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코어 히스토리 - 종말의 역사에서 생존의 답을 찾다
댄 칼린 지음, 김재경 옮김 / 북라이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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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하드코어 히스토리

기원전 146년 로마 장군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는 3년여의 저항 끝에 함락되어

불타는 카르타고 시내를 바라보며 침통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곁에 있던 그리스인 친구이자 역사가 폴리비우스가 최선의 결과를 이룬 상황에서

왜 그리 슬피 우느냐고 묻자 그는 자신의 조국 로마도 언젠가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때문이라고 했다.

흥망성쇠 성자필쇠라는 역사의 법칙. 우리는 과연 어디쯤에 서 있을까?

저자 댄 칼린은 책의 제목에서 답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의 원제는 '종말은 언제나 가까이 있다(The End is Always Near)' 이다.

댄 칼린은 우선 지난 역사에서 일어났던 어느 제국의 멸망이나

찬란하고 수준높은 문화의 소멸을 조명하며 그 것들이 어떤 이유에서 일어났는지

추적한다. 청동기 시대 지중해 지역 전반에 어느순간 들이닥친 재앙이 몰고온

암흑의 시대와 성경에도 언급될 정도로 그 당시의 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던 군사강국

아시리아의 멸망, 그리고 영원한 도시 로마제국의 쇠락 등 당대에 하나의 문화권을 지배하며

번성했던 거대한 세력들의 명멸을 소개하는 저자는 책 전반에 걸쳐 우리에게 이 일을 단지

오래된 옛날 이야기로 치부해서는 안된다며 경고를 하고, 21세기의 지금 역시 미래세대에겐

오래된 옛날 이야기가 될 것이라는 점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저자는 "종말이 가깝다"는 자신의 주장이 누군가에게는 (아마 대다수에게는)

노스트라다무스 흉내를 내는 웬 저질 사기꾼이 들고 있는 팻말의 문구로만 비추어 질 것임을

알지만 '우리는 다르다'는 근거없는 낙관론을 로마인이나 앗시리아인이라고 하지 않았겠는가? 저

자는 이런 자만심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은 총 8장을 구성되어 있는데 이 중 특히 7장과 8장에 이르러선 더이상 종말이란

단어가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현재 인류가 겪을 종말 시나리오 중 가장 실현가능성이

높은 '핵전쟁으로 인한 종말' 을 다룬 두 장에서 저자는 수준높은 인간성이라는 것이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어떻게 변질되고 상대화되는지를 여러 사료를 통해 보여주는데,

양차 세계대전 중 처음에는 민간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걸 비난하고 반대하던 사람들이

나중에는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 즉 상대방의 전쟁수행능력과 의지를 완전히 꺾어

전쟁을 끝내기 위해 - 한 도시를 무차별 폭격하는 것에 지지하는 모습은 섬뜩하다.

거기다 수천명을 희생시켜 수만명의 희생을 막을 수 있다는 그들의 논리 (혹은 우리가

머뭇거리는 사이에도 적들은 망설이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에 누가 끝까지 반대를 할 수

있을까? 거기에 전쟁을 결정하는 의회와 대통령등이 선거에 의해 선출된 사람들인데

전쟁으로 상처입고 독이 오른 국민들의 감정적 여론을 과연 무시할 수 있을까?

거기에 핵무기의 등장으로 이제 하루에 10만명이 아니라 1억명도 사라지게

만들 수 있게 된 지금 상황에서 저자처럼 인류의 종말이 어느때보다 가까워 왔다는

주장이 정신나간 소리로 들릴 수 있을까?

마이클 돕스의 저서 [1962]가 증언하는 쿠바 미사일 위기의 13일을 아는 사람들은

그 때 제3차대전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정말 '기적'이었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백악관 회의에선 선제공격으로 소련을 일찌감치 지도상에서 지워버리는 것만이

최선이라는 보고가 계속 올라왔고 수백개의 핵을 모스크바와 핵심 산업지대에 투하하는

작전이 구체적으로 검토되고 있었다.

결국 3차대전을 막은 것은 인류공멸을 막기 위한 케네디대통령과 흐루쇼프 서기관의

결단 덕분이었다. 허나 이 천만다행의 결과에서도 우리의 목덜미를 서늘하게 하는 점은

이제 겨우 단 두 명이 인류 전체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는 상황이 왔다는 점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지만 20년 후 이번에는 단 한 사람에게 결정권이 주어지게 되었다.

1983년 핵시설 방공망의 책임자였던 스타니슬라프 예브그라포비치 페트로브 소령은

인공위성으로부터 미국이 대륙간 탄도미사일 5발을 쐈다는 경고를 받았다. 소련은 비상이 걸렸고

그는 소련 역시 핵미사일을 미국으로 쏘아야 하는지 결정을 내려야했다. 그가 수없이 교육받은

핵전쟁시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그는 미국으로부터 공격받는 즉시 수백발의 핵을 미국 전역에

발사해야만 했다.

허나 미국발 핵미사일 5기가 소련의 주요 도시 5곳을 향해 날아오고 있을 그 짧은 시기

페트로브 소령이 발휘한 침착성이 인류를 구했다.

페트로브소령은 패닉에 빠지는 대신 자신이 받은 교육을 되짚어보았다.

핵전쟁에서 이기는 최선의 전술은 동시에 수백-수천기의 미사일을 적국 전역에 쏴

순식간에 무력화시키는 건데 미국이 고작 5발만 쏘았다는 점이 아무래도 이상했던 그는

상부에 "컴퓨터의 오류인 듯 하다" 라고 보고하기로 결정했고 그 결정이 인류를 다시 한 번

공멸에서 구한 것이다.

페트로브소령의 결단력은 더없이 영웅적이지만 이런 상황이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과연 그 때 그 자리에 페트로브소령이 아닌 누군가가 다른 판단을 내렸다면 우리의 현재는

어떻게 변해있었을까? 이제는 국적과 인종을 넘어 인류 전체의 공존공생이라는 차원에서의

고민이 필요하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문화의 융성으로 우리 인류는 과거 어느때보다 큰 번영 속에서

안락함을 누리고 있다. 세계는 하나의 마을이 되었고 우리는 그 안에서 과거의 권세높은

귀족이나 위엄있는 제왕이 누리던 것 보다 더 큰 풍요를 손에 넣었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황금기가 지난 인류의 역사 전체를 통틀어 유례없는 시기임을

잊지 말고 이 시간들이 영원하리라는 자만을 품으면 안될 것이다.

종말은 언제나 가까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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