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갓!
시릴 마사로토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예쁜 겉표지에 여자가 아마도라고 말하면 그건 아니다를 뜻하며 아니다라고 말하면 그건 아마도를 뜻한다 라는 문구를 보며 남여 간 사랑이야기겠거니 생각하며 무더운 여름 가볍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하여 책장을 넘겨봤다. 그렇지만 예상과는 정 반대로 사랑이야기인 듯 하면서도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큰 틀을 생각하는 소설인 듯했다. 역시 오마이 갓! 그리고 이 책이 과연 어른들을 위한 동화가 될 수 있을까? 라는 물음을 던져 본다. 그리고 스토리의 전개에 있어서 큰 축이 되는 단어들을 기본으로 이 책을 조금 더 살펴보고자 한다.

 

1 사랑

사랑의 개념을 어떻게 생각하고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사랑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당사자가 느끼는 대상과 감정에 따라 사랑 역시 그 가치와 대상이 변하는 것은 정한 이치리라. 우선 스토리의 전개에 있어서 남,여간의 사랑이야기만큼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없으리라 물론 이것역시 그 대상의 동일시가 될 때에야 재미있겠지만 말이다. 두 주인공인 남자와 여자인 알리스의 만남과 결혼 그리고 이별 그들의 분신 레오. 이런 사랑의 전개에 있어서 교통사고라는 설정은 다소 진부함을 남겨준다. 물론 이야기의 전체 구성을 보더라도 진부함이나 혹은 한두 번쯤은 들어 봤을 듯한 그리고 드라마 왕국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뻔하디 뻔한 구상일수도 있겠지만 그 속에 녹아있는 감탄할 수밖에 없는 철학적 사고의 속살을 보게 된다면 역시 프랑스구만 이라는 일장연설을 늘어놓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참고로 저자가 언급한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는 역자가 언급한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 라는 고전13장 성구보다는 요한1서에 나오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구절이 아니었을까 싶다>

오마이 갓을 읽으며 현재 나의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떠올려 본다. 나에게 이런 일이 발생된다면 뻔 한 스토리지만 생각조차도 싫다. 아마도 이야기가 나에게 오버랩 되며 재미있게 읽혀진 부분도 있을 것이라 생각 된다.

 

2. 하느님

이 책을 읽는 또는 읽으려는 독자들 중 하나님이라는 유일신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거북한 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소설로 읽는다면 나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본다. 그래도 신앙관에 있어서 상충되는 점들이 많기에 그 상충됨이 사실 기독교인들에게는 가장 근본적인 근간에 대한 상충점이라 거북하리라 예상하지만 그래도 재미로 읽는다면 하나님이라는 존재와의 우정이나 혹은 사귐에 대한 또 다른 시각적인 면들을 보게 되리라.

그렇지만 창조, 천국과 지옥, 안식일, 사후 세계에 대한 저자의 생각들 중 신존재론적인 측면을 가벼운 이야기로 전개해 가는 능력을 보게 된다. 막연한 하나님이 아닌 인간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신, 사랑으로서 서로가 동시에 탄생을 하게 되었다는 문구는 저자의 탁월함이라고 할까? 저자에 대해 인정해 주자.

신이 있다. 없다 이런 흑백논리가 아닌 신이 존재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이며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존재 하는 목적 또한 의미가 없다는 것인데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정의하고 있지만 그 구절역시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는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누구나 한번쯤은 꿈꿔봤을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친구가 된다면 특별한 계시나 초능력을 받는다면 말이다. 하지만 저자는 철저하게 인간의 자유의지를 들어 하나님이라는 신과의 중립성을 지켜가며 글을 전개하고 있다. 이쯤 되면 이 책은 혹시 기독교 관련서적이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란 대상은 신적인 존재로서의 등장이기보다는 내면의 친구 내지는 인생의 친구라고 하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3. 친구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진정한 친구를 만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주인공인 남자는 하나님과 친구였고 일방적으로 그 앞에 나타난 하나님과 절친이 되는데 물론 그런 일을 꿈꿔보기도 하겠지만 그 이상으로 하나님이라고 하여 한 인간의 인생을 장밋빛으로 바꿔준다거나 행운을 거머쥔 그런 만남이 아닌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한 만남이며 친구인 것이다. 그런데 그 속에서 드러난 친구의 관계는 단지 이야기를 듣고 들어주는 대화의 친구인 것이다. 즉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 가는 구도 속에서 어찌 보면 하나님이란 인물의 등장은 내면의 또 다른 나와의 대화가 아니었을까 생각도 된다.

프로이트를 잘 알고 있는 하나님......,

그렇지만 르네라는 사장이자 친구의 등장은 보기 좋은 설정이다. 너무 과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등장인물의 화려함이 아닌 평범하지만 사람냄새 나는 그런 친구 말이다.

그리고 여러 친구들이 있지만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아들 레오, 아들인 동시에 친구인 레오의 성장과정과 주인공의 인생의 종착점에서 그는 레오라는 아들을 통해 다시금 인생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런 것이 우리네 정서와는 사뭇 다르지만 역시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이다. 나 또한 아들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엄격한 아비는 되지 말아야지.

 

4. 유전자

인생을 살면서 또한 하나님의 마지막 질문에 대한 주인공의 답변과 알리스의 답변에서 오늘 날 나의 물음과 답을 요구하는 것 같다. 나 역시 그런 질문을 받게 된다면 정말 인생이란? 인류란? 가치가 충분하다 생각할 것인가? 우리가 인생을 마무리 할 때 그래 인생 한 번 잘 살았어 할 수 있는 동기가 된다면 그것이 유전자가 아닐까 한다. 나라는 존재는 한 줌 먼지로 사라지겠지만 나와 닮은 나와 같은 유전자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리 인생의 종착점이 어두움만은 아닐 것이다.

 

5. 구조

이 책은 짧은 단편의 이야기들이 인생이란 긴 여정의 중요한 컷들만을 모아서 만든 작은 일기장 같은 느낌이 든다. 아니 회고록이라 해야 할까? 그런 시간의 흐름과 등장인물들과의 긴장과 관계 속에서 인생을 되돌아보게 하며 또한 가치에 대해서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처음 언급했던 어른들을 위한 동화가 될 수 있느냐 라는 물음에는 동화가 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동화 보다는 우리가 가야하는 인생에 대한 많은 부분들을 생각하고 고민하며 재미로 풀어내는 오마이 갓을 통해 느껴 볼 수 있을 것이다.

 

6. 신정론

역시 오마이 갓에서 빠지진 않고 봐야 할 부분이 신정론인 것 같다.

인생의 고통과 고난에 대한 주인공의 처절한 외침과 아픔, 그렇지만 그렇게 처절하게 등장시키지는 않는다. 그런 인생의 고난과 고통에 대한 문제들에 있어서 우리의 태도는 어떠한가? 아마 나 하나만 챙기기에도 급급한 현실에서 무엇을 돌아 볼 수 있을까? 하지만 고통과 고난에 대한 부르짖음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은 욥기를 생각나게 한다. 동문서답같은 대화에서 그런 고통과 고난에 대해서 우리가 취하는 무관심과 방종은 극단적 이기주의를 넘어서는 사악함마저 그려내고 있으니 말이다. 때론 그런 절규가 나의 절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이제 소설을 통해 그런 외침에 대해 나 역시 방관자가 된 모습을 회개케 한다.

그리고 침묵이 아닌 작은 외침이겠지만 고통가운데 하나님 홀로 그 고통을 느끼게 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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