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쓰기부터 책출판까지 - 출판사 편집장이 알려주는
송현옥 지음 / 더블:엔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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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공대출신 맞지?", 가까운 지인이 자기 사업체를 운영하는 바쁜 와중에 몇해전 2권의 여행 에세이를 연달아 출간해서 자주보는 얼굴과 이름을 지면으로 만나는 경이로움과 부러움을 안겨주었다. 문과생보다 책과는 왠지 더 멀 것 같은 (지극히 편견이지만) 공대출신 엔지니어가 지금은, 세 번째 다음 책을 또 준비 중에 있다.

최근에는 고등학교 친구가 수기에 바탕을 한 에세이를 자비출판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초보 블로그의 세계에 작년에 들어선 이후로, 블로그 이웃들의 출간 계획 소식도 간혹 깜짝 소식으로 들려온다.


이처럼 이름을 익히 알고 있는 유명 작가뿐만 아니라, 생애 최초의 책을 펴내는 일반인들의 이야기를 많이 만난다.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을 공유하고 싶은 허기증과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이 생각보다 정말로 많다는 사실이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내밀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추구하고 살다가, 어느 날 씨방이 무르익어 터지듯, 그렇게 하나 둘, 글로 살아온 삶을 써 내려가고, 그것들이 쌓여가서, 책으로 나온다.

책쓰기 책이 이미 많이 나와있지만 나만 쓸 수 있는 글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책 쓰기에 필요한 내용과 출판사 계약및 책 출판후 홍보에 관한 내용을 넓고 얕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새롭게 시작될 작가 인생을 응원합니다.

송현옥 더블엔 편집장의 서두글, P11


현직 출판사 편집장이 책쓰기에 대한 첫 발걸음부터 출판하는 전과정에 대한 궁금함들을, 친절한 눈높이로 설명해준다면, 이제껏 가져왔던 호기심이 다 해결될텐데.... 그런 책 한권을 만났다.



매일 A4 1매를 쓰는 힘

글쓰기도 글을 쓸 시간을 매일 조금이라도 뺴놓아야 한다. 매일 글을 쓰면 늘게 되어있고, 쓰다보면 쓸 거리가 생기는 신기한 경험도 하게 된다. 블로그도 브런치도 좋으며, 일단은 쓰는 습관을 들이는게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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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이방인의 산책
다니엘 튜더 지음, 김재성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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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맨체스터에서 대학을 마치고,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친구와 벤처기업을 운영하기도 했으며, 한국의 부산을 잠깐 거쳐, 지금은 서울에서 11년째 생활하는 방랑벽 있는 한 이방인의 이야기,


"나는 방랑벽이 심했고 저 바깥세상에는 더 많은 무언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어쩌면 근거 없는 예감을 갖고 있었다." P11


2002년 월드컵때 한국을 찾았다가 사랑에 빠져 2004년 서울로 돌아와 영어강사, 금융, 이코노미스트 서울 특파원, 수제맥주사업 사업가등등 다양한 삶을 한국에서 살고 있는 이방인 다니엘 튜더 (Daniel Tudor)가 쓴 '고독한 이방인의 산책' (The Random Thoughts of a Solitary Wander)을 번역한 책이다.



가족의 치부를 꺼내 심리적으로 힘들었던 가족사, 외로움과, 그런 외로움은 기실은 우리 모두가 가진 존재적인 문제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연결됨을 이야기하고 '산책', '독서', '음악'...그 어느 누구에게나 있을 자기만의 위안들에 대해서, 도시라는 거대한 고독한 공간에서 그가 '산책'을 하면서 평온을 찾는 이야기들에 대해서, 자유와 이방인의 눈에 비친 한국에 대한 이야기들도 만날수 있다.


"나는 만인 덕분에 나다. 내 안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나지만 그 '나'를 내가 다닌 학교와, 내가 알고 지내왔으며 나를 독려해준 사람들과, 영국 사회 전반으로부터 떼어놓을 순 없다. 서울에 온 후로는 한국 사회와 사람들이 나를 여러 면에서 변화시켜 놓았다. 이 환경과 사람들의 축복을 받은 것이 모두 다 내가 받은 행운이다." P100


삶은 온통 낯선 나라다

우리는 이렇게 자유로운 적이 없었다. 이렇게 무력감을 느낀 적도 없었다. 지그문트 바우만, P19


편지지와 우표가 거의 유물처럼 변하고 그 자리는 문자와 메신저, SNS의 자리가 되었다. 스마트폰과 SNS에는 셀수 없는 친구들이 있고 손끝 하나로 세상이 연결되는 세상을 살고 있지만 사람들은 더 외롭고 더 많이 고독하다.


