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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시작하기 전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조금 해보려 합니다.
지방에서 올라와서 친형과 작은 아파트에서 함께 지내며,
나름 취사병 출신이라는 그럴싸한 이유로, 또 동생이니까...
혹은 누군가는 집안 일을 해야하는 자연스러운 분업현상(?)의 결과로...
또는 형에 비해 제법 깔끔한 제 성격탓에,
어느덧 집안 일을 도맡게 되었더랬죠.
집안 일...그거 쉬운 게 아니더군요.
전에도 자취를 해보긴 했지만, 혼자일 때와는 정말 다르네요.
쓰레기버리기에서부터 화장실 청소까지.
뭔가 하긴 했는데 그리 티는 안나는.
그러다보니 해야할 일들과 집안 일이 겹쳐 이래저래 짜증이 날 때도 있고,
때로는 자립심 강한 젊은이가 된 기분에 살짝 도취되어 보기도 하고,
뭐 그랬습니다.
어느 날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아...결혼한 여자의 기분이 이런 게 아닐까...하구요.
"숨겨왔던 나~~~의~~~"...뭐, 이런 이야기는 아니구요...
설거지거리나 청소할 것들이 쌓였을 때의 형에 대한 짜증,
그럼에도 우리형이니까 당연히 느끼는 가족애...
이런 기분 말이지요.
어릴 때부터 함께한 친형과도 이런 판인데,
오랜 시간 남으로 살아온 부부사이, 남녀사이는 오죽할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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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그리 많이 읽는 편이 아니어서,
고백하자면,『냉정과 열정사이』등 들어본 것은 많지만,
에쿠니 가오리의 글은 처음 읽어봤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다른 글과 이 책을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만,
그 내용만큼 문체도 담담하더군요.
내가 미혼이라 아직은 결혼에 대한 작은 환상을 가지고 있어서,
혹은 일본의 문화와 우리의 문화가 달라서 그런지,
그것도 아니라면 개개인의 생활방식 또는 가치관 차이인지,
남편의 행동 및 아내의 생각이 몇몇 이해 안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이 책은 그런 행동들을 하나하나 살피고 이해하며 읽기보단,
'환상'이 아닌 '생활'로서의 결혼생활에서 오는 그 '담담함'을 느낄 수 있다면,
그 정도면 될 듯 합니다.
(; 아마도 그래서 에쿠니 가오리도 남편과의 다툼에 대한 이야기는 그저 "남편과 다퉜다"정도로만 말할 뿐, 그 원인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그 이후의 분위기전달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다양한 방식이 있듯,
모두가 각각의 다양한 가치관을 가지고 결혼생활들을 하기에...
선뜻 이 책의 내용에 공감하지 못하시는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자신들의 결혼생활에 대해 누군가는 행복에 겨워할수도 있고,
또 어느 누군가는 힘들어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생활'로서의 결혼(혹은, 넓게 봐선 연인관계도 마찬가지일지도...)에 대해선
책을 통해 어느정도 느껴볼 수 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아직 미혼인 저로서는, 또 남자인 저로서는, 몇해 전 제법 속쓰린 이별을 경험해 본 저로서는...
남자로선 결코 알 수 없을 아내들의, 여자의 마음을 '조금'은 엿보고 느껴볼 수 있었던 것 같아서...
이제라도 이 책을 읽어보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해 봅니다.
※오타.
"밥"편에서 p.49 "당신도 내 생각해야 되."...'돼'가 맞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괜찮은데?
사람이 사람을 만났을 때 그때까지 혼자 쌓아올린, 서로가 지닌 서로 다른 '풍경'에 끌리는 것이라는 말도 꼽아볼 수 있겠지만(p. 63),
결혼 기념일을 기억하는 이유는 1년에 한 번 초심으로 돌아가보고 싶은 마음에(p. 78),
결혼한(또는 결혼한 적이 있는)많은 사람들이 왜 결혼에 대해 별 얘기를 하지 않는지, 스스로 해 보고야 알았다. 꿀처럼 행복하고 아까워서 말하지 않는 것은 물론 아니고, 그렇다고 괴롭고 고통스럽고 우울해서 말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저 모두들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결혼이 너무도 특수하고 개인적이어서, 우연과 필연이 꽈배기처럼 꼬여 설명하기 곤란한 양상을 띠고 있기에(p. 87).
서로를 행복하게 해주는 편이 서로를 길들이는 것보다 훨씬 멋진 일이니까(p. 118).
이 책을 읽고 결혼하기 겁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저를 사랑하는, 제가 사랑하는 누군가와 이렇게 웃고 울고 짜증도 내고 행복해하기도 하며...
'생활'하는 결혼이란 것도 꽤 괜찮을 거 같다고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