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기준은 효진이의 어깨를 벽에 밀어붙이고 무릎으로 그애의 배를 가격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할 욕을 하면서 연속해서, 몸의 반동으로 그애를 때렸다. 맞을 때 사람의 몸에서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난다느 걸 나는 그때 알았다. 폭죽이 터지는 소리처럼 펑. 평. 효진이는 머리를 앞으로 수그린 채로 맞고 있었다. 벗어나려고 몸부림쳤지만 그럴수록 고개가 더 꺾였다. 애를 죽이겠어. 한번 더 때렸다가는 분명 효진이가 죽으리라는 생각에 무서워져 그의 팔과 허리를 잡고 효진이에게서 떼어내려고 애썼다. 내가 자기 몸에 달라붙자 그는 나를 향해씩 웃어 보이고는 방밖으로 나갔다. 효진이는 두 손으로 배를 감싸쥐고 앉았다. 팔로 가린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동그란 귀는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 잡겠다. 적당히 해라."
‘효진이 아빠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효진이의 부모는 거실에서 코미디 프로를 보며 웃고 있었다. 효진이는 옷장 앞에 쭈그려앉은 채 울음이 섞인 딸꾹질을 했다.
"효진아.‘
"주영이, 니,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라."
효진이는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내, 맞구 산다고, 말하지 말란 말이다."
나는 효진이의 방에 가만히 앉아 텔레비전에서 개그맨들이 하는 농담과 어른들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딸꾹질을 하면서도 효진이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약속했다."
"그래."
"느그 집에 가라."
나는 풀죽은 강아지처럼 효진이 곁을 떠나지 못했다. 효진이가 걱정되어서도 그랬지만 그 집의 공기에 위축되어서였다. 효진이의 부모와 기준이 있는 거실을 지나야 한다고 생각하자 가슴이 뛰고 속이 울렁였다.
"안 가고 뭐하노?"
효진이가 대놓고 싫은 내색을 하고 나서야 나는 그애의 방에서 나왔다.
"니 가나? 또 놀러온나!"
아줌마가 말했다. 효진이 아빠와 기준은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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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씨는 그날 술자리에서 많은 얘기를 들었다. 기획팀 인력 구성은 전적으로 대표의 뜻이었다고 한다. 일 잘하는 과장급이 선발된 이유는 기획팀이 자리를 잘 잡아야 하기 때문이고, 남자 신입 사원들이 선발된 이유는 장기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대표는 업무 강도와 특성상 일과 결혼 생활, 특히 육아를 병행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여직원들을 오래갈 동료로 여기지 않는다. 그렇다고 사원 복지에 힘쓸 계획은 없다. 못 버틸 직원이 버틸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보다, 버틸 직원을 더 키우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게 대표의 판단이다. 그동안 김지영 씨와 강혜수 씨에게 까다로운 클라이언트를 맡긴 것도 같은 이유였다. 두 사람을 더 신뢰해서가 아니라, 오래 남아 할 일이 많은 남자들에게 굳이 힘들고 진 빠지는 일을 시키지 않은 것이다.

김지영 씨는 미로 한가운데 선 기분이었다. 성실하고 차분하게 출구를 찾고 있는데 애초부터 출구가 없었다고 한다. 망연히 주저앉으니 더 노력해야 한다고, 안 되면 벽이라도 뚫어야 한다고 한다. 사업가의 목표는 결국 돈을 버는 것이고, 최소 투자로 최대 이익을 내겠다는 대표를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효율과 합리만을 내세우는 게 과연 공정한 걸까. 공정하지 않은 세상에는 결국 무엇이 남을까. 남은 이들은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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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친구는 출퇴근 길 지하철에서, 화장실에서, 점심 먹은 후 식당에서, 잠깐씩 짬이 나지 않느냐고, 메시지 한 통 보낼 시간도 없는 거냐고 따져 묻곤 했는데, 김지영 씨는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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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실 팀장은 여자 같지 않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 회식 자리에 끝까지 남았고, 야근과 출장도 늘 자원했고, 아이를 낳고도 한 달 만에 출근했다. 처음에는 자랑스러웠는데, 여자 동료와 후배들이 회사를 나갈 때마다 혼란스러웠고, 요즘은 미안하다고 했다. 회식은 사실 대부분 불필요한 자리였고, 잦은 야근과 주말 근무, 출장은 인원을 보강해야 하는 문제였다. 출산, 육아로 인한 휴가와 휴직도 당연한 것인데 후배들의 권리까지 빼앗은 꼴이 됐다. 관리직급이 된 후로 가장 먼저 불필요한 회식이나 야유회, 워크숍 등의 행사를 없앴고, 남녀 불문 출산휴가와 육아휴직도 보장했다. 회사 창립 이래 최초로 1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돌아온 후배의 책상에 꽃다발을 놓으며 느꼈던 감동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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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씨는 17년간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던 어머니를 생각했다. 할머니는 어머니가 미용 일을 하러 나간 동안 잠깐씩 막내를 봐주셨을 뿐 삼 남매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등의 돌봄 노동은 전혀 하지 않으셨다. 다른 집안일도 거의 안 하셨다. 어머니가 차린 밥을 드시고, 어머니가 빨아 놓은 옷을 입고, 어머니가 청소한 방에서 주무셨다. 하지만 아무도 어머니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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