"내 삶은 대체로 외로웠다. 자유의지로 선택했지만 일단 내 삶의 방식부터가 외로움을 많이 유발함을 깨달았다. 특정한 소속 없이 프리랜서로 혼자 살아가고, 일정표는 대부분 잘 모르는 사람들과의 회의로 가득 차 있고, 신앙심으로 결속할 종교도 없는데다 단체 활동을 싫어하는 터라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클럽이나 사교모임도 없고,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나고 자란 모국과 판이한 타국에서 살고, 관계에 관해서는 또 완벽주의자여서 나와 꼭 맞지 않는 누군가와 사귀기보다는 차라리 독신이 편한 사람이다.


우리는 테크놀로지는 더, 서로는 덜 원한다

여자들이 돈을 내고 잘생긴 남자 앞에서 울 수 있는 서비스를, 7900엔 (우리 돈으로 83,000원 정도) 을 지불하면 미남이 눈물을 닦아준다. 함께 울기 행사도 열리고 있다. 지금의 현실에 있는, 도쿄의 이케메소 단시라는 곳의 이야기가 38쪽에 나온다. 짐작은 했지만 외로움 산업이 이토록 발달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웠다.


미국 힙스터들의 안식처인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있는 '커들 업 투미 (cuddle up to me)'라는 업소는 2014년부터 시간당 80달러를 받고 손님을 안아주는 영업을 해오고 있다고 한다. 영국의 멘체스터 온라인 커뮤니티 '커들 네트워크(cuddle network)'에서는 1,200명의 회원이 정기적으로 오프라인에서 만나 몇 시간씩 서로를 안아준다.


일본에서는 상대방의 눈을 1분간 들여다봐주기, 등 토닥여 주기, 머리 쓰다듬어주기등 서비스도 있다고 한다.


렌트 어 프렌드 (Rent a Friend) 가 있는가 하면 엄마 렌트를 필요로 하는 뉴요커들은 시간당 40달러에 밥을 해주고 각종 충고와 정서적 지원까지 제공아하는 63세 '니나 케닐리(Nina Kenneally)'를 빌릴수 있고, 일본에서는 원하면 가족 전체를 렌트할수 있다.


인공지능 기술도 활기를 띄고 있어, 일본에서는 홀로그램 여자친구가 말도 걸어주고 매일 적당한 간격으로 메세지를 보내주며 끝없이 칭찬해주고 남자친구가 되어 주어 고맙다고 한다. 한국의 한 업체는 에이핑크의 손나은과 VR 데이트를 할수 있게 해주었고, 전 세계 선진국에서는 외로움을 달래줄수 있는 로봇이 출시되고 있다.


"야근, 회식 없으며 점심시간 자유로움"

저자가 잠깐 다녔던 국내 대기업의 채용공고 문구였다고 한다. 미국에서 오래 근무하고 있는 직장지인이 한국의 직장에 와서 특이하게 생각했던 것들 중의 하나가 점심시간에 한꺼번에 나가 같이 점심을 먹는 일이라고 한적이 있다. 코로나 이전에도 이런 풍경은 많이 달라져서 자유롭게 점심시간을 활용하고 따로 보내는 사람들도 늘었고, 야근이나 회식문화도 달라졌다.


'90년생이 온다' 나 '요즘것들'이라는 책에서도 나오는 것처럼 요즘은 사무실에서 전화벨이 울리고 통화하는 소리보다 메신저톡을 하느라 타닥타닥이는 소리만이 흐르는 조용한 공간이 되고 있다. 배달앱이나 무인 주문 기계를 더 선호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의 흐름이다.


"밀레니얼 세대의 20퍼센트는 '주문받는 직원과 대화하기가 그냥 싫다'고 대답했다. 타인회피의 새로운 전선에는 배달앱이 있다. 미국의 '배민'이라고 할 '그럽허브 GrubHub'는 한때 이런 슬로건을 내걸었다. '먹는일의 즐거움, 이제 사람들과 말 섞을 필요없이 누리자" P122


이 모든 것의 90퍼센트는 어차피 소음이고 오래지 않아 잊힐 것이다.


꼭 해야 하는 Must, 머스터베이션(musterbation)이라는 단어는 우리 사회가 가진 고통을 이방인의 시선에서 포착한 것이다. 무엇인가를 어느 시점에는 꼭 해야 한다는 강박을 우리 사회만큼 주입하고, 알면서도 그 대열에 기꺼이 동참하는 사회가 있을까. 어떤 수준의 학교, 어떤 수준의 직장, 어떤 나이와 결혼, 자녀, 적령, 적정.... 타자의 시선에 묶여 고정되고 숫치화된 삶으로 모두가 자유롭지 않는.


"심리학자 앨버트 엘리스는 (Albert Ellis)는 그 관현악단에 입단할수 있다면 참 근사할텐데 정도가 아니라 그 관현악단에 반드시 입단해야 해하는 심리적 상태를 묘사하기 위해 머스터 베이션이라는 재미있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특정한 야망을 실현하는데 자신의 모든 정서적 행복을 투자하지 말아야 한다. 결과에 너무 연연하지 말아야 하며 자신의 안정과 행복이 그 결과에 전적으로 좌지우지 되는 막다른 골목으로 스스로를 내몰지 말아야 한다." P62


그런 불합리한 합리는 평균이 아닌것을 평균으로 착시하는, 특별한 성취가 평범한 성취처럼 보인다는 온라인이나 SNS의 허상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하고 있다.


