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바이러스 - 그 해악과 파괴의 역사
헤르만 크노플라허 지음, 박미화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오스트리아의 교통 전문가인 저자는 대담하게도 이렇게 말한다.

한 해에도 수백만 명이 넘는 사람이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그리고 이보다 2배에 가까운 사람들이 자동차 배기가스로 인한 질병으로 일찍 생을 마감한다. 자동차 때문에 죽어가는 인명은 전쟁으로 인한 희생자의 수에 비견될 정도다. 눈앞에 자동차로 인한 피해가 명백히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자들의 두뇌는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들의 두뇌는 자동차의 지배를 받고 있고,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 역시 인간 중심이 아니라 자동차 중심인 것이다. p188

그리고 그것은 인류가 자동차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기 때문이라고.

이 책은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나는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의 생존 메카니즘을 보았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자동차를 이용할 때 절약되는 신체 에너지 1줄(Joule)에 대한 화석 에너지는 200~400줄에 달한다. 그러나 자동차 운전자는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그저 자동차를 이용하면 에너지와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뿐이다.

그러니까 내가 걷지 않고 자동차를 탐으로써 아낄 수 있는 신체 에너지는 1줄에 불과하고, 그것을 줄이기 위해 내가 딛고 있는 지구의 한정된 자원을 그 200~400배나 쓰고 있는데도 그것은 내주머니에서 나가는 게 아니기 때문에 나는 모르는 일이라는 것이다. 내 자손의 자손들이 써야할 것을 지금 나 편하자고 당겨쓰는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는다 해도 인간의 선의에만 기대어 당장의 편리를 희생해 자동차 사용을 억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내가 존경하는 플랜B 3.0의 저자 레스터 브라운은 이렇게 말했다.

"휘발유를 태우는 것은 매우 비용이 많이 들지만 시장은 우리에게 그것이 싸다고 말한다." 브라운은 자본주의 경제의 시장 왜곡을 지적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원유 가격이 배럴당 130달러까지 치솟아 세계가 아우성이지만, 그의 계산에 따르면 지금의 휘발유 값은 터무니없이 낮다. "미국 주유소에서 휘발유는 1갤런(3.785L)에 3달러이지만 석유산업에 대한 세금 감면, 중동에서 석유를 확보하기 위해 지출하는 군사비(최근의 이라크 전쟁 비용으로 미국은 4500억 달러를 썼다), 공기 오염으로 인한 호흡기 질환을 치료하는 비용, 기후변화에 따르는 재난 비용 등을 모두 반영하면 지금의 다섯 배인 15달러가 되어야 한다."

현재의 편의를 위해 미래의 자원을 당겨쓰는 것은 신용카드의 원리와도 통한다. 조금 불편해도 현재의 수입으로 현재를 살아야 마땅한데 미래의 수입까지 당겨 현재를 누린다. 자동차 보험에서 자신의 보험요율을 올리지 않고 보상받을 수 있는 한도가 200만원으로 높아지자 수리업소에서 살짝 긁히기만 한 차를 훼손해 190만원어치 새단장을 종용하는 케이스가 늘었고, 사람들은 그것이 내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이 아니라며 공돈으로 말끔한 새차가 되었다고 좋아한다. 그럼으로써 보험회사의 손해율이 높아져 전체 보험가입자의 보험료가 오름으로써 전체가 그 값을 치른다. 눈가리고 아웅하는 미련한 일이다.

자동차가 그렇게도 인류의 삶에 도움이 안된다면 많은 이들이 그 사실을 깨닫고 자동차 바이러스를 극복해 낸다면 매해 더 많은 차를 생산해 팔아야 하는 자동차 산업에 종사하는 수많은 사람의 생계는 어떻게 하냐고? 방법을 찾아야겠지. 나는 최근 GE가 삼성 LG에 밀려 돈 안되는 백색가전을 버리고 신재생에너지에 사업역량을 집중하기로 결정한 것을 보고 무서운 싸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 GE하면 고급냉장고를 떠올릴 만큼 대표적인 사업이었는데 현재의 지구와 자신들의 사업역량을 냉정히 판단하고 더 오래갈 수 있는 분야를 찾은 것이다.

