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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도 계약이다 - 안전하고 자유로운 사랑을 위하여
박수빈 지음 / 창비 / 2019년 3월
평점 :
<연애도 계약이다>
최근 칼럼니스트 도우리 작가님이 ‘탈연애’를 선언했습니다. 우리를 숨 막히게 하는 사회적 프레임, 이른바 ‘정상연애’라는 틀에서 벗어나자는 취지에서였지요. 그는 사람들의 연애가 사회적 요구와 내적 관념 때문에 많은 사람이 그들에게 적합한 연애형태를 고민하거나 실천하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하며, 기존의 연애관에서 보다 자유로워질 것을 권합니다.
이 책, <연애도 계약이다> 역시 큰 틀에서 본다면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책의 글쓴이인 박수빈 변호사는 각 개인은 각자에게 맞는 연애의 형태가 있으며, 그 때문에 연애의 상대가 되는 사람과의 현실적인 대화가 필요하다고 이야기 하니 말입니다. 그는 사랑-저의 방식대로 풀어보자면 ‘끌림’-과 연애는 다른 것이며, 연애는 현실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합니다. 연애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확정하는 약속이자 한 가지 ‘형식’이라는 사실을 짚은 것이겠지요. 그는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연애는 왜 계약일 수 없는가?’라는 신선하고도 급진적인 질문을 던지며, 책을 시작합니다.
이러한 관점은 제가 평소 가지고 있었던 문제의식과도 맞닿아 있었기에 이 책에 대해 다소의 흥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시기 좋게 창비 출판사에서 서평단을 모집하고 있어 재빨리 신청양식을 채워 제출했고, 운 좋게도 당첨돼 가제본을 받아 읽어볼 수 있었습니다.
받아보게 된 책은 처음 기대했던 모습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이런 핑크색 커버를 기대했었는데..

도착한 것은 이런 하얀 표지의 책이었네요. 그런데 가만 보니 이것도 썩 나쁘진 않습니다. 가제본이라 하얀 것 같기도 하고요.
사실 처음에는 이 책이 제가 본래 연애게 대하여 가지고 있는 사유를 깊이하고, 확장해줄 것을 기대했습니다. 헌데, 막상 받아서 읽게 되자 기대와는 조금 다른 부분이 있었습니다. 책은 연애가 가지는 의미라던가 혹은 정상연애로 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심도 있게 다루기보다, 당장 나에게 맞지 않는 연애, 나를 위하지 않은 연애 경험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실용성 있는 조언들을 던지는 책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이게 또 영 나쁘지만은 않았습니다. 이 책은 정말 ‘괜찮은 연애 가이드’였거든요. 책의 내용은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연애를 고민하는 사람들 앞에 합리적인 기준을 제시합니다. 그러면서도 중간 중간에 연애는 “서로에 대한 끊임없는 배려와 조정의 과정으로 빚어지는 상호작용”이라는 사실을 확인 시켜주지요. 책 자체의 구성은 심플하지만 독자를 위한 배려를 잃지 않는다는 점에서 훌륭한 책입니다.
글쓴이는 만남부터 연애, 이별까지 연애의 여러 단계-혹은 그저 다른 층위-를 두고 우리가 지녀야 할 자세를 제시해주고자 합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관계를 구성하는 핵심은 글을 읽는 독자가 주체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도록 남겨두어, ‘참견’이 아니라 ‘조언’으로 남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결국 연애란 ‘나와 그(혹은 보다 다수)의 것’이지 다른 이의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각 사람마다 그에게 맞는 연애의 모습은 모두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지요.
흥미로웠던 것은 그가 만남과 헤어짐을 마주하는 우리의 자세 뿐 아니라. 썸도, 데이트도, 연애도 아닌 것. 그러니까 데이트 폭력이나 디지털 성범죄, 스토킹 등 연애와 모종의 관계를 맺어왔을 것으로 생각되는 ‘범죄’에 대해서도 실용적이며, 또한 법률적인 조언을 남긴다는 것입니다. 여태껏 이러한 문제들은 공적이거나 사적인 두 영역 모두로부터 외면 받아왔는데, ‘공적이기엔 너무 사적이고, 사적이기엔 너무 공적이다’라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심지어 침묵으로 모자라 폭력을 낭만화시켜 자신의 침묵을 합리화하기도 하였죠. 그런데 이 책의 경우에는 폭력을 바로보고,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신선하며, 고무적입니다.
아마 글쓴이가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본인의 경험담이나 연애 이야기를 법률적 사례와 연관 지어 설명하는 부분도 은근 시니컬하게 느껴져서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기존의 연애관이 남성중심적으로 생성되어온 것을 꿰뚫으며, 여성독자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말도 던지려고 시도하는데.. 최근의 사회적 분위기나 논의들에 대해 다소 부담스러워하는 독자라도 거부감 없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적혔다는 데서 다시 한 번 글쓴이의 배려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졸면서 썼더니 뭐라고 쓴건지 모르겠네요.
그럼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