"보통의 범주를 벗어나는 평균치 이상의 아웃라이어 outlier들이 평범한 성취처럼 보이기 시작하지만 온라인매체 같은데서 시간을 많이 보낼수록 그 덫에 걸려들기 쉽다고 말한다." P65


바이오필리아 (Bio Philia)

다니엘 튜더도 서울이라는 도시안에서 걸으면서 잠시만이라도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들에서 멀어질수 있었다고 한다. 걷기가 주는 아름다운 잇점들이야 수많은 사람들의 말과 글에서 확인할수 있는 일이지만, 단순히 걷는다는 일에만 몰입해서 하는 것조차 우리는 머스터베이션(musterbation) 에서 자유롭지 않다. 핸드폰을 하고, 생활체육의 느낌으로 빨리 걸으며 칼로리소모와 만보의 강박에서 어플을 내려다보며 걸을때도 많으니까. 바이오필리아(Bio Philia), 인간의 마음과 유전자에는 자연에 대한 애착과 회귀본능이 내재되어 있다는 학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저절로 오감이 느끼고 있다.


"나는 걸을때 웬만해선 휴대전화를 확인하지 않는다 않는다.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어지럽히는 원천을 멀리하면 무의미한 '바쁜일'에서 정작 중요한 것을 가려낼수 있다. ....단순히 걷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남들처럼 분망히 서두르고 수만 군데에 정신이 팔리기를 거부할 수 있다." P75


차 한잔 만들어주고 싶은 사람도 없고 우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도 없다면 삶이 끝나버린 거라고 생각해요


단절과 고립은 코로나 시대를 거의 2년에 걸쳐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절절하게 느끼고 살아가는 요즘일것이다. 아이러니하게 이러한 고립은 더 연결된 세상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먼 출장을 가서 했어야 했던 일들이 웹엑스나 줌같은 화상회의를 통해서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고,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들도 화상미팅으로 만나고 있다. 그래도 그 너머의 온기를, 직접 얼굴을 보고, 따스한 차 한잔 마시고 싶고 만들어주고 싶은 사람이 그리워지는 건 어쩔수 없다.


"오늘날 우리사회는 많은 수의 관계를 제공하는 데는 아주 능하지만 질 측면에서는 나날이 나빠지고 있다. 그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고립감을 느낀다. 사회는 그 방향으로 우리를 몰아가고 있다. 처음에는 나만 그런줄 알았다. 그러나 혼자 슬퍼하고 말 주관적인 경험이 아닌 하나의 현상으로 외로움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과 그 관계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 뒤 나만 그런 것이 아님을, 깊어진 외로움은 현대화가 심화되면서 발생한것이며 슬프게도 나는 날로 늘어나는 무리의 한 부분일뿐임을 깨달았다..." P190




바보는 삶이 본질적으로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똑똑한 사람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무의미하다는 걸 알면서도 나름의 방식대로 살며 즐긴다. - P164

나는 만인 덕분에 나다. 내 안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나지만 그 ‘나‘를 내가 다닌 학교와, 내가 알고 지내왔으며 나를 독려해준 사람들과, 영국 사회 전반으로부터 떼어놓을 순 없다. 서울에 온 후로는 한국 사회와 사람들이 나를 여러 면에서 변화시켜 놓았다. 이 환경과 사람들의 축복을 받은 것이 모두 다 내가 받은 행운이다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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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소설이다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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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소설을 읽는가?라는 물음에 신형철 평론가의 산문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읽었던 구절이 그 궁금중에 대한 답이 되었던 적이 있다. 쇼스타코비치가 했던 말을 인용한 "나는 체호프를 게걸스럽게 읽는다. 그의 글을 읽으면 삶의 시작과 종말에 대해 무언가 중요한 생각을 곧 만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저 좋아서 읽는 사람도 많겠지만, 굳이 뭔가를 찾아야 한다면 기욤뮈소의 생각이 "인생은 소설이다"라는 이 소설에 스며들었을 구절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은 우리를 잠시나마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게 해주고, 다양한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의 상처에 반창고를 붙여주는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P62



인생을 여러 번 살 수 있고, 다면적 인생의 면면들을 몇 번이고 자유자재로 건너다닐 수 있는 배우가 아니라면. 살고 싶은 인생을 지면 위에 얼마든지 끄집어 올려놓고 주인공이 되어 살아볼 수 있는 소설가도 아니라면... 대신 소설을 읽는 독자가 되어보는 것도 쉽게 끌리는 일이다. 여러 인생의 에센스들을, 궁금한 삶의 비밀과 양념들을 우연히 책의 한 귀퉁이에서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소설 같은 인생, 때론 소설보다 더한 믿기 힘든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할 때가 있다. 티브이 다큐에 소개되는 굴곡진 인생을 살아온 이들, 어느 한순간에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 사람들의 이야기들.... 소설을 읽다 보면 픽션의 세계 안에 현실이 있고, 현실의 삶이 픽션같기만 한, 소설보다 더 소설 같다는 생각을 할때도 있다.


