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미아가 보고 있다
팀 파워즈 지음, 김민혜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19세기는 문학과 역사를 아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시대이다. 문명과 세계의 모습이 현재와 같이 빚어지기 시작한 시대, 종교와 미신과 그 시녀들이 누리던 시대가 과학과 새로운 학문들에 역전되어 그런 학문들이 왕처럼 섬겨지던 시대. 그런 배경 속에서 장르문학이 확실히 제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시대이기도 하다.

등장하는 인물도 그렇고 분위기도 그렇고, 팀 파워스의 [라미아가 보고 있다]는 [드라큐라]와 [프랑켄슈타인]을 강하게 연상시킨다. 인간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과학의 시대에 그런 인간의 이해범위를 벗어나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나타나거나, 인간이 그런 존재를 만들어내는 이야기의 범주 안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고딕소설이라고도 하고, 호러의 기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소설에서 이 작품도 벗어나지 않는다.

내가 알기로 라미아는 물속 깊은 곳이나 동굴에 살면서 남자를 유혹하는, 하반신이 뱀인 여자 요괴인데,  이 작품에서는 시인에게 영감을 주고 대신 인간의 피를 요구하는 뱀파이어로 재탄생시켰다. 남자를 유혹한다는 면이나 사람의 정신을 앗아갈 정도로 매혹적이고 아름답다는 면은 살아 있어, 사실상 주 갈등은 여기에서 비롯하는 면이 크다. 매혹적이지만 위험하다, 이것을 눈 감을 것인가, 없앨 것인가?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 무엇까지 감수할 수 있을까?

솔직히 책장이 쉽게 휘리릭 넘어가는 책이 아니다. 팀 파워스는 그 시대에 심취한 나머지 그 시대 소설과 같은 속도로 걸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등장인물도 그 시대 안에 너무 잘 산 나머지 이해할 수 없는 면이 많다. 그나마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서 나타나는 사랑스러운 인물들도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팀 파워스가 철두철미한 이야기꾼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팀 파워스는 독자의 눈길을 잡아끌기 위해 눈속임을 하기 보다는 이야기를 더 얹고, 겹친다. 그래야 진실이 드러났을 때 효과가 있고 독자의 쾌감이 더 클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시적인 번역 제목과 꼼꼼한 주석이 돋보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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