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나의 불행 너에게 덜어 줄게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14
마르탱 파주 지음, 배형은 옮김 / 내인생의책 / 201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인공 마르탱은 과학을 좋아하는 바카리, 음악을 좋아하는 프레드, 기계를 좋아하는 에르완과 단짝이다. 


나는 운 좋게도 다재다능한 친구들을 두었다. 프레드는 우리에게 자기가 만든 곡을 연주해준다. 바카리는 천체물리학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는 알아듣는 척하면서 고개를 끄덕거린다) 이 녀석은 우주에서 일어나는 일에 빠삭하다. (반면 프랑스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다고 나는 거의 확신한다) 그리고 나는...... 친구들이 말한 바로는 내가 반어법에 재주가 있단다. 이건 진짜 칭찬이라고 하기 어려운 칭찬이다. 반어법을 잘 쓰면 뭘 할 수 있지? ‘반어가’ 같은 직업은 없는걸.


같은 반도 아닌 이들이 서로 친하게 지내는 이유를 마르탱은 ‘우리가 남들과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에르완이 구타를 당해 크게 다친 후 그들이 느꼈던 막연한 왕따에 대한 위협은 실체를 드러내어 ‘불행’으로 다가오게 된다.


에르완이 당한 일을 계기로 우리는 우리가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내 생각에 그 주먹질은, 남들과 다르게 구는 건 그만두고 규칙을 따르라고 명령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 노력할 마음이 한층 더 줄어들고 말았다. 남들과 더욱더 거리를 두게 되었다. 아마 따돌림과 괴롭힘은 더 심해질 것이다. 자, 인생의 악순환에 접어드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 책은 그렇게 세상의 온갖 불행을 자신의 것으로 느끼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다. 세상이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기쁜 그런 청소년들 말이다. 마르탱은 넋놓고 사는 아버지를 배려하는 성숙한 인격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고, 이들의 고민을 들을수록 이 청소년들이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이 청소년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상이 나쁜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마냥 당하고 불안해만하며 살 것 같은 이들이, 어떤 계기(내용을 쓰면 스포일러가 되기에)로 그들의 분노를 표출한다. 그들답게 삐딱하고 엉뚱한 방법으로. 그들의 분노는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그들은 불행에서 벗어나 행복해질 수 있을까. 아니, 중요한 건 그들이 분노를 터트렸다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결말은 책에 나온다.


이 책이 그려내는 사건은 흥미진진하고 독백은 진지하며 유머는 삐딱하다. 빠른 사건 전개와 세밀한 독백이 대조를 이루며 무척 쉽게 잘 읽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마르탱(주인공 마르탱은 작가의 이름이기도 하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책을 청소년기의 나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시절의 내가 이 책을 읽었다면 조금은 더 치유받을 수 있었을거란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느꼈다. 


따돌림을 당하든 따돌림을 하든 청소년들은 저마다의 독특한 구석들이 있고, 그것이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못한다고 느끼는 것 같다. 이 책은 그런 그들이 인생을 대하는 관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 건조한 현실을 그리면서도 따뜻함을 잃지 않는 마르탱 파주의 글솜씨는 ‘사회적 불행’을 다루는 이 책에서 더욱 빛나는 것 같다.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꼭 한 번 읽어보았으면 하는 책이다.


마르탱 파주의 책들을 좋아하고 무척 인상깊게 보았지만, 이 책에서는 그 중에서도 조금 더 특별한 느낌을 받았다. <컬러 보이> 등의 작품과 비교할 때 사건도 흥미롭고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일들이고, 인물도 정이 가서 더 좋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마르탱 파주의 책이 좋았던 분들은 꼭 보시길 바란다.


인상 깊은 구절이 여럿 있었지만 그 중 한 구절을 옮기며 백만년만의 책 리뷰를 맺는다.


나는 미트리다트 왕 이야기를 생각했다. 현명한 왕이었던 미트리다트는 아버지가 암설당했기 때문에 자신도 독살되지 않을까 두려웠다. 그래서 날마다 독약을 조금씩 마시면서 자기 몸을 독약에 길들였다. 나는 사람들이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슬픔과 포기에 스스로 길들도록 교육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우리의 몸과 우리의 정신은 점점 그 독에 익숙해져서 끔찍한 일이 닥쳐도 마침내 더는 반응할 수 없기에 이른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삶에 반응할 수 없을 것이다. 슬픔과 우울은 더는 슬프지도 우울하지도 않은 것, 정상적인 것, 우리의 일상이 된다. 

나는 그것이 우리 모두를 기다리고 있는 운명이라고 인정하고 말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