단조로운 나날을 살다 보면 소설이나 영화 같은 삶과 인생에 대한 동경이 일기도 하지만, 평범한 일상이 허락되고 그것만을 지속해나가는 평탄함만으로도 삶은 만만한 일이 아니며 매 순간 감사한 일이고 벅차기도 하다는 생각을 만나게 되는 순간이 온다. 소설이나 영화 같은 삶은 젊은 날 한때의 꿈같은 것이고 지금은 이 순간순간이 고요하기를 바란다. 이 소설의 첫 페이지를 펼치면서 그런 생각이 더 들었다.


기욤뮈소의 소설 "인생은 소설이다"는 픽션과 실재의 세계가 겹치고 넘나들며 읽는 동안 어지럽기도 했다. 소설안에 소설이 펼쳐져 있는 격자 소설의 구조로 되어 있어 어느 부분까지가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소설인지, 이 소설안의 또 다른 소설인지 지금도 혼돈스럽다. 전개는 미스테리적인 요소도 있어 지루할 틈 없이 책장을 넘겨갔다.


2010년 4월 화창한 오후, 스코틀랜드 출신 39세의 플로라 콘웨이라는 작가가 뉴욕의 브루클린 아파트 7층 자택 안에서 3살짜리 딸 캐리와 숨바꼭질을 하다가 딸이 증발하듯 사라지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캐리는 플로라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을 포기 할 수 없게 해주는 유일한 버팀목'인 딸이다.


그 해 출간된 소설 전체를 평가해 선정하는 최고 권위의 프란츠 카프카상을 수상하고, 언론에 노출을 하지 않고 살아가 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작가 플로라의 삶이 송두리째 뒤흔들리게 된다. 사라질 수 있는 공간이라는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캐리는 거짓말처럼 증발을 해버리고 경찰의 탐문조사가 계속된다.


플로라는 사건 발생 후 6개월이 지나도록 비극적인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살시도를 하는 등 극도로 힘든 시간을 보낸다.

"문득 보르헤스의 말이 떠오르면서 내가 지금 오감으로 느끼고 눈으로 마주하고 있는 이 모든 현상들이 과연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여전히 내 주변에서 강력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 P91


플로라는 자신의 고통보다는 출판사업에 대한 걱정만 하는 것 같은 친한 출판사 대표 팡틴을 의심하기도 한다. 팡틴은 팡틴 드 빌라트 출판사의 대표로, 상업성이 좋은 책을 고르는 능력이 탁월하며, 플로라의 <미로속의 소녀>라는 첫 작품이 20개국이 넘는 나라에서 출간되면서 그녀의 독립 출판사가 승승장구하기 시작한 출발점이 된 인연이다.

"난 네가 끔찍한 고통을 겪을수록 더욱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 소설을 쓰는 게 극복의 수단이 될 수 있어. 너도 알다시피 자식을 먼저 보내고 고통의 시간을 보낸 예술가들은 정말 많았어. 그들은 혹독한 시간을 창작에 대한 열정으로 승화시킨 덕분에 불후의 명작을 남길 수 있게 된거야." P53


딸 캐리가 실종된 마당에서 소설이 써질 수 있을까. 고통 속에서 글을 써서 예술로 승화시킨다는 말은 오랜 시간이 흐르고 흐른 다음에야 가능할 것이고, 고통을 잊기 위해 탈출할 수 있는 글쓰기와 예술이라는 미학도 잔인한 타자의 시선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사실 사고 발생 3일 후 발표된 사고 원인은 아파트 리모델링 공사의 안전점검이전에 플로라가 이사를 왔고, 청소업체가 빌딩 청소중 대형창문의 개폐장치를 열어둔 것 때문이었지만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플로라는 자신의 꼬인 삶이 어떤 강력한 힘, 타인이 가하는 영향력아래 있다고도 생각한다. 과연 이런 것이 가능할까. 소설속으로 빠져 들어가면서 나자신도 점점 더 혼돈스러워졌다. "나는 방금 어느 작가가 쓴 소설의 등장인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군가가 나를 매단 줄을 잡고 제멋대고 조종하는 중이었다..... 계속 인형을 매단 줄을 제 멋대로 흐트러뜨려 놓고 있었다 P92"


소설 안에는 로맹 오조르스키라는, 40세 소설가도 등장한다. 로맹의 소설에는 실존인물인 플로라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그는 21살때 소설 "메신저"를 첫선을 보이고, 그 후 18편의 소설을 썼고 하나같이 베스트셀러였던 작가, 20년이 넘도록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현실세계를 벗어나 픽션세계로 탈출하는 일상을 반복한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의 삶,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도 컴퓨터를 켜는 일상, 뚝심으로 글을 써나가면 감흥이 저절로 따라오고 펜이 스스로 움직일수 있는 날이 오는 걸까.

