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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타는 없다 1 - 그림과 문학으로 깨우는 공감의 인문학 ㅣ 롤리타는 없다 1
이진숙 지음 / 민음사 / 2016년 12월
평점 :
하나의 잣대로 모든 것을 평가하고 오로지 한 명의 1등을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교육 환경에 길들여진 우리가 맞닥뜨리는 가장 큰 유혹은 무엇일까? 바로 이 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저 남들이 제시한 정답을 빨리 찾아 그것만이 진리라고 믿고 싶은 유혹이다.
단테는 인간들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결함이 있고, 그 결함만으로 지옥에 빠질 이유가 충분하다고 여겼다. 사실 꼭 죽어서가 아니더라도 살아 있는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지옥이 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콤플렉스, 정말 지긋지긋하게 증오하면서 헤어지지 못하는 사람들과 상황들,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고통,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스스로 빠져드는 열등감… 이 모든 것이 시간 속에서 해소되지 않으면 지옥은 사후 세계,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지옥은 스스로 만들어 갇히는 것이다.
물론 인문학은 처세술이 아니다. “답을 찾아 가는 과정의 불안정성을 즐길 수 있는 심적 태도가 성숙의 가장 기본이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이 지상에서의 팍팍한 삶을 견딜 수 있는 가장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러나 고전은 우리가 이 삶의 지옥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등불이다.
젊은 시절의 방종과 어리석음에 대한 성찰과 반성, 그것을 기반으로 한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은 인간적인 성숙으로 나아가는 기본이다. 그러나 도리언 그레이는 자신을 사랑해 자살한 여인에 대해서도, 자신이 아편굴로 유혹해서 타락시킨 젊은이들에 대해서도, 심지어 자신이 살해한 사람에 대해서도 아무런 연민이나 동정심, 죄책감, 공감을 느끼지 못했다. 방부제 미모처럼 그의 마음에도 냉혹한 방부제가 처져 있었던 모양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줄 모르는 사이코패스의 기질이 농후한 인간이었다. 유한한 시간을 사는 인간에게 주어지는 가장 커다란 선물은 성숙이다. 자신에 대한 성찰과 타인에 대한 연민이 없었던 도리언 그레이에게 성숙은 존재할 수 없었다. 그는 발효로 깊어질 수는 없고 흉측하게 부패할 뿐이었다.
폐쇄된 사회에서 승자는 우월감을 느끼고 패자는 열등감을 느낀다. 고착화된 프레임에 갇힌 우리는 타인의 시선(척도)에 지배당한 채 기존의 룰을 좇으면서도 그것이 비뚤어진 욕망이라는 것도 모른다. 톨스토이처럼, 이제 우리도 삶을 뒤돌아봐야 할 때다.
백작 가문에서 태어난 톨스토이는 젊은 시절을 방탕하게 보내고 나서 후에 농민 계몽운동과 새로운 공동체 운동에 매진했다. 그는 서구화된 귀족들의 위선적이고 타락한 삶을 비판하고 러시아 농민들의 소박함을 삶의 모범으로 삼았다. 『안나 카레니나』의 또 다른 주인공 레빈과 키티는 톨스토이가 찾은 대안적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한때 브론스키의 사랑을 잃고 실의에 빠졌던 키티는 레빈과 결혼을 했고, 시골 영지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안나 때문에 사교계에서 쓰라린 패배를 맛본 키티는 결국 인생에서 승리했다. 사랑이 운명을 바꾼다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 내적인 태도를 바꾼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이 일으키는 강렬한 에너지는 변화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내적인 힘이 될 때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