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 범죄
칼 마르크스 지음, 이승은 옮김 / 생각의나무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일단은 소설이다. 그러나 이 책을 꼼꼼히 살펴보지 않으면 소설이라는 것을 모르고 읽어볼 가능성도 높다.

이 책의 저자는 저명한 칼 마르크스이다. 그러나 칼 마르크스가 아니다. 그러므로 소설인 것이다.

모두가 의아해 할 이 대목에서 칼 마르크스라는 동명이인. 1990년부터 7년간 출판사 구매책임자로 재직했고, 오스트리아 빈에서 살며 활발한 저작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가 등장함으로써 그 의문이 풀린다.


“내가 경험한 이야기는 허무맹랑하고 기상천외하며 소름이 끼칠 정도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이 이야기는 진짜라는 것이다!”


출판업자인 칼 마르크스는 스스로 소설 속에 출현하여 추리소설 형식을 빌려 마르크스의 일기에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덧붙인다. 일기는 마르크스의 개인사를 보여주고, 실존했던 마르크스를 소설 안으로 불러들인다.

이 책의 가장 큰 모순은, 책 속에서는 주인공이 일기내용의 진위성 여부를 끊임없이 파헤치려하지만 『자본론범죄』라는 책 자신은 ‘소설이다’라는 한 마디로 모든 의문을 발설하지 못하도록 방어막을 치고 있다는 것이다.

소설 속에 나오는 마르크스의 가상일기는 분명 허구다. 그러나 책 속에서도 나오듯, 이 허구를 지어낸 작가 칼 마르크스는 분명 마르크스에 대해 나름대로의 애정을 가지고 그가 남긴 저서들을 독파하며 그의 일생과 사상에 대해 빠짐없이 공부했을 것이다. 그 노력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저명한 사상가였던 마르크스가 영원히 죽지 않는 인간이 되어 부랑자의 삶을 살아간다는 설정과 부랑자로서, 사상가로서의 마르크스의 내면이 담긴 일기라는 가정은 21세기에 내던져진 마르크스의 입장에 대해 충분히 잘 대변해 주고 있으며 소설의 각 장에 병치된 그의 일기(형식의 글)은 그 자체의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했다. 하지만 저자의 욕심이었을까. 마르크스의 일기자체로만 소설화하기에 역부족이었던 것일까. 어설픈 추리소설 형식을 차용하여 일기가 숨겨진 곳에 대한 암호를 제시하고, 살인사건을 등장시키고, 독자의 참여까지 유도하여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었다.

작가 자신이 마르크스라는 인물의 일기를 대신 썼다는 사실에 자신이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차라리 칼 마르크스‘들’의 일기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부랑자로서 영생의 삶을 살게 된 마르크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마르크스 일기>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판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작가는 주 뼈대인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동시에 마르크스에게도 비판을 가한다. 자신의 이념과 실제의 삶이 배치됐던 마르크스는 소설에서 ‘영원히 죽지 않는’ 천형을 받는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적나라한 사생활 이야기나 그의 당당한 낭비벽 등을 통해 여느 자본가를 뺨치는 속물근성을 지닌 마르크스를 비판한다. 또한 마르크스를 완전히 실패한 ‘패배자’로 단정 짓기도 한다.


작가는 아마도 동명이인인 칼 마르크스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그가 진정으로 말하려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재조명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소설의 결말부분에서도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마르크스의 영생여부나 죽지 않는 인간으로서의 여러 유명인사들의 존재여부 규명은 여러모로 시원치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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