"나는 매일 아침 영감이 떠오르길 기다리지 않고 무조건 글쓰기에 착수했다. 글을 쓰다 보면 영감이 떠오를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내 방식대로의 규율, 뚝심, 단단한 태도로 글쓰기에 임했다. 사실 이 세상에서 쉬운 일은 없다. 그 무엇도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글을 쓰다 보면 머리가 복잡하고 괴로울 때도 있었다. 글쓰기가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감을 잡을 수 없을 때도 많았다" P99


로맹은 아내 알민과 이혼소송중이고 아들 테오의 양육권을 가지고도 분쟁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로맹에게 글쓰기가 얼마나 삶과의 경계가 모호하고 절실한지 이 구절을 보면 알 수 있다.

"모든 의욕을 상실한 나는 기계적으로 컴퓨터앞에 앉아 화면을 켰다. 푸르스름한 빛에 눈이 시렸지만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언제나 화면에 몰입했다. 내가 확고하게 믿었던 통념과 기준들이 모호해지고 있었다. 부재와 해체로 가는 전주곡, 미지의 세계를 향해 열리는 문, 하나의 다른 세계, 또 다른 삶, 아니, 여러 개의 새로운 세계와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불행하다고 느낄 때, 주변에 대화를 나눌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언제나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내 가까이에 있어주었다. 그들 가운데 더러는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도 있었다. 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어떻게 보면 어느 누구보다도 나와 가까운 존재들이었다. " P180


소설의 후반에 플로라를 둘러싼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로맹 오조르스키가 쓴 메일이 팡틴에게 발신된 메모가 나온다. 뒤통수를 얻어맞는듯한 느낌이었다. 유부남이었던 로맹이 팡틴과 결별하면서 그녀에 대한 죄스러움에 대한 선물로 "미로속의 소녀"를 선물로 보낸다.(존재감 없는 어느 프레드릭 앤더슨이라는 교사의 이름으로 숨겨서, 팡틴이 원고를 읽고 수소문할때 이 교사는 이미 숨지고 없다). 팡틴은 이 소설을 뉴욕출신의 플로라는 수수께끼같은 미스테리한 작가의 소설로 각인시켜 마케팅에 성공한다.


플로라가 쓴 소설도 아니고, 결국 로맹이 쓴 소설이었다니. 로맹이 소설을 숨겨서 보낸 것은 작가로서의 욕망을 시험해 보고 싶었던 또 다른 이유는 아니었을까.

"가령 텔레비젼 문학 프로그램에 나온 어느 비평가가 나의 최신작에 대해서는 신랄한 비판을 쏟아내다가 플로라 콘웨이의 작품에 대해서는 찬사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고 실소를 금할 수 없었어"P292

"나는 그저 내 자신이기만 한 것에 지쳤다. 나는 남들이 언젠가 내 등짝에 붙여준 이후 30년동안 줄곧 나를 따라다니는 로맹가리라는 이미지에 지쳤다 - 로맹가리" P248



무엇보다도 이 책은 소설가를 위한 소설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읽었다. 소설가였다면 이 소설의 많은 부분들이 대화를 걸어온다는 생각을 하며 읽어 나갈을지도 모른다. 배우들이 마치 그 사람인 것처럼 연기에 몰입해서 살다 보면 연기가 끝나도 배역에서 쉽사리 빠져나오기 쉽지 않듯이 소설가에게도 비슷한 일일 것이다.

"글쓰기를 할때 가장 흥분되고 짜릿한 순간이라면 아마도 작가인 내 의사와 무관하게 등장인물이 자신의 의지로 독자적인 행동에 나설 때입니다" P99,

"아무리 작가가 결정권자의 지위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소설 속에서 오롯이 모든 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걸 당신도 잘 알잖아요? 등장인물들에게도 고유의 권한이 주어지니까요.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본성과 정체성, 은밀한 삶의 이력에 위배되지 않는 결정을 내려야만 하죠. 개연성 없는 소설은 가치를 잃을 수 밖에 없으니까요." P195


소설을 읽으면서 픽션과 현실의 세계, 소설 안에서도 경계가 혼돈스러워 읽는 도중 길을 자주 잃었다. 기욤뮈소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런 것이었을까.

"나는 평생토록 현실 세계와 픽션의 경계가 대단히 모호하다고 생각해 왔다. 픽션보다 더 진실에 가까운 건 없으니까. 인간이 현실 속에서만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픽션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마치 실존하는 것으로 간주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결과적으로 실존하는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P305


소설의 끝자락에서 플로라는 서서히 고통을 극복해가면서 루텐리 형사와 새 삶을 이어가고 그녀의 소설에는 이제 로맹이 거꾸로 등장한다.

"현실에서는 플로라가 내 소설의 등장인물이지만 그녀의 소설에서는 내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고, 내가 그녀의 꼭두가시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잠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어안이 벙벙해졌다."


