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학교 덕육교육 개론
진신한.한흥식 지음 / 한국학술정보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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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아주 일찍부터 덕육교육을 중시해왔다. 공자(孔子)는 중국 고대의 위대한 교육가였다. 그는 제자들한테 보편적으로 예(藝),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 등 육예를 가르쳤는데, 그중에서도 언제나 품성 교육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서한(西漢)시기에는, 사숙(私塾)뿐 아니라 벌써 중앙정부가 관리하는 태학(太學)이 창립되었다. 그 당시 등록된 박사제자만 3천명이 되었고, 동한(東漢)시기에 이르러서는 3만 명까지 확대되었다. 동중서(董仲舒)는  “품성은 질박한 것이며, 품성은 교화되지 않으면 완전해질 수 없다(質朴之謂性,性非教化不成)”라고 주장하면서 도덕품성방면의 교육을 실시할 것을 강조하였다.

과거제도는 수조(隋朝)에서 만들어 진후 당조(唐朝)에 이르러서는 정규적인 관리 선발제도로 되었다. 그 후 송조(宋朝), 명조(明朝), 청조(淸朝), 1300여년이란 시간을 이어왔다. 송조의 대유학가 주희(朱熹)는 사학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을 창립하였는데, 그중 원규(院規)에는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이 있었다. 주희의 주장은, 교육의 목표를 오륜에 둠으로써 봉건등급과 가족윤리 사이의 밀접한 결합을 도모하고, 봉건의 “의리(義理)”를 가르치며, 이를 개개인의 일상적인 도덕수양에 응용함으로써 봉건제도를 공고히 하려는 것이었다. 주희는 더 나아가, 봉건의 윤상지리(倫常之理)는 본연의 이치이고, 인성(人性)이란 바로 이 이치가 인간에게 부여된 품성이라고 하면서 봉건도덕은 영원하고 인간은 필연적으로 이 이치를 배움의 기본방향으로 해야 한다고 하였다. 주희는 학생들에 대해 오학(五學)교육을 중시하였다.

청조 말에 이르러 중국의 양무운동(洋務運動)과 유신운동(維新運動)은 중국에 신식학교제도의 도입과 건립을 추동하였다. 중학당(中學堂)에 ‘수신(修身)’ 과목을 설치했다. 이 교과목에서는 개인생활, 가정생활, 사회생활과 국가정치생활 등 네 개 방면에서 학생들에 대해 도덕교육 및 정치사상교육을 행하였다.

중국공산당은 줄곧 학교 덕육교육을 중시해왔다. 일찍이 공산당이 창립되었던 초기 및 제1차 국내혁명전쟁시기에도, 공산당은 스스로 창건한 혁명 간부학교의 교육 중에도 당시 국내, 국제형세와 정치군사투쟁실제를 밀접히 결합하였고, 마르크스주의 이론과정의 교육을 통하여 학생들에게 정치사상교육을 진행하였다. 항일근거지의 중학에서도 덕육교육을 첫 자리에 놓으면서 그에 상응하여 덕육교육과정을 설치하였다. 항일전쟁승리 후, 해방구(解放區)의 확대에 따라 보통중학(普通中學)이 뒤이어 설립되었으며 이 시기 각지에 덕육교육을 강조하였다. 신 중국 성립 후, 1951년 유소기(劉少奇)는 제1차 전국선전공작회의 중에서 ‘사상정치공작(政治思想工作)’의 개념을 제출하였다. 정치공작(政治工作)은 일정한 계급, 정당, 단체가 자신의 강령과 근본임무를 실현하기위한 활동을 가리킨다. 사상공작(思想工作)은 일정한 계급, 정당, 단체가 인민들로 하여금 사회발전요구와 일치된 사상을 수립하게 하고 사회발전요구의 사상과 유리되어 진행하는 활동을 고치도록 하는 것을 가리킨다. 사상정치교육은 사상정치공작의 기본내용이고 정치의 제약을 받는 사상교육과 사상이론방면에 치중하는 정치교육이다.

본서에서는 이러한 중국학교 덕육교육의 변천과정과 주요 교육내용, 발전 추세 등을 학교 수준별(취학전,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로 나누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중국과의 정식수교(1992. 8. 24)후 15년, 중국의 교육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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