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만자로의 눈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단편집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작가의 의도에 맞춰 작품의 배경에, 인물에, 그들의 서사에 몰입하고 감화되어 일심동체가 되려는 순간 이야기의 결말에 금방 도달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끝 맛도 개운치 않은 작품들 투성이다. 장편에 익숙한 내겐, 그래서 단편집은 읽기에 고역이다.

그런데 문체도 난해하다면 어떨까? 과몰입하기 힘든 짧은 구성에 읽기 힘든 문장구조는 나 같은 독자를 혼란의 구렁텅이에 빠뜨린다.

여기 어니스트 헤밍웨이라는 작가가 있다. <노인과 바다>로 유명한 미국 문학의 선구자 중 하나다. 이 자가 쓴 단편들이 있는데, 역시나 난해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구조로 이름을 널리 떨쳤나 보다. 심지어 한국으로 번역되어 들어올 때 오역도 상당했다. 세대를 넘어 모두가 하나같이 '이해를 못하겠어~!'를 외치고 있으니 말이다.

공감한다. 지금 이 책을 읽은 나조차도 문장과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한참이나 시간이 들었으니까.

여러번 생각하고 찾아본 끝에 이 복잡다단한 삶을 묘사하는 작품을 한 번에 요약한 문단이 있었다.

<킬리만자로의 눈>의 서문을 보아라.


킬리만자로는 19,710피트 높이의 눈 덮인 산으로, 아프리카의 가장 높은 산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의 서쪽 봉우리는 마사이어로 신의 집을 뜻하는 '은가예 은가이'라 불린다. 서쪽 정상 부근에는 말라 얼어붙은 표범의 시체 한 구가 있다. 표범이 그 고도에서 무엇을 찾고 있었던 것인지는 아무도 설명하지 못했다.


웅장하면서도 미묘하고 알 수 없는 분위기를 풍기는 서문이다.

이게 헤밍웨이가 말하고자하는 바이다. '표범이 그 고도에서 무엇을 찾고 있었던 것인지는 아무도 설명하지 못했다.'

내가 이 책을 읽을 때 처음 수록된 '킬리만자로의 눈' 단편을 이해하지 못해 곧바로 다음 수록편인 '킬러들'을 읽었다. 의문이 한 가득 남은 채로 끝난 건 똑같았다. 둘의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허무주의.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얼굴들.

여성편력이 심하고 인종차별적이며 거칠고 무심한 각 이야기 속 남성 인물들은 삶을 바라보는 자세가 굉장히 허무적이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으로부터 어떤 발버둥도 없이 죽은 눈을 하고 남은 생을 살아가는 존재들. 괴저에 걸려 썩어가는 몸뚱아리를 가진 작가 해리나 누군가에게 사주받은 킬러들의 위협을 그대로 방치하는 올레 안드레슨.

둘 다 주변인의 끊임없는 도움(해리의 연인 헬렌, '헨리네 런치 룸'의 종업원들과 젊은이 등)을 무시하고 그저 동태눈으로 세상을 쳐다보고마는 그들을 보자니 내 안 깊숙히 미적지근한 한숨이 몰려나왔다. "하....아..."하고서ㅋㅋㅋ.

아직은 세상을 알록달록 다채롭게 보고 느끼려는 나에게 이 무채색의 칙칙한 인상들을 마주하기는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굉장히 차별적이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더니, 증말 그 시대의 산물이다. 어우.

내가 이렇게 질색하는 걸 보면 헤밍웨이의 고뇌와 감정이 작품에 잘 담겼다는 소리겠다. 전 이런 축축하고 칙칙하며 어깨가 처지는 무거운 단편은 처음 봐요. 어쨌든 난해한 문장들을 꽤나 매끄럽게 써낸 역자에겐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번역은 직역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설파한 옮긴이의 말은 특히 와닿았다. 의역이 난무하는 시대에 저자가 전달하려고 하는 메세지는 직역해야만 그대로 독자, 청자에게 닿기 때문이다. 단편을 읽고 한숨을 쉰 나처럼 말이다.

새해부터 뜻밖의 자세로 삶을 바라보는 작품을 접해서 매우 신선하다.

*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의 지원을 받은 도서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