플로라가 했던 말은 소설을 쓰는 소설가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 나 같은 일상 블로거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내용이기도 하다. 글을 쓰면서 오롯이 자신을 응시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고, 소란한 일상에서 잠시 자신만의 세계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 의미 있는 한때를 돌아보고 사색하고 기록하는 시간일 테니까.

"나는 소설을 쓰면서 불행한 삶에서 벗어나 나 자신을 직시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만약 소설 쓰기를 통해 나의 세계를 찾아내지 못했다면 여전히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세계에서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다가 생을 마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P55


카카오의 <브런치>라는 소통의 공간이 많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작가라는 타이틀을 설레게 주고 있고, 사춘기 시절 한때 문학소년과 문학소녀를 꿈꾸었던 이들에게 희망과 열망을 준 것들, 이런 것들만 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표현하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는 세상이다. 우리 모두 소설 한편쯤 쓸 수 있는 사연들을 안고 살아가는, 때론 픽션보다 더 믿기 힘든 현재를 살아가고 사람들, 그들 머릿속에 소설한편쯤 있는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편만으로도 벅찬 삶일거니, 딱 한편쯤만.

"정말 이해하기 힘든 일은 글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는 데 반해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 작가가 되길 꿈꾸면서 원고를 보내온다는 것이었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어주는 직원부터 나이트클럽 여종업원까지 소설을 써서 보내왔다. 하긴 모두들 자기 머릿속에 소설 한편쯤은 가지고 있다고들 하니 그런 점에서는 이해가 되기도 했다"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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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소설이다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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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소설을 읽는가?라는 물음에 신형철 평론가의 산문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읽었던 구절이 그 궁금중에 대한 답이 되었던 적이 있다. 쇼스타코비치가 했던 말을 인용한 "나는 체호프를 게걸스럽게 읽는다. 그의 글을 읽으면 삶의 시작과 종말에 대해 무언가 중요한 생각을 곧 만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저 좋아서 읽는 사람도 많겠지만, 굳이 뭔가를 찾아야 한다면 기욤뮈소의 생각이 "인생은 소설이다"라는 이 소설에 스며들었을 구절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은 우리를 잠시나마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게 해주고, 다양한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의 상처에 반창고를 붙여주는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P62


인생을 여러 번 살 수 있고, 다면적 인생의 면면들을 몇 번이고 자유자재로 건너다닐 수 있는 배우가 아니라면. 살고 싶은 인생을 지면 위에 얼마든지 끄집어 올려놓고 주인공이 되어 살아볼 수 있는 소설가도 아니라면... 대신 소설을 읽는 독자가 되어보는 것도 쉽게 끌리는 일이다. 여러 인생의 에센스들을, 궁금한 삶의 비밀과 양념들을 우연히 책의 한 귀퉁이에서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소설 같은 인생, 때론 소설보다 더한 믿기 힘든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할 때가 있다. 티브이 다큐에 소개되는 굴곡진 인생을 살아온 이들, 어느 한순간에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 사람들의 이야기들.... 소설을 읽다 보면 픽션의 세계 안에 현실이 있고, 현실의 삶이 픽션같기만 한, 소설보다 더 소설 같다는 생각을 할때도 있다.


단조로운 나날을 살다 보면 소설이나 영화 같은 삶과 인생에 대한 동경이 일기도 하지만, 평범한 일상이 허락되고 그것만을 지속해나가는 평탄함만으로도 삶은 만만한 일이 아니며 매 순간 감사한 일이고 벅차기도 하다는 생각을 만나게 되는 순간이 온다. 소설이나 영화 같은 삶은 젊은 날 한때의 꿈같은 것이고 지금은 이 순간순간이 고요하기를 바란다. 이 소설의 첫 페이지를 펼치면서 그런 생각이 더 들었다.


기욤뮈소의 소설 "인생은 소설이다"는 픽션과 실재의 세계가 겹치고 넘나들며 읽는 동안 어지럽기도 했다. 소설안에 소설이 펼쳐져 있는 격자 소설의 구조로 되어 있어 어느 부분까지가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소설인지, 이 소설안의 또 다른 소설인지 지금도 혼돈스럽다. 전개는 미스테리적인 요소도 있어 지루할 틈 없이 책장을 넘겨갔다.


2010년 4월 화창한 오후, 스코틀랜드 출신 39세의 플로라 콘웨이라는 작가가 뉴욕의 브루클린 아파트 7층 자택 안에서 3살짜리 딸 캐리와 숨바꼭질을 하다가 딸이 증발하듯 사라지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캐리는 플로라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을 포기 할 수 없게 해주는 유일한 버팀목'인 딸이다.


그 해 출간된 소설 전체를 평가해 선정하는 최고 권위의 프란츠 카프카상을 수상하고, 언론에 노출을 하지 않고 살아가 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작가 플로라의 삶이 송두리째 뒤흔들리게 된다. 사라질 수 있는 공간이라는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캐리는 거짓말처럼 증발을 해버리고 경찰의 탐문조사가 계속된다.


