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남자를 사랑하다 - 꽃다운 소년에 열광한 중국 근세의 남색 이야기
우춘춘 지음, 이월영 옮김 / 학고재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참 고약한 책이다. 동성애에 관한 편견 정도를 다룬 내용이겠지 싶었는데 인간의 문제를 다루고 있어서 고약하다. 이 책은 참 고약하다. 제목이 선정적이어서 잔뜩 화끈할 것이란 기대를 했는데 범범하게 아무 일이 아닌 듯 조용히 ‘있는 사실’을 전하고 있어서 고약하다. 이 책은 고약하다. 성애라는 말랑말랑한 주제 속에 계급적 불평등과 힘의 문제를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보여서. 어떻게 섹스를 하는 것이 더 '도덕적'인지를 거품물고 설파하고 있는 사람이 튀기는 침,  예의도 없이 사방으로 튀기는 그 침을 닦으며 ‘친절한 금자씨’처럼 이렇게 말하고 있으니 고약하다. '너나 잘하세요. 성애는 풍조’일 뿐이거든요'.  그리고 이미 풍조가 되어 버린 이들의 행각이 성적 억압의 굴레를 과감히 벗어버린 ‘자유로운 영혼’의 상징이기 보다는, 여성의 강요 당한 금욕을 바탕으로 가능했다고 말하는 이 책은, ‘남자’라는 종족의 잔인한 이기심이 어떤 것인지를 체감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일종의 자궁에 대한 공포였을까? 여성의 몸으로 감당하는 출산과 육아, 그들을 돌보지 않고 유폐시킨 자리에서 꽃피는 동성애의 향연!  살.벌.하.다. 이 책에서는 남성 동성애에 투영된 이성애적 구조를 포착하면서도, 여자보다 더 생산성이 떨어지는 남창들의 비참한 삶까지 지적하면서 성애와 사랑의 불순함을 고발한다. 그러니 고약하다고 할 수 밖에.

동성애가 풍조가 된 세상에서, 한 남성의 첩이 되는 것을 기꺼이 감행했던 그 꽃남들은 행복했을까? 엘 워드나 퀴어 애즈 포크를 보며 이반의 세계를 경험하고 있는 우리나라에도 언젠가 이런 식의 풍조가 유행할 수 있을까? 하긴, 왕의 남자니 쌍화점 같은 영화들이 개봉되기도 하지만, 로드무비와 같은 톤은 조금은 부담스러워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커피프린스와 같은 설정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다시금 드는 생각은 이성애와 동성애는 하나라는 것이다. 남의 몸/성기를 지배하는 자들과 복종하는 자들의 구조가 바뀌지 않는 상태에선, 성애의 대상이 남자가 된들 별다른 차이가 생기지 않는다. 더군다나 그것이 작가의 말처럼 철저히 ‘이기심’으로부터 추동된 풍조라면 더 그러하다. 아니, 어쩌면 매듭이 없는 명랑한 욕망이 활기찬 세상이 될 때에야 비로소 동성애가 이성애를 위한 퀴어가 되지 않고, 동성애 자체만의 무지개가 뜨지 않을련지.

다시 한 번 책을 들척이며 줄을 그었던 부분을 훑어본다. 우선은 번역의 솜씨가 맘에 든다. 읽기에 까칠한 번역서를 읽어 나가다보면 저자의 사상이나 성향을 파악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처음부터 잘 읽힌다. 긴장하지 않고 읽어도 좋다. 대중서가 되기에는 좀 진지하다. 그렇지만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인용된 내용이나 漢詩가 읽기 부담스럽다면 안 읽어도 책의 내용을 파악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물론 묘미는 떨어지겠지만. 개중에는 놓치기 아까운 내용들이 많이 있으니까 좀 더 인내심을 발휘하면 더 좋다. 예를 들어 동성애의 정점에 있었던 청나라에서는 여우귀신의 성별도 복잡해 졌다는 부분에서는 나도 모르게 킥킥대고 웃었다. 그리고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소중화小中華를 자처했던 조선의 선비들은 이런 풍조에서 예외였을까 하는 점이다. 연동을 살만한 돈이 없었던 것일까? 일본에서는 이 시대에 동성애 소설집이 나올 정도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하던데. 명,청조의 이야기로 시작된 나의 궁금증은 이렇게 끝도 없이 이어진다. 우리나라의 선비들은 어떤 식으로 이와 같은 풍조를 수용하고 평가했을까? 이미 풍조가 되어 버린 세상에서 평소에 동성애에 대해 관심이 없던 선비들이 반강제적인 경험을 하며 주류(?)에 합세하게 된 이야기도 있었는데 말이다. 혹시 연암 박지원을 중심으로 뭉친 연암학파의 그 애끓는 우정은, 청나라의 남색 풍조가 조선식으로 활용된 일종의 ‘友癖’일까? 연암 선생을 신성시하는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나는 한 권의 책을 통해 이렇게 고인의 면목을 이리저리 상상해보는 작업이 유쾌하다. 생각에는 날개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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