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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온천
요시다 슈이치 지음, 민경욱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일본여행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일정에 온천을 끼워 넣어 계획을 짜는 나로서는 제목부터가 마음에 들어오지 않을 수가 없는 책이다. [첫사랑 온천 初戀溫泉]이라니. 그것도 깔끔하고 유려한 문체로 인해 좋아하는 작가인 요시다 슈이치(吉田修一)의 작품이어서 더욱 흥미로웠다. 일본 각지의 유명한 온천 다섯 군데를 배경으로 각각의 사연을 그린 소설집이다. 그동안 꽤 많은 온천 여관에 투숙해보았지만, 사실 다른 투숙객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었을 뿐더러 대부분의 경우 그저 좋아서 왔을 거라고만 여겼지 이런저런 사정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특히나 남녀 커플은 많이 못 본 것 같기도 하고.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종류의 여관에 묵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보니 온천 여행의 이면에는 실로 다양한 사연들이 존재하겠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첫사랑 온천 初恋温泉
- 아타미, 호우라이 온천(熱海 ‘蓬莱’)
지키고 싶었던 첫사랑을 잃어버린 남자. 가장 행복한 순간만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행복한 순간만을 이어 붙인다고 해서 행복한 건 아니야.”
흰 눈 온천 白雪温泉
- 아오모리, 아오니 온천(青森 ‘青荷温泉’)
서로가 말이 많은 이른바 조연 커플. 하지만 진심은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법이다.
“느꼈어? 순간적으로 모든 소리가 사라져 버린 느낌. 가끔은 잠자코 좀 있어 봐.”
망설임의 온천 ためらいの湯
- 교토, 기온 하타나카 (京都 ‘祇園畑中’)
만나면 남편 또는 아내에게도 미안하지만 서로에게도 미안하다는 불륜 커플, 이대로 괜찮을까?
서로 누군가를 배신한 사이인데, 그 배신자들이 어느새 서로를 배신할까 두려워 헤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오는 온천 風来温泉
- 나스, 니키클럽 (那須 ‘二期倶楽部’)
보험 영업일을 하다 보니 성과가 좋을수록 사람들은 곁을 떠난다. 아내가 바란 건 돈이 아니었건만.
“둘이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어. 전에 갔던 하코네, 그 전에 갔던 쿠사츠, 당신은 거기 없었잖아.”
순정 온천 純情温泉
- 구로카와, 난조엔 (黒川 ‘南城苑’)
둘만의 첫 온천여행. 고교 커플의 순정은 변치 않을 사랑을 꿈꾼다. 별이 반짝이는 산속 노천탕에서.
“그러니까...... 한 여자와 12시간은 잘 지내고 12시간은 싸우지, 뭐.”
어느 지역이나 온천이 있다는 점이 부러운 일본. 작가가 섬세하게 묘사해 놓은 전통 온천의 풍경을 떠올리자니 뜨끈한 물속에 몸을 담그고 싶다는 욕구가 뽀글뽀글 솟아난다. 마지막 편의 주인공 겐지처럼 나도 어렸을 때부터 목욕탕을 좋아했다. 아주 꼬마였을 때도 탕에 넣어 놓으면 땀을 쫄쫄 흘리면서 가만히 앉아있었다고 한다. 가정의 욕조와는 다른 맛이 있는 온천탕의 운치. 머릿속은 어느새 이번에는 어느 온천에 가면 좋을지 여행에 대한 꿈으로 가득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