플로라는 사건 발생 후 6개월이 지나도록 비극적인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살시도를 하는 등 극도로 힘든 시간을 보낸다.

"문득 보르헤스의 말이 떠오르면서 내가 지금 오감으로 느끼고 눈으로 마주하고 있는 이 모든 현상들이 과연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여전히 내 주변에서 강력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 P91


플로라는 자신의 고통보다는 출판사업에 대한 걱정만 하는 것 같은 친한 출판사 대표 팡틴을 의심하기도 한다. 팡틴은 팡틴 드 빌라트 출판사의 대표로, 상업성이 좋은 책을 고르는 능력이 탁월하며, 플로라의 <미로속의 소녀>라는 첫 작품이 20개국이 넘는 나라에서 출간되면서 그녀의 독립 출판사가 승승장구하기 시작한 출발점이 된 인연이다.

"난 네가 끔찍한 고통을 겪을수록 더욱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 소설을 쓰는 게 극복의 수단이 될 수 있어. 너도 알다시피 자식을 먼저 보내고 고통의 시간을 보낸 예술가들은 정말 많았어. 그들은 혹독한 시간을 창작에 대한 열정으로 승화시킨 덕분에 불후의 명작을 남길 수 있게 된거야." P53


딸 캐리가 실종된 마당에서 소설이 써질 수 있을까. 고통 속에서 글을 써서 예술로 승화시킨다는 말은 오랜 시간이 흐르고 흐른 다음에야 가능할 것이고, 고통을 잊기 위해 탈출할 수 있는 글쓰기와 예술이라는 미학도 잔인한 타자의 시선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사실 사고 발생 3일 후 발표된 사고 원인은 아파트 리모델링 공사의 안전점검이전에 플로라가 이사를 왔고, 청소업체가 빌딩 청소중 대형창문의 개폐장치를 열어둔 것 때문이었지만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플로라는 자신의 꼬인 삶이 어떤 강력한 힘, 타인이 가하는 영향력아래 있다고도 생각한다. 과연 이런 것이 가능할까. 소설속으로 빠져 들어가면서 나자신도 점점 더 혼돈스러워졌다. "나는 방금 어느 작가가 쓴 소설의 등장인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군가가 나를 매단 줄을 잡고 제멋대고 조종하는 중이었다..... 계속 인형을 매단 줄을 제 멋대로 흐트러뜨려 놓고 있었다 P92"



소설 안에는 로맹 오조르스키라는, 40세 소설가도 등장한다. 로맹의 소설에는 실존인물인 플로라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그는 21살때 소설 "메신저"를 첫선을 보이고, 그 후 18편의 소설을 썼고 하나같이 베스트셀러였던 작가, 20년이 넘도록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현실세계를 벗어나 픽션세계로 탈출하는 일상을 반복한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의 삶,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도 컴퓨터를 켜는 일상, 뚝심으로 글을 써나가면 감흥이 저절로 따라오고 펜이 스스로 움직일수 있는 날이 오는 걸까.

"나는 매일 아침 영감이 떠오르길 기다리지 않고 무조건 글쓰기에 착수했다. 글을 쓰다 보면 영감이 떠오를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내 방식대로의 규율, 뚝심, 단단한 태도로 글쓰기에 임했다. 사실 이 세상에서 쉬운 일은 없다. 그 무엇도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글을 쓰다 보면 머리가 복잡하고 괴로울 때도 있었다. 글쓰기가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감을 잡을 수 없을 때도 많았다" P99


로맹은 아내 알민과 이혼소송중이고 아들 테오의 양육권을 가지고도 분쟁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로맹에게 글쓰기가 얼마나 삶과의 경계가 모호하고 절실한지 이 구절을 보면 알 수 있다.

"모든 의욕을 상실한 나는 기계적으로 컴퓨터앞에 앉아 화면을 켰다. 푸르스름한 빛에 눈이 시렸지만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언제나 화면에 몰입했다. 내가 확고하게 믿었던 통념과 기준들이 모호해지고 있었다. 부재와 해체로 가는 전주곡, 미지의 세계를 향해 열리는 문, 하나의 다른 세계, 또 다른 삶, 아니, 여러 개의 새로운 세계와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불행하다고 느낄 때, 주변에 대화를 나눌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언제나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내 가까이에 있어주었다. 그들 가운데 더러는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도 있었다. 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어떻게 보면 어느 누구보다도 나와 가까운 존재들이었다. " P180



소설의 후반에 플로라를 둘러싼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로맹 오조르스키가 쓴 메일이 팡틴에게 발신된 메모가 나온다. 뒤통수를 얻어맞는듯한 느낌이었다. 유부남이었던 로맹이 팡틴과 결별하면서 그녀에 대한 죄스러움에 대한 선물로 "미로속의 소녀"를 선물로 보낸다.(존재감 없는 어느 프레드릭 앤더슨이라는 교사의 이름으로 숨겨서, 팡틴이 원고를 읽고 수소문할때 이 교사는 이미 숨지고 없다). 팡틴은 이 소설을 뉴욕출신의 플로라는 수수께끼같은 미스테리한 작가의 소설로 각인시켜 마케팅에 성공한다.


