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발 달린 황소 겨레아동문학선집 6
안회남 외 지음, 겨레아동문학연구회 엮음 / 보리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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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발 달린 황소?' 제목부터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이 책을, 초등학교 4학년짜리 조카에게 권했더니 몇 편 읽다말고 시큰둥한 반응이다. 한결같이 가난하고 어렵게 살아가는 옛날 - 이 책에 실린 20여 편의 동화들은 거의 60여년 전에 씌어진 글들인데 굳이 '옛날'이라고 해야 할까마는 - 이야기인지라 요즘의 아이들에겐 거리감도 꽤 있어 쉽사리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나 보다. 오히려 조카가 밀쳐 놓은 책을 언니가 읽고는 '내용이 참 차분하고 정겨워서 좋더라.'고 했다.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이 풍족하게 살면서, 온갖 전파 매체 속에 파묻혀 즉흥적이며 오락적인 것에 익숙한 어린 아이들에겐 오히려 이 책 속의 삶은 이질적일 수 있을 게다. 환갑을 넘은 부모님 세대엔 당신들의 삶이 그대로 담겨 있는 것 같을 터이지만, 마흔의 언니가 읽으면 부분 부분 추억이 떠오를 것이고, 초등학생이 읽으면 가슴에 썩 와닿지 않는 내용일 것 같다.

그렇지만 내가 읽은 <세 발 달린 황소>는 거창한 모험이나 긴장감은 전혀 찾을 수 없어도, 조용조용한 한 폭의 정겨운 그림으로 살며시 다가온다. 장편 동화를 읽을 때처럼 쭉 처음부터 끝까지 연이어 넘겨 보는 책이 아니라, 짧은 이야기 하나 읽고 잠시 여유를 가지고 재음미하며 미소짓기도 하고, 코 끝 찡한 슬픔도 느껴 보며 천천히 읽어 가는 책인 것이다. 게다가 <솔이의 추석 이야기>나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에서 보았던 이억배 님의 눈에 익은 정겨운 그림이 사이사이 들어있어 할아버지 할머니의 어린 시절을 가만히 엿보는 듯했다.

'눈사람'과 '베개 애기'에 나오는 아이들은 지금의 내 아이와 비슷한 또래인데, 눈사람이 추울까봐 목도리도 감아주고 베개를 애기처럼 사랑하는 이쁜 모습이라 절로 미소짓게 한다. '마늘 먹기'의 돌이와 '까까머리'의 동구를 만났을 때도 빙그레 웃으며 유치원에 간 아이를 떠올렸다.

또한, '거짓말'에선 '남의 돈이 주머니에 저절로 들어가지 않도록 주머니를 잘 지키라'는 선생님의 독특한 가르침이 돋보였고, 마음이 들킬까 봐 귀를 잡아 당기는 순도가 무척 귀여웠다.

한편 가난한 형편 때문에 어렵게 살아가는 아이들의 슬픔이 '어머니는 다 아신다' '침 묻은 구슬 사탕' '딱다구리' 등에 담겨 있는데, 나이는 어려도 속 깊은 그 시대 아이들과 덩치는 비대해도 의지가 약한 요즘 아이들이 비교됨을 느꼈다.

책 표지 제목으로 뽑힌 '세 발 달린 황소'나 '기차 놀이' '운동화' 등에선 가난 속에 오히려 깊어지는 우정의 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정서적으로 더 친밀감이 닿을 수 있는 어른들이 먼저 읽고, 자녀들에게 권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들 - 바쁜 일상과 편리함 속에서 잃어가고 있는 귀중한 그 무엇에 관한 이야기이겠지-을 함께 나눌 때 이 책은 그 진가가 제대로 발휘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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