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비아 플라스의 일기
실비아 플라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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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그녀가 자살하던 날의 혹한만큼이나 지독했다. 1963년 2월, 옆방에서 잠이 든 두 아이, 프리다와 니콜라스를 위해 빵과 우유를 차려놓고, 행여나 가스가 새나가지 않을까 염려하여 테이프로 문틈을 밀봉한 채, 수면제를 먹은 상태에서 가스 오븐을 켜놓고 눈을 감은 실비아. (사랑니를 뽑기 위해 치과에 갔을 때 마취제와 가스 중에 어느 것이 좋겠냐는 의사의 물음에 ‘가스요’라고 단호히 대답했던 그녀는 이것이 마치 어떻게 죽을 것인지 묻는 것 같았다고 기록했다.)

‘시’에 대한 강한 애정을 지녔던 플라스는 시인 테드 휴즈와의 결혼으로 완벽한 삶을 꿈꾸는 듯했으나 남편의 외도와 그로 인한 별거로 어둠과도 같은 고통의 시간을 보낸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녀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시’뿐이었다. 실비아는 아이들이 잠든 새벽에 일어나 시와 소설을 썼고, 죽기 직전에는 한 달에 무려 30편 이상을 써 내려가면서 그녀가 바라던 대로 문학사에 길이 남을 불멸의 작품, <에어리얼(Aerial)>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결국 극심한 우울증과 생활고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녀의 나이 서른 한 살 때의 일이다.

8살이 되던 해, 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한 플라스는 심리적으로 방황 하게 된다. 아버지의 부재는 평생 동안 트라우마를 남기면서 삶과 작품에 영향을 미쳤다. 사춘기 소녀 실비아는 문학에 빠져들면서 지적으로, 감성적으로 성장했지만 때로는 성적인 욕망과 질투심 때문에 고민하는 대범하고 당찬 소녀이기도 했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하던 실비아는 한 문예지의 창간 파티에서 휴즈를 만나 첫눈에 반했고 그와 함께 전원생활을 즐기며 ‘시’라는 둘만의 공통 코드를 발전시켜 나갔다. 

하지만 ‘충실하고, 창조적이고, 건강하고 소박한 부부’의 삶은 오래가지 못했다. 플라스의 유일한 소설 <벨 자(Bell Jar)>에서 에스더가 느꼈던 참혹하고 절망적인 현실은 그녀의 현실에서도 존재했다. 그녀는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휴즈와 진정으로 하나 되지 못하고 밀폐된 벨 자(종 모양의 유리 그릇) 속에 갇힌 채, 그 안에서 유령처럼 떠돌아 다녔다. 별거 이후 오직 시에만 매달리며 좋은 시를 쓰기 위해 강박증에 시달리는 그녀의 모습은 애처롭기만 하다.

플라스는 <라자로 부인>이라는 시에서 ‘죽는 것은 하나의 예술’이라고 말했다. 죽음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삶의 소중함을 깨닫기 어려워서였을까. 삶에 대한 강렬한 의지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낳았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이것은 ‘천재 시인’, ‘비극적인 삶’, ‘희생 양’ 등등 수많은 수식어들과 함께 그녀를 전설로 만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일기를 읽으며 느낀 것은 그동안 ‘신화’와도 같은 극적인 드라마로 포장된 플라스가 아닌 너무나 솔직하고 인간적인 플라스였다. 때로는 이기적이고 자학적이기도 했으며, 때로는 외롭고 우울했으며, 때로는 사랑스럽고 따뜻했던 실비아 플라스. 그녀는 ‘살기 위해’ 죽었다. ‘영원히’ 살기 위해.


글쓰기가 나의 건강이다. 차가운 자의식에서 벗어나 만사를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다면,
내게 어떤 의미인가, 내가 뭘 얻을 수 있는가를 따지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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