플로라가 쓴 소설도 아니고, 결국 로맹이 쓴 소설이었다니. 로맹이 소설을 숨겨서 보낸 것은 작가로서의 욕망을 시험해 보고 싶었던 또 다른 이유는 아니었을까.

"가령 텔레비젼 문학 프로그램에 나온 어느 비평가가 나의 최신작에 대해서는 신랄한 비판을 쏟아내다가 플로라 콘웨이의 작품에 대해서는 찬사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고 실소를 금할 수 없었어"P292

"나는 그저 내 자신이기만 한 것에 지쳤다. 나는 남들이 언젠가 내 등짝에 붙여준 이후 30년동안 줄곧 나를 따라다니는 로맹가리라는 이미지에 지쳤다 - 로맹가리" P248

무엇보다도 이 책은 소설가를 위한 소설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읽었다. 소설가였다면 이 소설의 많은 부분들이 대화를 걸어온다는 생각을 하며 읽어 나갈을지도 모른다. 배우들이 마치 그 사람인 것처럼 연기에 몰입해서 살다 보면 연기가 끝나도 배역에서 쉽사리 빠져나오기 쉽지 않듯이 소설가에게도 비슷한 일일 것이다.

"글쓰기를 할때 가장 흥분되고 짜릿한 순간이라면 아마도 작가인 내 의사와 무관하게 등장인물이 자신의 의지로 독자적인 행동에 나설 때입니다" P99,

"아무리 작가가 결정권자의 지위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소설 속에서 오롯이 모든 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걸 당신도 잘 알잖아요? 등장인물들에게도 고유의 권한이 주어지니까요.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본성과 정체성, 은밀한 삶의 이력에 위배되지 않는 결정을 내려야만 하죠. 개연성 없는 소설은 가치를 잃을 수 밖에 없으니까요." P195


소설을 읽으면서 픽션과 현실의 세계, 소설 안에서도 경계가 혼돈스러워 읽는 도중 길을 자주 잃었다. 기욤뮈소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런 것이었을까.

"나는 평생토록 현실 세계와 픽션의 경계가 대단히 모호하다고 생각해 왔다. 픽션보다 더 진실에 가까운 건 없으니까. 인간이 현실 속에서만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픽션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마치 실존하는 것으로 간주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결과적으로 실존하는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P305


소설의 끝자락에서 플로라는 서서히 고통을 극복해가면서 루텐리 형사와 새 삶을 이어가고 그녀의 소설에는 이제 로맹이 거꾸로 등장한다.

"현실에서는 플로라가 내 소설의 등장인물이지만 그녀의 소설에서는 내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고, 내가 그녀의 꼭두가시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잠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어안이 벙벙해졌다."


플로라가 했던 말은 소설을 쓰는 소설가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 나 같은 일상 블로거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내용이기도 하다. 글을 쓰면서 오롯이 자신을 응시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고, 소란한 일상에서 잠시 자신만의 세계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 의미 있는 한때를 돌아보고 사색하고 기록하는 시간일 테니까.

"나는 소설을 쓰면서 불행한 삶에서 벗어나 나 자신을 직시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만약 소설 쓰기를 통해 나의 세계를 찾아내지 못했다면 여전히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세계에서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다가 생을 마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P55


카카오의 <브런치>라는 소통의 공간이 많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작가라는 타이틀을 설레게 주고 있고, 사춘기 시절 한때 문학소년과 문학소녀를 꿈꾸었던 이들에게 희망과 열망을 준 것들, 이런 것들만 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표현하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는 세상이다. 우리 모두 소설 한편쯤 쓸 수 있는 사연들을 안고 살아가는, 때론 픽션보다 더 믿기 힘든 현재를 살아가고 사람들, 그들 머릿속에 소설한편쯤 있는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편만으로도 벅찬 삶일거니, 딱 한편쯤만.

"정말 이해하기 힘든 일은 글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는 데 반해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 작가가 되길 꿈꾸면서 원고를 보내온다는 것이었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어주는 직원부터 나이트클럽 여종업원까지 소설을 써서 보내왔다. 하긴 모두들 자기 머릿속에 소설 한편쯤은 가지고 있다고들 하니 그런 점에서는 이해가 되기도 했다"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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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내가 있었네
김영갑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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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에 온전히 영혼을 다해 미칠수 있다는것이 이것이구나..... 를 느끼게 해준 책이다! 책속에 실린 아름다운 제주의 풍광이 이렇게 예술과 자연에 미칠 수있는 예술가에게만 허락되리라ㆍ

우연히 읽은책이지만 손을 떼기힘든 여운과 슬픔과 감동을 주었다. 좋은 친구들에게도 선물하고싶은 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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