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의료는 가능하다 - 한국 의료의 커먼즈 찾기
백영경 외 지음 / 창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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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전공의로서, 사실 전공의 파업 이전까지는 의료의 공공성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던 중 '공공의대 신설', '의대 정원 확대'같은 법안이 구체화되고 20년 만에 처음으로 '전공의 파업'이라는 사건을 겪으면서 우리 나라 의료의 문제점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파업의 당사자로서 전공의 파업에 쏟아지던 언론과 국민들의 비판을 가장한 비난과 함께, 한편으로는 정부와 전혀 타협할 줄 모르고 무조건 '의대 정원 확대 반대', '4대 악법 전면 무효화'만을 외치는 의사 집단 사이에서 큰 괴리감과 답답함을 느꼈다. 양쪽의 의견 사이에서 무언가 합의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나 역시 당장 뾰족한 대안을 떠올리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언론 역시 정부와 의사 측의 주장을 옮겨 적기에 바빴지 의료 정책의 문제점을 깊이 있게 진단해준 기사는 찾기 어려웠다. 


우여곡절 끝에 전공의 파업은 끝이 났지만 올바른 의료 정책에 대한 고민은 멈추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하던 차에 이 책을 만난 건 반가운 소식이었다. '한국 의료의 커먼즈(commons) 찾기'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 의료의 공공성을 확대하고 자본이 아닌 사람 중심의 의료를 만들기 위해 어떤 점을 개선해야할지 고민한 기획 의도가 돋보였다. 

백재중 선생님 편에서는 '디지털의료'나 '원격의료'가 의료 민영화의 신호탄이 될 수 있고 건강 불평등을 강화할 것이라는 무서운 진실을 알 수 있었다. 최원영 선생님 편에서는 중환자실 간호사로서 직접 곁에서 보았던 전공의의 노동력 착취 문제와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기 힘든 병원 환경에 대해 짚어 주어서 깊이 공감하였다. 윤정원 선생님은 여성과 소수자의 건강 문제가 의료 현장에서 어떤 식으로 소외되는지 알려 주었다. 


나 역시 바이탈과 전공의로 일하면서 안타까운 죽음을 많이 보았기에 죽음이 꼭 병원에서 이루어져야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우리나라 의료는 너무나 병원 중심적이고, 그 마저도 규모의 논리에 빠져 환자들은 병의 중증도와 상관없이 빅5 병원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질병에 대한 관점도 치료 중심적이라 완치가 어려운 병이거나 컨디션이 나빠 치료가 오히려 독이 되는 상황에서는 환자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다(즉, 돈이 안 된다). 돌봄 정책이 부재한 현실 속에서 환자는 병원 아니면 집밖에 갈 곳이 없는데 병원에 입원해야 할 정도로 위중하지는 않지만 집에 가면 돌봐줄 사람이 없는 상황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병원에 입원하길 원하는 경우는 정말 너무 많고, 그런 환자를 억지로 퇴원시키면 금방 나빠져서 다시 입원하기를 반복한다. 이는 지역 사회의 돌봄 역할을 확대하고 의료의 공공성을 확보해야 해결되는 문제인데, '돈'이 아주 많이 필요하기에 정부는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엄두도 못 내고 있고 현 정부에서 내세우는 '뉴딜 정책'이니 '디지털 의료'같은 것을 보면 그걸 해결할 의지도 없어 보인다는 것이 문제다. 결국 정부는 뒷짐지고 있고 현 의료의 문제점은 온전히 환자와 의료진이 감당하고 있는 형국이다. 


코로나19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우리나라 의료는 사실 문제점이 너무 많아서 어디서부터 해결해야할지도 막막할 정도이지만, 그런 복잡한 문제를 대담 형식으로 신문 기사 읽듯이 비교적 쉽게 풀어나가서 좋았다. 의료인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좋은 의료에 대해 고민하고 상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시민 사회 운동으로 낙태죄가 결국 폐지될 수 있었듯이, 얼키고 설킨 문제들도 하나씩 풀어나가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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