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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 - 죽음의 수용소에서도 내면의 빛을 보는 법에 대하여
에디트 에바 에거 지음, 안진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4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저자인 에디트 에바 에거는 퇴역군인과 신체 및 정신적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들은 치유하고 있는 현역 임상 심리치료사이다. 그녀는 아우슈비츠의 수용소 생활을 경험하는 끔찍한 과거를 갖고 있지만, 그 과거의 굴레에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극복하고 자신의 삶을 변화시켜 그 경험을 토대로 다른 힘든 사람들을 도우며 살아간다. 이 책은 그녀의 끔찍한 수용소 생활부터 그 이후의 삶과 극복 과정을 세세하게 묘사하며 그녀가 어떻게 삶을 변화시켰는지 알 수 있게 해 준다.
과거에 일어난 일은 절대로 잊히거나 바뀔 수 없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내가 과거에 어떻게 대응할지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는 비참할 수도, 희망찰 수도 있다. 나는 우울할 수도, 행복할 수도 있다. 우리는 항상 이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 통제를 위한 기회 말이다. '나는 여기에 있어. 바로 지금.' 나는 공황 상태에 빠진 감정이 가라앉기 시작할 때까지 나 자신에게 반복해서 이렇게 말하는 법을 배웠다
P.21
'희생되는 것' VS '희생자 의식'
이 책의 저자는 전쟁의 희생자이다. 우리는 경험하지 않은, 지금의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이유도 없이 겪었다. 그러나 그녀는 희생되었더라도 스스로를 희생자로 남겨두지 말라고 이야기 한다.
스스로 자유를 향한 탐색을 하고 오랜 기간 전문 임상심리학자로 경험을 쌓은 결과 나는 고통이 보편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희생자 의식은 선택적이다. 희생되는 것과 희생자 의식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다. 우리는 모두 삶의 과정에서 어떤식으로든 희생될 수 있다. 어떤 시점에 우리는 어떤 종류의 고통이나 재앙, 학대를 겪을 것이다. 우리가 통제권을 거의 혹은 전혀 가지지 못하는 상황이나 사람이나 제도에 의해 말이다. 이것이 인생이다. 그리고 이것은 '희생되는 것'의 예이다. 이것은 외부로부터 발생한다. 이웃의 괴롭힘, 분노하는 상사, 폭력을 행사는 배우자, 바람을 피우는 연인, 차별적인 볍률, 뜻밖의 사고 등이 이런 경우이다.
이에 반해, 희생자 의식은 내면으로부터 발생한다. 자기 자신을 제외한 그 누구도 우리를 희생자로 만들 수 없다. 우리는 우리에게 벌어진 일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희생된 사실에 집착하기로 선택할 때, 희생자가 된다. 우리는 희생자의 사고방식을 키운다. 완고하고, 남을 탓하고, 비관적이고, 과거에 갇혀 있고, 용서하지 않으려 하고, 가혹하고, 건강한 한계나 경계가 없는 사고방식과 존재방식이다. 우리는 희생자의 사고방식에 갇히기로 선택할 때 자기 자신을 감옥에 가두고 스스로 간수가 된다.
P.24
그녀는 죽음의 수용소 안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치 않는다. 함께 수용소에 갇힌 마그다 언니를 챙기고, 사랑하는 에릭의 모습을 끊임없이 상상하며 내면의 힘을 키운다. 오늘 하루만 버티고 죽지 않는다면, 내일은 자유를 얻을 것이라 스스로를 다독인다. 읽는 내내 내 마음을 졸이게 했던 끔찍한 수용소 생활에도 스스로의 역할을 만들어가며 버티는 저자의 이야기를 읽어가며 초반에는 그녀가 초긍정의 힘을 지닌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녀의 고통은 수용소를 벗어난 이후부터 시작된다. 수용소를 벗어났지만 스스로 수용소를 벗어나지 못하고 희생자 의식을 가지고 살아간다. 자신의 살아남은 이유를 끊임없이 찾으려 하고 사는 것 자체가 죄이며, 기쁨을 찾기 시작하는 것 자체를 죄라고 생각한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자신이 아닌 아이들을 위한 삶을 살아간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들을 부정하고 외면하며 살아가지만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통받는다.
나는 나의 선택, 우리의 새로운 삶을 믿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슬픔의 흔적, 두려움의 흔적을 부정하기로 했다. 새로운 조국으로 향하는 나무 경사로를 걸어 내려갈 때, 나는 이미 가면을 쓰고 있는 상태였다.
나는 탈출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자유롭지 않았다.
P.236
직면하는 것의 힘
그녀의 인생의 전환점은 책 한권에서 시작된다. 바로 그 유명한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통해서이다. 수용소 생활의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그녀는 의외로 수용소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나서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다. 오히려 그것을 직면하고 드러내는 것이 그녀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죽음의 수용소에서의"의 저자 빅터 프랭클과 우정을 쌓아가며 삶의 소명을 만들어 가며 적지 않은 나이에도 심리학 공부를 계속하게 된다.
만약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과거가 지닌 통제권을 강하게 하는 대신 약하게 할 수 있다면 어떻까? 만약 과거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과거를 석회화하는 대신 과거를 치유한다면 어떨까? 만약 비극적인 상실을 맞이했을 때 침묵과 부정만이 유일한 선택지가 아니라면 어떨가?
P.280
삶의 변화를 가져다 준 책 한권과 우정의 힘을 알기에 93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그녀는 첫번째 책을 내고, 심리치료를 지속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점은 희생된 사실에 대한 직면과 생각의 전환 뿐 아니라 무엇을 시작하고 열중하기에 늦은 나이는 없다는 사실을 또한 나에게 상기시켜 주었다. 여러모로 희망과 용기를 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결코 과거를 바꿀 수 없다. 하지만 내가 구원할 수 있는 삶은 있다. 바로 나의 삶이다. 내가 바로 지금 사는 이 삶, 이 귀중한 순간이다.
P.410
나는 당신을 혹은 그 누구도 치유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자기 마음 안에 있는 감옥을 조금씩 조금씩 무너뜨리기로 한 당신의 선택을 축하할 수 있다. 당신은 이미 일어난 일을 바꿀 수 없다. 당신은 당신이 한 일과 당신에게 행해진 일을 바꿀 수 없다. 하지만 당신은 현재 어떻게 살지 선택할 수 있다.
당신은 마음 감옥에서 자유로워지기를 선택할 수 있다.
P.477
이 책의 저자는 모든 것이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 쉽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가장 끔찍했던 순간을 겪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녀의 경험을 무기로 당신들이 겪는 많은 것들이 별 거 아니니 마음을 고쳐먹고 이겨내라고 말하지 않는다. 견디고, 과거를 외면하고, 고통받고, 직면하는 그 모든 과정을 겪고 나서야 스스로 어떻게 살아갈 지를 선택하고 치유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 과정이 상세히 책에 묘사되어 있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이고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나의 고민이 타인의 눈에 별거 아닌것 처럼 보이더라도 그것은 나 스스로에게는 엄청난 고통이라고 말해주는 저자의 너그러운 말을 들으면서 누구든 위로받을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