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명품
최완수 지음 / 현암사 / 2017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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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고가임에도 기대를 하고 구매하게 되었는데, 실망을 금할 수가 없네요.

p.43~45에 걸쳐 <명선>이라는 작품을 소개해 놓은 글을 보고 참으로 납득이 되지를 않습니다.

p.44에 있는 <명선> 작품 사진을 보면 첫 느낌이 이게 과연 추사 김정희 선생님의 작품인가? 싶을 정도로 기품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찬찬히 살펴보면 진짜가 맞나?하는 의문이 점점 더 커지게 됩니다. 서예를 제대로 배우고 익힌 사람이라면 누구나 물음표를 던질 수 밖에 없는 작품입니다. 그런데도 이 책에서는 진품이라는 주장을 마치 당연한 것처럼 풀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p.45의 글을 보면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방서(곁에 쓴 작은 글씨)의 내용으로 이를 확인할 수 있는데 이해 2월 20일에 추사가 초의에게 보낸 편지(550족 참조)와 12월 5일에 추사가 초의에게 편지(556족 참조)에서 병거사가 보낸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어 이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해준다. 뿐만 아니라 방서 글씨와 두 편지 글씨의 서체가 거의 동일한 예해 합체(예서와 해서를 합친 서체)로 서로 구별할 수 없는 추사체임에랴! 따라서 <명선>은 추사 50세 때의 대표작이라 해야 하겠다. 


외람되지만 과연 550쪽과 556쪽의 편지 글과 이 작품의 글이 같은 수준으로 보여서 이런 글을 적으신건지??? 정말 그렇다면 감히 말씀드리건데 이 책의 저자께서는 서예를 전혀 모르는 분이라고 밖에 할 수가 없네요. 작품 감상에 대한 심미안은 주관적이랄 수도 있기에 일단 넘어가더라도 <명선>의 방서 글씨는 해서와 행서를 합친 해행 서체이고, 편지 글은 둘 다 행서와 초서를 병행한 행초 서체 글씨인데, 책 본문에서는

뿐만 아니라 방서 글씨와 두 편지 글씨의 서체가 거의 동일한 예해 합체(예서와 해서를 합친 서체)로 서로 구별할 수 없는 추사체임에랴! 따라서

라는 설명은 어떻게 가능한건지???

서예의 서체(전예해행초) 구분은 가장 기초적인 내용인데 이런 부분을 착각하실리는 만무하고, 너무 어처구니가 없네요. 과연 어떻게 이런 책이 이렇게 쓰이고 출판될 수 있는지... 머리 속이 멍해지고 말문이 막힙니다.

<명선> 작품 전체로 놓고 보면 명선 두 글자는 분명 예서가 맞고, 양 옆의 작은 글씨는 해행이라고 하면 납득이 가지만, 책에선 분명 방서 글씨와 두 편지 글씨가 예해 합체라고 적어 놓고 계시므로 이 부분은 개인적인 비난이 아니라 정말 이 저자께서 서예를 아시기는 하는걸까?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편지속에 그런 내용이 있다고 이 <명선> 작품이 진품이라는 논리는 지금 제가 거북선을 한 척 가지고 있는데 이순신 장군 편지에서 거북선에 대한 언급이 있었기에 제가 가지고 있는 이 거북선이 그 당시의 진품 거북선이다라고 말하는거와 무엇이 다릅니까?

또한 책에서 언급하신대로 550쪽과 556족의 편지 글씨와 이 <명선> 작품의 방서 글씨를 비교해보면 그 글씨의 수준이 정말 비교불가입니다.(인터넷 상으로 도는 작품사진으로는 명확하게 잘 보이지 않지만 이번 책을 통해 보는 작품 사진으로는 분명하게 보입니다.) 

이는 서예를 진지하게 제대로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일겁니다. <명선>이라는 예서 부분도 추사 선생님의 기품이 나타나지 않고 용필이 단조롭고 특히 기필과 수필이 추사 선생님의 예서 용필이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이 주제와는 다른 이야기이지만, 실제 중국의 백석신군비에서 집자한 명선과 맞다 안맞다는 것으로 진위를 구분하려는거는 서예를 모르고 하시는 말씀들입니다. 비문 글자와 똑같이 쓸 수도 있고, 비문의 필의만 가져오고 다르게 쓸 수도 있습니다. 인터넷 기사 검색을 해보면 이걸로 진품이다. 위작이다. 주장하는 내용들이 있는데 이는 양쪽 다 근거가 될 수 없는 말씀입니다.)

이 <명선> 예서 부분은 진위논란에서 한 번 양보한다고 하더라도 시선을 돌려 양 옆의 방서를 보면 이는 도저히 용납이 안됩니다. 해행서 글자 중심이 전혀 맞지를 않고 좌측의 '용백석신군비의' 부분에서는 더욱 심합니다. 행서를 써는 초심자들이 자주 범하는 실수중의 하나입니다. 서예에서 모든 글자 한 자 한 자는 그 각각의 중심이라는게 있습니다. 자획의 크고 작고는 변화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나 그 중심을 맞추지 못하면 기초적인 장법 배치가 어긋나 좋은 작품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서예 초심자들은 글자의 중심 파악을 잘 못하기도 하지만, 파악을 해도 특히 행초서에서는 변화가 많기에 그 중심을 일관되게 유지하면서 세로로 길게 써 내려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종이를 접어서 써 내려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게 해도 써 내려가면서 중심을 잃어 비뚤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예에서 작가의 의도된 중심 무너뜨리기가 아니라면 이런 세로 중심 맞추기는 기본중의 기본입니다. 그런데 이 <명선>작품의 양 옆의 방서는 그것이 다 무너져 있습니다. 좀 더 자세히 한 자 한 자 살펴보면 그 필획, 결구는 해행서로서 그냥 아주 평범한 붓으로 쓴 글씨 수준이지 더 이상 언급할 것도 없습니다. 이를 두고 명품 서예, 더군다나 다른 분도 아닌 절세의 추사 선생님의 작품이라고 한다는건 정말 선생님에 대한 모독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예를 깊이 모르는 분이라도 550쪽과 556쪽의 편지글과 나란히 놓고 대조해 보면 확연한 차이를 느끼실겁니다. '초의(艸衣)''라는 두 글자만 서로서로 비교해 보아도 용필과 결구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전무후무한 절세의 대가이신 추사 김정희 선생님께서 <명선> 정도의 서예 작품을 써 놓았다는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림 아래에 보니 간송미술관 소장으로 되어 있군요. <명선> 작품이 간송미술관 소장품이라 어쩔 수 없이 진품이라 주장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학자적 양심이나 훌륭한 문화유산과 선조들에 대한 예를 갖춘다면 내 소유냐 아니냐는 부차적 문제로 여겨집니다. 서예에 대한 안목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진위를 알아 볼 수 있는 작품을 그 분야 최고의 전문가분 중의 한 분일텐데 이렇게 계속 진품으로 소개하고 기본 설명이 엉터리이고 본말이 전도된 설명으로 풀아나가는 책을 보며 참담함을 금할 수가 없네요. 이 한가지 만으로도 이 책의 여타 귀중한 자료와 설명들이 그 빛을 잃게 되어 안타깝고, 책에 대한 신뢰감이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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