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을유세계문학전집 65
헤르만 헤세 지음, 이영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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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거의 30년 만에 다시 읽었다. 그때 보이지 않았던 글들이 마치 처음 읽는 것처럼 다가온다.
이 책에서 헤세는 내내 삶은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말한다. 어렸을 때는 그 말 뜻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완전히 마음 깊이 공감한다. 데미안을 흔히 성장소설이라고 말하지만 아이에서 어른으로 넘어가는 단순한 정신적 성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자기 길을 찾아가는 삶 전체로써의 성장을 말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후반부에 등장하는 데미안의 엄마인 에바 부인이 싱클레어에게 들려주는 2가지 동화이야기가 참 흥미로웠다. 싱클레어는 결국 사랑하기를 통해 자기자신을 찾게되었고 스스로 삶을 구해내어 온전한 자기자신으로 살게 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톨스토이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질문에 대한 답도 여기에 있다란 생각이 들며 모든 삶의 길은 하나로 수렴되는게 아닌가 싶다.
학창시절 헤세의 소설에 빠져 거의 모두 읽었던 그의 책들을 하나씩 다시 읽어봐야겠다.

“당신의 꿈은 온전하지 않아요, 싱클레어, 최상의 것을 잊고 있어요.”

가끔 나는 만족하지 못했고, 욕망에 시달리고 지냈다. 그녀를 안지 못하고 곁에서 바라보기만 하는건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또한 그녀는 금방 알아차렸다. 한번은 여러날 발을 끊었다가 여전히 어지러운 마음으로 다시 찾아갔는데, 그녀가 나를 한쪽으로 데려가더니 말했다.

˝스스로 믿지도 않는 소원에 자신을 맡기면 안 돼요. 나는 당신이 어떤 소원을 품고 있는지 알아요. 당신은 이 소원들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온전히 제대로 소망할 수 있어야만 해요.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당신이 마음속에서 온전히 믿고 빌 수 있으면 그 소원은 성취되는거에요. 그런데 당신은 소원하고, 그걸 다시 후회하고, 그러면서 두려워하지요. 그 모든것이 극복되어야 해요. 동화를 하나 들려 드리지요.”

그리고 그녀는 별을 사랑하게 된 어떤 젊은이의 이야기를 해줬다. 그 젊은이는 바닷가에 서서 두 손을 뻗고 별에게 빌었다. 별의 꿈을 꾸었고, 그의 생각을 별에게 보냈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혹은 안다고 생각했다. 인간이 별을 끌어안을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이루어질 희망도 없이 별을 사랑하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라 여겼다. 그러곤 이런 생각으로 말없이 충실한 아픔, 그를 개선시키고 정화시킬 아픔과 체념에 관한 삶 전체를 다룬 시를 지었다. 하지만 그의 꿈들은 모두 별에게 가 있었다. 한번은 그가 다시 밤에 바닷가 높은 절벽 위에 서서 별을 쳐다보며 사랑으로 불타고 있었다. 그러고는 그리움이 절정에 이른 순간 그는 별을 향해 뛰어 오르며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한데 막 뛰어 오르는 순간,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도 이건 불가능한 일이야! 그는 해변에 떨어져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그는 사랑하는 법을 몰랐던 것이다. 만약 뛰어오르는 순간, 그 일이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굳게 믿는 영혼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면, 그는 저 위로 날아가 별과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사랑은 간청하는 게 아니에요.˝그녀가 말했다. ˝강요하는 것도 아니에요. 사랑은 그 안에 확신에 이르는 힘을 지녀야 해요. 그러면 더 이상 끌려가는 게 아니라 끌어 당기지요. 싱클레어, 당신의 사랑은 나에게 끌리고 있어요. 언젠가 당신의 사랑이 나를 끌어당기면, 그러면 내가 가요. 나는 그 무엇도 선물로 주지는 않으렵니다. 나는 획득되기를 원해요.˝

