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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0 아마도 현대 세계에서, 특히 도시의 비인격적인 삶 속에서 일반인이 갖기 쉬운 위험스런 두 경향은 자신을 잊어버리고 심지어 자신을 기만하는 것이리라. 우리는 복잡한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면서 누구에게 말을 거는 일이 거의 없다. 종일 사무실에서 자신이 맡은 직무에만 몰두하며, 저녁에는 텔레비전이 우리를 가정 생활의 현실로부터 끌어내어 환상적인 문화속으로 빨아들이도록 내버려둔다.

우리는 자신의 개성을 확인할 필요가 있고, 우리를 파괴시키려는 하위 문화(sub-cultures)에서 벗어나야 하며, 개인적인 자유를 빼앗는 것에 대해 대항하고, 진정 자신이 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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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런던의 침례회 설교자 스펄전의 목회자들과 목회자 후보생들을 향한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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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56 더 나아가서 성경이 진정한 자유로 상징하고 있는 것은, 갈매기의 비상이아니라 독수리의 비상이다. 「갈매기의 꿈」이 말하는 거짓 복음은 다름 아닌 무지와 물질주의 그리고 실패로부터 우리가 "우리 자신을 끌어올릴 수 있다."(27)고 하는 것이다. 반면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복음은 그분이 우리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이 말하는 ‘비상‘은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예수님에 의한 구원을 상징한다. 다시 말해 성경이 보여 주는 것은 부단히 날개를 퍼덕거리는 것이 아니라, 날개를 펼쳐서 바람을 타기만 하면 되는 것, 자아의 노력 없이도 창공으로 높이 솟아오르는 모습이다.

구약의 지혜서에는 독수리의 비상에 대해 괄목할 만한 언급이 두 번 나오는데, 모두 그 신비와 위엄에 역점을 두고 있다.  하나님이 욥에게 물으신다. "독수리가 공중에 떠서 높은 곳에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 어찌 네 명령을 의지함이냐?"(욥 39:27) 이 물음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독수리가 높이 날아오르는것은 인간의 이해와 통제를 넘어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어느 현자는 그가 "기이히 여기는 네 가지 현상 중 한 가지는 "공중에 날아다니는 독수리의 자취 (잠 30:18-19)라고 고백했다.
그러나 독수리의 비상이 수수께끼 같음에도 불구하고 그 힘에 대한 시각적 상징은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과 개인의 경험에서 나타난 대로, 하나님의 구원 능력을 예시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애굽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키시는 모습을 그리면서, 그분이 그들을 "독수리 날개로 업어  그에게로 인도하였다" (출 19:4)고 한다. 그리고 심지어 이백성이 약함을 의식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가는 것"(사 40:31; 참고, 시 103:5) 이상의 열망을 품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 노력(Self-effort)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새 힘을 얻는" 자들,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한 자들, 그리하여 독수리 같이 비상하는 자들은 오직 여호와만을 간절히 앙망하며 신뢰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사 40: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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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5 (갈매기의꿈)-이 책은 우리가 자유로운 존재이기 때문에 원하는 대로 되고 가고 싶은 대로 갈 수 있으며, 그 어떤 것도 우리의 자아 실현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래서 리처드 바크는 부인과 여섯 자녀를 떠나면서, 자유만이 인생의 진정한 이슈이며, 결혼이나 가족, 그 어떤 것도 개인적 자유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p.56 그러나 성경의 가르침에 따르면, 자유에 이르는 길은 정확히 그 반대다.
진정한 자유는 자신을 위해 살아 보겠다고 하면서 하나님과 사람들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하나님과 이웃을 위한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의 선입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진정한 자유다.
예수님이 가르치셨듯이, 자아를 발견하는 길은 바로 자아를 부인하는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를 위해 살기로 고집한다면 자신을 잃을 것이요, 사랑안에서 기꺼이 스스로를 버리고자 한다면 정녕 자신을 찾을 것이다. 자기 중심적인 사고에 대해 죽어야만 정녕 살기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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