기계를 만들어서 자꾸 팔아야만 생존할 수 있는 회사들은 평생 쓸 수 있는 튼튼한 물건을 만들어서는 안된다. 2년 3년마다 고장이 나서 새로운 기계를 사들일 수밖에 없도록 기계를 만들어야만 한다. 그리고 한정된 자원을 그렇게 밖에 활용하지 않는 것은 어떤 면에서 죄악이다. 그러니 공존하기 위해 벌집 자체를 다 잡아먹어버리지는 않는 벌집나방과 같은 지혜가 필요하다. 하다못해 매독균 같은 바이러스도 중세에는 금세 고름으로 뒤덮여 숙주를 죽게 만들어버리다가 그것보다는 숙주는 살려둔 채 오래 그 숙주와 함께 사는 방향으로 진화했다지 않는가 말이다.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것. 아니 지금처럼 흥청망청 써대다가는 내가 무분별하게 훼손시켜버린 지구와 함께 멸망하게 되리라는 것을 자각하고 행동하기. 인간사회의 구조가 지구와 공존할 수 있도록 대대적인 조정이 이루어질 때까지 양심있는 인간은 그것을 미덕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 자동차의 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것들
 
가능하면 걷기
조금 먼 곳은 자전거 타기
1인 자동차 출근은 되도록 하지 말기(카풀 같은 거 하자구요)
자동차를 탈 때는 속도 줄이기(소음과 배기가스는 속도를 높일수록 배가된다고 한다)

 
> 고해성사
 
그래놓고 지난 주말에 자동차 타고 강원도 여행 다녀왔습니다.
그래놓고 지난 주에 신용카드로 원단 사제꼈습니다.
 
> 발췌
 
그리스 신화를 보면 프로메테우스가 저지른 행동 때문에 여러 가지 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한다. 앞을 내다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리 생각할 수 있는 능력'뿐만 아니라 '앞날을 예견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추어야 한다. 프로메테우스의 일화를 통해 우리는 경솔한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실감할 수 있다.... 나중에 생각하는 인간이라는 뜻의 이름을 받은 에피메테우스는 과학 기술의 발달 속도가 느리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의 수호신으로 적합할 듯하다. 자신의 발명품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과학자나 기술자 그리고 과학 기술의 발달이 어디에서 출발했으며 앞으로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짐작하지 못하는 사람들 역시 '에피메테우스적' 인간이라 하겠다 p14

인간은 무언가를 취해 시험해 보고 그것이 계획대로 움직이면 그것을 표준화한다. 오늘날에도 이 같은 원리는 변함이 없다. 그러다 문제가 발생하면 표준화된 체계를 부정하기 시작하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단 지금까지 이익을 취한 집단의 이익이 이전과 변함이 없거나 이전보다 더 큰 이익을 취할 수 있다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대표적인 예로 건설업과 교통 산업을 들 수 있는데, 최근 정보 산업 역시 이들과 같은 길을 가고 있다. "기술로 발생한 문제는 기술로 해결해야 한다"는 근본적인 논리는 교통 분야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확산되어 있는 잘못된 생각이다. 기술지상주의를 대변하는 사람들은 기술에 대해 확신에 차 있으며,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들이 우월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이 받은 교육과 그동안 거둔 미시적인 성공으로 인해 한쪽 두뇌를 잃고 말았다. 즉 기술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적용하는 기본적인 계산에 의심을 품지 않으며 자신들이 세운 공식이 적용될 수 있는 외부적 상황이나 제약 조건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p41 

 p48
국가의 문명수준이 낮을수록 인기가 높은 자동차 경기

F1 총 경주 거리와 경주를 개최하기 위해 쏟은 시간 전체를 계산해 보면 F1 경주 자동차의 평균 속도는 시속 몇 미터밖에 안된다... 자동차 경주에 쏟은 시간과 실제로 자동차가 경주한 시간을 기준으로 계산해 보면 관람객 중에 걸음이 가장 느린 사람도 F1 경주차를 추월할 수 있을 정도다.

문명화된 국가에서 랠리 경기가 더 이상 사람들의 관심을 얻지 못하는 것은 랠리 경기가 시대를 역행하는 단순한 구경거리에 불과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이제 랠리 경기로 사람들의 주목을 끌려면 개발도상국으로 장소를 이동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왔군 F1

이동속도를 증가시켜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교통 시스템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동 수단의 속력을 높이거나 도로와 철로를 건설하면 단기적으로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원상태로 돌아간다.전 세계적으로 이동 시간은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속도가 증가하는 만큼 도로의 길이도 증가한다. 집 일자리, 쇼핑센터 등 일상생활과 밀접한 장소 간의 거리가 멀어지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동시간은 1초도 절약할 수 없게 된다.p104

자동차 교통으로 인해 건강에 해로운 유해물질 수치가 평균치를 넘어도 교통관청이나 정부는 자동차 교통을 제한하는 대신 국민에게 야외로 나가는 것을 삼가고 실내에서 생활할 것을 권한다. p110
==>생각해보니 어처구니 없는 짓이다.

