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인간 열린책들 세계문학 3
알베르 카뮈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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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작은 섬에서 자란 뤽 베송은 자신의 예술적 영감은 어린 시절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눈부시게 새파란 바다 외에 아무것도 없던 그 때, 손에 잡히는 돌멩이는 상상하는 그 무엇이든 될 수 있었고 소금기 가득한 바람을 맡을 때면 상상하는 그 어디든 갈 수 있었으리라. 아마도 이러한 유년의 경험이 없었다면 그토록 아름다운 ‘그랑블루’는 탄생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결말을 알 수 없다는 이유로 빨리 읽는 것이 아까워 밤 마다 한 챕터씩 아껴 읽은 <최초의 인간>. 

순수함 말고는 가진 게 없는 아이들 때문에 여운이 많이 남는 ‘어린아이의 놀이들’을 읽을 땐 그랑블루의 흑백 장면, 그러니까 자크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주인공 이름도 같네.) 자크가 되어 말하는 어린 카뮈의 유년은 장난 치던 기억 마저 슬프고 애틋해서 차라리 이것이 오직 ‘소설’이기만을 바라기도 했다. 

스물 아홉에 전사한 아버지, 장애가 있는 어머니 그리고 과거로부터 물려 받은 것이라곤 목이 메이는 가난 뿐이었지만 그 결핍으로 일궈 낸 자크의, 아니 카뮈의 애잔한 생은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으로 남았다. 비록 미완성이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기억은 부자들의 기억만큼 풍요롭지 못하다. 자기들이 사는 곳에서 떠나는 적이 거의 없으니 공간적으로 가늠할 만한 표적이 더 적고 그게 그 턱인 단조로운 생활을 하니 시간적으로 가늠할 만한 표적이 더 적었다. 물론 가장 확실한 것은 마음의 기억이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마음은 고통과 노동에 부대껴 닳아 버리고 피곤의 무게에 짓눌려 더 빨리 잊는다. 잃어버렸던 시간을 되찾는 사람들은 오직 부자들 뿐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잃어버린 시간은 그저 죽음이 지나간 길의 희미한 자취를 표시할 뿐이다. 그리고 잘 견디려면 너무 많은 기억을 하면 못 쓴다. 매일매일, 시간시간의 현재에 바싹 붙어서 지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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