교회의성서위원회 엮음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 201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가톨릭 성경을 구입했습니다.
사실 어떤 사람의 인터넷 상 의견을 보고, 이 성경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의견은 몇 몇 우리 글 번역 본들을 비교하며 특정 성경구절을 언급했는데, 다음의 예가 제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심으로 이 세상과 사람들에게 그분의 외아들을 주셨고, 그 목적은 사람들이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는 내용이지요. 위에 언급한, 인터넷 상으로 의견을 주신 사람은 몇 몇 번역 버전, 우리말 성경, 공동번역 그리고 바로 이 가톨릭 성경을, 윗 요한복음 구절을 기준으로 그 느낌(읽는 자의 마음에 어떻게 다가오는가)을 비교해 놓으신 것이이었지요. 다른 번역 본들에서는, 예를 들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느낌의 번역들이 많았는데, 이 가톨릭 성경은 "하나님이(정확히는 하느님이)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같은 말씀이지만, 어떻게 번역을 하는가에 따라 읽는 사람의 마음이 다르게 반응할 수 있음을 우리가 압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위 사람이 비교하시면서 언급하신 바, "너무나 사랑하셔서..."의 "너무나"라는 부사의 사용과 "얻게 하셨다,"라는 '사실'에의 강조를 품은 번역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래서 큰 마음을 먹고 구입을 했습니다.
자, 서론이 좀 길었지요. 그러나, 이 글에서는 바로 이 서론이 가장 중요합니다.
어떤 책이던, 다른 문화로 그 책이 소개되려면 번역이 필요함을 우리는 알지요.
번역의 중요성은 책을 대하는 모든 사람들이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위에서와 같이, "너무나" 라는 단순한 부사가 "사랑하셔서"라는 동사 앞에 붙었을 때, "이처럼"이나 "많이" 혹은 "지극히"라는 부사에 비해 뭐랄까, 읽는 제 마음을 더 크고 깊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였을 때, 읽는 사람의 사색이 더 깊어지는데 큰 기여를 하게 되는 셈이지요.
물론 이것은 '너무나' 개인적인 저란 사람의 견해일 뿐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우리가 가장 중요시 해야 하는 점임을 저는 믿습니다.
즉 주관적인 접근이 필요한 것이지요, 어떤 번역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해 말이지요.
자신의 마음에 와닿는 글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른 책들도 그렇지만, 성경 역시 누가 번역을 했느냐에 따라 조금씩 느낌이 다릅니다.
우리가 알 듯이, 어떤 번역자도 완벽하게 번역을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모든 번역된 글들에는 장단점이 있지요.
정말로 형편없는 번역이 아닌 이상, 어떤 번역이 어떤 다른 번역보다 더 좋다, 나쁘다, 따지는 것은 시간낭비일 수 있고 불필요한 일 일 수 있습니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고, 각 사람의 주관과 개성, 특성이 반영되므로, 번역 역시 마찬가지 인 것이지요.
아무튼, 그래서 이 가톨릭 성경을 구입해서 잘 읽고 있습니다.
다른 번역본 성경들과 비교하며, 함께 읽기에 좋은 것 같아요.
가능하다면, 이렇게 다른 번역 본들과 대조해가며 읽는 것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역시 제 개인적 견해입니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으실 사람들을 위해 간략하게 성경의 원어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구약은 히브리어에서, 신약은 그리스어에서 번역이 되는 것이 통상적입니다.
현대인의 성경은 영문성경에서 번역한 버전의 성경이고, 킹제임스 성경을 한글로 번역한 버전들 역시 영문(1600년대 영국 영어)에서 번역한 것이지요. 물론 이 두 번역본의 원본인 영문성경들은 위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에서 번역된 것이고요. 혹시라도 참고가 되신다면 좋겠네요.
