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밤
한느 오스타빅 지음, 함연진 옮김 / 열아홉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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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제목에 대하여

 

노르웨이 작가 한느 오스타빅의 소설 <Kjærlighet>는 노르웨이어로 사랑을 뜻한다고 한다. 영어판 제목은 이를 그대로 번역해 <Love>로 출간됐다고 한다. 한편 한국어판은 이와는 조금 다른 관점의 제목을 제시한다. <아들의 밤>이다. 이 작품의 핵심 인물인 엄마와 아들의 관계에 좀 더 집중한 제목 같다.

 

이 작품에서 나오지 않는 것

 

<아들의 밤>이라는 책 제목에서 쉽게 연상할 수 있듯, 아들이 있으니 당연히 엄마가 나올 것이다. 엄마 비베케와 아들 욘.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아들이라는 표현이 없다. 엄마와 아들이 등장하는 소설인데, 어떻게 엄마의 입에서 아들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을 수가 있을까.

 

이 책의 표지가 친절하게 말해주지 않았다면 비베케와 욘이 어떤 관계인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은 소설의 중반이 넘어갔을 무렵이다. 말하자면 그전까지는 이라는 어린아이가 있고, ‘비베케라는 여자가 있을 뿐이다.

 

비베케는 대화나 지문에서 끝까지 자신의 아이를 아들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름만을 부를뿐이다. 설마 노르웨이어에는 아들이라는 단어가 없는 걸까? 국내 정식 번역 출간된 노르웨이 작가 요 네스뵈의 범죄소설 제목이 아들(Sønnen)’이었잖은가. 이건 아닐 것이다. 따라서 두 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첫째는 노르웨이에서는 엄마가 아들을 부를때 무조건 이름만을 부르는 관습이 있을 가능성이다, 둘째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이 단어를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아마도 작가는 엄마의 모성이 희박하다면, 아들이라는 단어는 이 소설 내에서 철저히 없어져야 한다고 본게 아닐까.

 

이야기 따라가기

 

싱글맘 비베케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 내일이 아들의 생일이라는 것도 까맣게 잊어버릴 정도의 외로움이다. 그녀는 아이의 생일도 아이의 존재도 잊어버린 채 하루 동안 자신의 사랑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자신이 처음에 원했던 엔지니어 남자는 만나지 못하고, 엉뚱하게도 이동식 놀이기구를 관리하는 남자와 이상한 사랑에 빠진다.

 

이 소설의 대부분은 하루 동안 엄마 비베케가 겪는 연애 이야기이며 나머지는 반대편에서 아이가 뭘 하고 있는지를 교차해서 보여주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작가는 이런 교차 방법을 영화처럼 서술한다. 부연설명을 하자면 보통 소설에서는 한 줄 이상의 행 갈음을 하는 방식으로 인물과 상황, 장면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독자의 가독성을 높이려는 방법이다. 심지어 내가 쓰고 있는 이 리뷰 글도 그러하다. 하지만 한나 오스타빅은 의도적으로 그런 방식을 거부하고 하나의 서술적 흐름 중간에 다른 장면을 곧바로 이어붙여 버리는 방식을 취한다.

 

이런 서술 방식은 소설 독자들에게는 장소와 인물이 바뀌었단 걸 뒤늦게 알 수밖에 없는, 꽤 불친절한 방식이다. 하지만 작가는 아이러니를 극대화하고자 한 듯하다. 엄마와 아이 두 사람이 마치 한 장소에 있는 것처럼 그리고 싶었던 것이리라. 하지만 두 사람은 끝내 다시 만나지 못한다.

 

사랑 없는 사랑, 아들 없는 아들의 밤, 모성 없는 모래성의 이야기

 

엄마가 하룻밤 동안의 연애에 빠져 방황하는 한편, 내일이면 아홉 살이 되는 욘은 엄마를 기다리며 여자 친구 집에서 논다. 욘은 곧 자신의 생일이 온다는 것에 설레며 엄마의 빈자리를 더욱 강하게 느낀다.

 

욘은 여자 친구 집에서 놀다가 깜빡 잠들어버린다. 마침 집으로 돌아온 친구의 엄마 아빠와 만나게 되는 욘. 욘은 낯선 어른에게서 아빠와의 거리감을 느끼고, 엄마의 온기를 느낀다.

 

친구 집에서 돌아온 욘은 집 문이 잠겨 있는 것을 알게 된다. 마침 차를 몰고 근처를 지나가던 수상한 여자가 문 앞에 앉아있는 욘에게 차에 타라고 한다. 자신의 직업을 심령술사라고 말한 여자는 욘을 뒷자리에 태우고 맥주를 사기 위해 20km쯤 가야 하는 주유소로 간다.

 

주유소로 가던 도중 욘은 뭔가 어지럼증과 불안감을 느껴 차에서 내려달라고 하고, 구토를 한다. 그저 잠시 말상대가 필요했을 뿐인 거 같기도 한 심령술사는 무책임하게도 알아서 집에 돌아가겠다라는 아이의 말대로 그냥 욘을 버려둔 채 차를 몰고 사라진다.

 

욘은 추위에 시달리며 힘겹게 집으로 돌아왔지만, 엄마의 자동차는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엄마가 그사이에 집에 들어왔을 거란 생각도 하지 못한다. 아이는 그저 엄마가 언제쯤 돌아올지를 기다리며 문 앞에서 잠이 든다. 그리고 서서히 얼어붙어 간다.

 

소설에 드러난 비베케의 모성은 모래성과 같다. 열쇠가 자신의 주머니에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최소한, 한 번쯤은 아이를 생각하지 않을까. 적어도 집에 들어갔을 때 아이가 집 안에 있는지 확인은 해봐야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비베케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왜 그랬을까? 말하자면 아들의 밤반대편에는 엄마의 밤이 있었다. 아마도, 그녀에게 그날은 매우 추운 엄마의 밤이었으리라. 엄마의 밤은 아들의 밤을 헤아리지 못하며, 별이 떨어지는 것 역시 막지 못한다.



그러자 그녀는 누군가 죽어야 다른 사람들이 살아 즐길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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