그러나 다음 번에는 내게 다른 동화를 들려주었다. 희망도 없이 사랑하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영원 속으로 침잠해 들어갔고, 사랑에 모든게 타 버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에게는 세상이 사라져 버렸다. 그는 더 이상 푸른 하늘도, 초록색 숲도 보지 않았다. 시냇물도 그에게는 졸졸거리지 않았고, 하프도 그에게는 울리지 않았다.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고, 그는 가난하고 비참해졌다. 하지만 그의 사랑은 점점 커져갔다. 사랑하는 아름다운 여인을 갖지 못하느니 차라리 죽어 없어져 버렸으면 했다. 그때 그는 자신의 사랑이 그의 마음 속에서 다른 모든 것을 불태워 버렸음을 감지했다. 그의 사랑은 막강해져서 끌어당기고 또 끌어당겼고, 그 아름다운 여인은 따라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왔고 그는 그녀를 끌어안기 위해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서 있었다. 하지만 그의 앞에 와 섰을때 그녀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는 깊은 전율을 느끼며 자기가 잃어버린 모든 세계를 자신에게로 끌어당겼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가 그의 앞에 서서 그에게 자신을 맡겨 왔다. 하늘과 숲과 시내, 모든 것이 새로운 빛깔로 신선하고 찬란하게 다가와 그의 것이 되었고, 그의 말로 속삭였다. 그리하여 그는 여인을 하나 얻는 대신 온 세계를 가슴에 지니게 되었다. 하늘의 모든 별이 그의 안에서 타올랐고, 그의 영혼을 뚫고 지나며 환희에 빛을 뿜어냈다.

그는 사랑을 했고, 그러면서 자기 자신을 찾았던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을 하면서 자신을 잃어버린다.

에바 부인에 대한 사랑이 나에게는 삶의 유일한 내용인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날마다 달라 보였다. 이따금 나는 내 존재가 이끌려 그리로 향해 가려는 것이 그녀라는 인물이 아니라는 것, 그녀는 그저 내 내면의 한 상징일 뿐이고, 나를 더 깊숙이 나 자신 속으로 이끌어 가려 한다는 것을 확실히 느낀다고 생각했다. 나를 뒤흔들고 있는 절박한 물음에 대한 내 무의식의 대답처럼 들리는 말을 자주 그녀로부터 들었다. 그러고는 다시 내가 그녀 곁에서 감각적인 욕망에 불타올라 그녀가 닿았던 어떤 물건에 입맞추는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그리고 차츰 감각적인 사랑과 비감각적인 사랑이, 현실과 상징이 서로 겹치면서 밀려왔다. 그 다음에는 내가 우리 집 내 방에 앉아 조용히 집중해서 그녀를 생각하면, 그녀의 손이 내 손 안에, 그녀의 입술이 내 입술위에 느껴진다고 여긴 적이 있었다. 또는 내가 그냥 집에서 그녀의 얼굴을 보고, 그녀와 말하고,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서도, 그녀가 실제로 거기 있는 것인지,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잘 모르겠던 적도 있었다. 나는 어떻게 사랑을 지속적으로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지 예감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의 내면에서 한걸음 진보를 이루어 냈을 때와 똑같은 느낌이었다. 나에게는 중요하고 운명적인 모든 것들이 그녀의 모습을 지닐 수 있었다. 그녀가 내 생각 하나하나 속에 녹아 들어오고, 내 생각 하나하나가 그녀에게로 녹아 들어갈 수 있었다.

집에 있으면서 그녀를 생각하는 것은 멋진 일이었다. H시로 돌아와서도 나는 이 안정감과 그녀의 감각적 실제로부터 자유를 즐기기 위해 이틀 동안이나 그녀를 찾아가지 않았다. 또 나는 그녀와의 결합이 새롭고 비유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꿈들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녀는 바다였고, 나는 그 안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또 그녀는 별이였는데, 나 자신도 하나의 별이였고 그녀에게로 가는 중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만났고 , 서로 끌리는 것을 느끼고 나란히 머물다가, 윙윙 울리는 가까운 원을 그리며 환희에 차서 영원토록 서로의 주위를 돌았다.

다시 그녀를 찾아갔을때, 나는 그녀에게 이 꿈 이야기를 했다.
“그 꿈 아름답군요.”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그걸 실현시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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