개인적으로 여러 한글 번역버전들을 갖고 있고 함께 대조도 하며 읽는 편인데, 제 개인적으로는
모든 번역 버전들이 장단점이 있습니다. 어떤 버전이 더 좋고 나쁘다라는 판단은 제 개인적 견해로는 불필요하며 또한 위험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저 겸손한 마음으로, 기쁘고 고마운 마음으로 스스로의 주관에 기초해서 긍정적으로, 열린 마음으로 흡수하면 되는 것이겠지요.
역시 참고로, 가톨릭에서는 공동번역(70년대에 가톨릭과 개신교가 힘을 모아 함께 보려 번역한)을 사용하다가 2000년대 들어오면서 이 '성경'을 새로 번역했다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공동번역도 함께 보고 또 참 좋아하는데 - 그 취지도 좋고 번역도 좋고 - 아무튼, 이 가톨릭 성경도 참 좋은 것 같습니다. 개신교 사람들도, 만약 원하신다면, 열린 마음으로 이 가톨릭 성경을 읽어보면 좋을 듯 합니다. 결국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예수 그리스도도 한 분이십니다. 본질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지요.
아 그리고, 이 가톨릭 버전의 번역본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이유 중 또 하나는 그 이름이 단순하게 그저 "성경"이라는 점입니다. 책 표지에 "성경"이라고만 써 있으니 참 좋더군요. 참고로, 가톨릭에서는 이 성경을 공식적으로 부를 때 새성경이라 한답니다, 아마도 전에 사용하던 공동번역과 구분하기 위해서겠지요.
결론적으로, 모든 버전들의 한글 성경들이 저는 다 좋습니다.
각각의 버전들마다 장단점이 있겠고 또 느껴지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읽는 사람의 마음이리라 저는 생각하고 또 믿습니다.
성경 뿐 아니라 다른 책들도, 번역된 글들을 접할 때는 보다 열린 마음으로, 주관적으로 사색하며 읽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개인적으로 그리고 점차적으로 듭니다.
성경의 경우, 그것을 읽으려는 사람의 마음 속 동기가 무엇이든, 위에서 제가 언급한 대로, 기회와 시간적 혹은 기타 여건이 허락되신다면 여러 버전들을 함께 곁에 두고 서로 대조도 해보고, 보완도 해가며 읽으신다면 그것도 긍정적이지 않을 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덧붙이자면, 이 성경을 구입하면서, 영문으로 된 가톨릭 버전 - 아마 New American Version이었던 것 같아요 - 을 함께, 큰 마음 먹고, 구입했는데, 그 영문버전도 괜찮았습니다. 특히, 요한복음(영문으로는 John) 3장 초반에서 니고데모라는 종교지도자와 그리스도께서 대화하는 장면에서, 니고데모가 (말하자면)"당신이 하시는 일들을 볼 때 당신은 분명 위에서부터 오신 분임에 틀림없습니다,"라고 그리스도께 심히 예의를 표하자, 그리스도께서 "아멘, 아멘(Amen, Amen)"하시고 답변을 하시는데, 바로 이 "Amen, Amen"의 사용이 번역에 들어간 점이 저는 개인적으로 좋았습니다. 그저 웬일인지 제 마음이 더... 뭉클해졌다 할까요. 다른 영문버전들 중 예를 들어 New International Version이나 King James Version에는 Amen이란 단어가 (니고데모에게 일일이 답변하시는 그리스도의 대답들 앞에) 붙어있지 않습니다. 이 단어가 있고 없고가 중요하진 않겠지만, 제 개인적으로 마음이 움직였다는 것이지요.
자, 이상, 이 가톨릭 성경에 대해 그저 제 '너무나' 혹은 '지극히'(참고로 위 요한복음 3장 16절의 "사랑하셔서" 앞에 공동번역의 경우, '지극히'가 붙습니다, 이것도 참 좋지요) 주관적이며, 개인적인 견해이자 혹시라도 성경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쓴... 단순한 글이었습니다.
이 글을 혹시라도 누군가 - 예를 들어, 성경을 읽어보고 싶으신 사람들을 포함해서요 - 읽으시게 된다면, 고마움을 전하고, 무엇보다 평화가 늘 마음속에 있으시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