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의 유서
하루비 지음 / 맑은소리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항상
제한된 삶 안에
안주하며 살게 만들었던
두려움과 편견......
그리고
통념이라는 그늘아래
스스로 쳐놓은 울타리 안에서
쉬운 길로만 돌아가는 삶에 익숙해지고 길들여져가던 나의 삼십대의 날들.

 

그런
평이한 내 일상에 한가운데로
소설 <꽃잎의 유서>는
어느날 문득
느닷없이 파고들어

심연에 섬광같은 푸른 불꽃으로
파란을 일으키기에 너무도 충분한 맹독[猛毒]을 지녔다.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386세대를 묶어서 지칭할수 있는
그들만의 최루 문화와 코드는
역사에 한장을 기록하며 사라져 갈테지만,


그 세대를 살아냈던 사람의 가슴속엔 언제나
그 시절을 회상하는 일이
열정과 젊음으로 인해 활활 타오르다 채 연소 되지 않은
장작더미속에 새까맣에 구어진
숯무덤 속
싸늘한 냉기를 안고 살아가는 것만 같아
가끔 그 비슷한 메타포만 봐도 가슴속이 서늘해지며  놀라곤 한다.


순수 절정의 맹독 [猛毒]이 묻어 있는 맹목[盲目]


시대와 체제에  고뇌하지만
언제나 선두에서
실천하는 영웅 효민과
동류의 가슴을 안고 동지애적인 사랑으로
같은 길을 걸어   나가는 안인숙.

그리고
단지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 그  때문에 아무것도 선택 할수 없었던 여자 이진희!


소설을 읽는
내내
그들의 얼굴속에는
최루탄의 연기 속에서도 너무나 익숙했던
나와 또 다른 나의 얼굴들이
명멸했다가 또 사라지기를 여러번.

 

지극한
사랑을 지켜내기 위한
진희의 맑은영혼은
사는 일에 지쳐 타성에 젖어
그동안 숨겨져 있어  잊고 지내던  순수한 내 감성에
자연스럽게 젖어들고 스며듦으로 해서 ,
마치 내 타락한 영혼이 쉽게 구원 받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지경이었다.

 

진희의
그 도저한 불가능의 사랑 !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애원과 미지 세계로 향한 두려움없는 무한한 동경.
그 신비로움에 견줄만한 것을 나는 모른다.


그저
응시할 수 밖에 없었던  관계의 막막함과
그 실존의 불안속에서도 ......


그것이어야만 하기에 엄습하는
좁고 길기만 한 어두운 통로의 고독속에서도......
흔들림이나
자책없이 사랑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는 수도승같은 여인의 사랑.

나는 이 소설안에서 충분히 아름답게 간접 체험하며 카타르시스의 정수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진희를 그려내는 작가의 섬세한 감정의 <결>과
풍부한 詩적인 감성......
그리고 행간 사이사이에 거칠것 없이 써내려간
독백같은 문장들은
릴케의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를
떠 올릴만큼 감정의 인식을  실어 나르는 심장의 펌프질 소리를 듣는것처럼 내겐 경이로운 체험이었다.


스토리의
치밀하고 탄탄한 구성......
예기치 않은 반전의 반전......
그리고
인물간의 관계 설정의 촘촘한
그물코는
독자의 긴 호흡을 단 한번도 용납하지 않은채
단박에 몰입시켜
끝까지 끌고가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야  기어코 긴 숨을 한번에 몰아쉬게 만들고야 마는 주술이 걸려 있는 듯하다.


꽃과 새,
하늘과 바람,
그리고  김효민과 안인숙과 이진희...그리고 김재문이 얽혀지는  그들만의 한때.


아름다운 현재는 언제나 너무 짧다.

무엇인가
정체모를 기억들마저 자꾸 쌓여만 가는 과거와
얼마만큼이
내앞에 놓여져 있는 분량인지
정확하게
가늠할 수 없이
야금야금 줄어들기만 하는  미래 사이에서도
현재란 언제나 너무 짧기만 한데...

 

누구나가 그러하듯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계들이란
그들과 맺고 있는 어느 한 순간에 찬란한 향기를 뿜어내다가도
또 다른순간
필연적으로 그들은
죽음이나 그리움이나 부재나 상실로 돌아가야만 하는 것인가보다.

그러나..


한때의 진실이 남기고 간 발자국들과
가두려고 할수록 폐부를 뚫고 지나가는 추억들......
그 힘만으로
삶을 지탱해 나가야만  하는  남은자도 있게 마련인 것이다.

지나간 시간들을 반추해 보며
다시..
살아가는 날들에 뜨거운 호흡을 불어넣어 주고
살아있음에 감사하게 만드는 열기가 있는 소설이었다.

 

낯설지 않지만
충분히 경이롭고,
신랄하지만   환희에 넘치는 소설! <꽃잎의 유서>

 

삶이
가져다 주는 것중엔
우리가 물리쳐 볼수 없는 절대의 상실이 있다는것을
때로
너무나 쉽게 인정하면서도


끝내 앙금처럼 더깨가 얹혀져 있는 영혼을 꺼내
닦아 낼수만 있다면
유리구슬처럼 반짝거리게 닦아내고 싶도록 만드는 힘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기존
작가들의 유연한
작품들에서는 느낄수 없었던
작가하루비만의
독특하고 매서운 일갈의 외침들..

가슴저림으로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보게 하고야 마는
盲目에 묻은 猛毒......


가슴속을 잠식하기 시작한
뜨겁고도 차가운 이 猛毒의
마음시림을
당분간은
아무것도 투명하게 걷어내주지 못할것 같다.

 

 

 

-이 가을 소설을 통해 카타르시스의 정수를 느끼기에 충분한 소설이라고 나는 감히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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