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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ㅣ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9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15년 12월
평점 :
알라딘에서 쇼핑을 하다 발견하고는, 와 하루키의 새 책이 나왔구나! 하고 신나서 주문했다. 책이 도착해서 책 소개를 보니 이미 예전에 읽은 책이었다. 어쩌면 당연했다. 잊고 있었지만(모르고 있었다) 시드니 올림픽은 2000년에 개최되었으니까.
자신이 본 책도 구분하지 못하는 내게도 책임이 있다. 하지만 더 큰 책임은 예전에 나온 책을 표지만 바꿔 신간인 듯 소개하는 출판사에게 있다고 본다. 왜냐면 출판사가 나보다 더 크니까. 동의는 바라지 않는다.
인생을 1년이란 단위들의 결합이라고 가정한다면. 새로운 한 해를 살아가는 건 이미 본 책을 새로운 책이라 여기며 다시 읽는 것과 비슷하지 싶다.
당신은 새로운 이야기를 기대하며 책을 펼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것은 이미 이전에 봤던 책. 변화에 대한 기대는 첫 장을 펼치는 순간 깨지고 만다 (간혹 기억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중반에 가서야 그 사실을 깨닫기도 하지만). 이미 알고 있다고 믿는 이야기에는 흥미가 떨어지기 마련.
이게 뭐야? 이미 알고 있는 뻔한 이야기잖아! 투덜거리며 페이지를 관성으로 대충 넘기기 시작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미 다 보아서 알고 있다고 믿었던 책 속에서 전에는 미처 보지 못한 새로운 부분을 발견한다. 똑같은 책이 전과 다르게 다가오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단순한 망각이나 착각 때문일 수 있다. 그 사이 나의 가치관이나 관심사 혹은 지식의 정도가 달라져서일 수도 있다. 경험의 차이 때문에 똑같은 이야기가 전과 다르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다. 사람은 변하니까. 생각이나 감정의 반응도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부터 이미 보아서 알고 있다고 믿었던 책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무엇인가로 변한다. 이 책의 내용을 얼마나 잘 받아들이고 소화시키는 가는 나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 노력뿐 아니라 내가 처한 상황이나 기분에 따라서도 감응의 차이가 생긴다. 그렇게 한 번 더 같은 책을 읽는다.
이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시드니>를 본의 아니게 두 번 읽은 소감. 이건 거창한 인생 이야기가 아니라 책에 대한 이야기 (길게 떠들었는데 책 내용에 대한 얘기는 없어서 유감이다). 동의는 바라지 않는다.
어쩌면 언젠가, 또다시 기억력 감퇴와 출판사의 농간에 속아 이 책을 한 번 더 읽게 되지 않을까? 살짝 걱정이다. 또 보게 될까 걱정할 만큼 나쁜 책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