도시계획자들은 살아 숨쉬는 도시를 각각의 기능으로 분리해 기능별로 나누어 놓았다. 그 결과 주거지에는 주택만, 상가 지역에는 상가만 모이게 되었고 자동차가 없이는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 없게 되었다. 공공장소의 범위는 자동차 교통을 기준으로 결정되었으며 도로의 수명을 늘리고 추가 조명을 설치하기 위해 많은 자금이 투입되었다. 이때 사용되는 돈은 자동차 운전자들뿐 아니라 비운전자들도 함께 부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익을 얻는 것은 자동차 운전자뿐이다. 이렇듯 봉건주의적 자동차 교통이 확립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동차의 마법에 걸린 탓이다.p111

소음: 자동차 사회의 암세포

로베르트 코흐는 1910년 "인간이 콜레라나 페스트 같은 질병처럼 소음과 맞서 싸워야 할 날이 올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소음 때문에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귀가 아니라 호르몬 체계다. (중략)로베르트 코흐는 1910년에 이미 국민총생산량이 몰라보게 성장한 오늘날의 상황을 정확히 예측했다. 그러나 경제가 성장한 만큼 치료비도 상승한다. 특히 암 치료는 많은 비용이 들 뿐 아니라 치료 기간도 길어 제약회사는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다. 수입원을 확실히 챙기려는 제약회사 역시 자동차 교통을 지지하고 자동차 업계의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한다. 한마디로 인간의 건강을 희생하는 대가로 돈을 벌려는 것이다.

소음은 무기로 쓰이기도 한다...뉴욕시 경찰 역시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엘라드를 사용한다고 한다. 엘라드는 인간이 견디기 힘든 크기와 주파수로 음압을 높게 해 소음을 내보내는 기기다. 교통 소음 역시 듣기 불쾌한 공명 주파수 파장을 지니고 있으며 음압도 높다. 특히 무게가 많이 나가는 대형 화물차들이 빠른 속도로 달릴 때 발생하는 소음의 음압은 매우 높다.

음압은 교통량의 증가만큼만 증가하는데, 속력이 증가하면 음압은 2,3배 이상 높아진다. (중략) 시내에서 속도를 제한하는 것이 순환도로를 건설하는 것보다 소음 공해를 줄일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P121

자동차 업계는 자동차 제조 기술이 배기가스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며 문제를 단순화시킨다. 이런 태도는 얍삽하지만 매우 영리한 전략이다. 자동차 제조 기술이 배기가스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희망을 줌으로써 큰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로운 사업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정치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배기가스 제재조치 시행을 연기시키는 방식으로 과거의 실수가 다시 반복된다...자동차 배기가스는 기술공학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시스템 전체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배기가스의 양은 2가지 요소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첫째는 자동차 교통량이고 둘째는 속도다.P127

자동차를 이용할 때 절약되는 신체 에너지 1줄(Joule)에 대한 화석 에너지는 200~400줄에 달한다. 그러나 자동차 운전자는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그저 자동차를 이용하면 에너지와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뿐이다.또한 자동차에 시동을 걸 때 자동차 배기가스가 신체 내부로 들어가 직접적인 해를 끼칠 것이라 걱정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자동차 배기가스가 여과되지 않고 배출되면 폐와 간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것이다. 공학기술 덕분에 유독 성분을 여과시킬 수 있는 장치가 개발되긴 했지만 유해성분을 100퍼센트 걸러낼 수는 없다...(중략) 자동차 중심의 교통 시스템은 이미 그 기능 면에서 한계에 직면했으나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낮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는 자동차 연료비 땜누에 생기는 문제는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짐이다. 산업이나 자동차 교통으로 인한 기후 변화는 이미 정체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생태계 파괴는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부정적인 결과보다는 자동차를 이용했을 때 직접적으로 얻을 수 있는 장점만이 부각되고 있다. 더구나 생활환경의 질이 떨어지면 직립보행을 하는 인간은 점점 더 자동차에 의존하게 된다. 자동차가 인류를 구원해 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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