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ST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4
이시다 이라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작가는 대개 자신만의 색깔을 갖고 있으면서도 다양한 작품세계를 펼쳐 보이기 마련으로, 주로 밝고 따뜻한 분위기의 작품과 어둡고 비극적인 작품을 오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시다 이라 역시 그러한 경향을 보이는 작가로 [LAST]는 후자의 경우다. 그런데 좀 심하다.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접한 경험이 있어서 인생의 라스트를 맞이한 사람들을 그린 소설이라는 개요를 알긴 했어도 이시다 이라 작품이니까 믿고 본다는 마음에 선택한 책인데 너무 충격적이었다. '라스트'로 시작되는 제목의 단편 7편은 각자의 상황에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로, 그들을 벼랑 끝으로 내몬 사회의 모습이야말로 결코 멀리 있는 세상이 아닌 바로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보는 것 같아 정말 가슴이 아팠다.

 

나는 이 단편들 가운데에 구제를 마련해두지 않았다. 현대사회의 병리를 날카롭게 잘라내어 정밀도 높은 표본으로 제시하려 했다. 그 날카롭고 선명한 환부 속에 일본 사회의 모습을 투영하려 했다. 이 작품이 그렇게만 읽힐 수 있다면, 작가로서는 성공이다. (p.7) -저자 서문 중-

 

그렇게 인간사회의 그늘진 부분을 부각시킴으로써 독자의 마음을 뒤흔들어놓고 싶었다면 대성공이라고 전하고 싶다. 그러나 그만큼 인상적이었고 몰입도 또한 컸기에 쉽게 잊히지 않는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 빠져나올 수 없는 대부업체의 마수에 걸린 가장의 마지막 드라이브 ‘라스트 라이드 LAST RIDE’. 카드 돌려막기의 고리를 끊을 방법이 없는 주부의 선택 ‘라스트 잡 LAST JOB’. 폐업을 앞둔 전화방에서 받은 최악의 전화 ‘라스트 콜 LAST CALL’. 잦은 이직으로 노숙자 신세가 된 남자 ‘라스트 홈 LAST HOME’. 불어만가는 대출이자를 청산하려 검은 손을 잡는 남자 ‘라스트 드로 LAST DRAW’. 변태 외과의사에게 고용된 프리랜서 카메라맨 ‘라스트 슛 LAST SHOOT’. 간판맨들의 빚 청산을 위한 목숨 건 승부 ‘라스트 배틀 LAST BATTLE’. 보통 사람들이 흔히 걸려드는 이 모든 상황은 불황과 생활고로 인한 덫일 뿐, 특별히 악해서도 아니고 너무 선해서도 아니다.

 

그래도 이 소설집을 읽으며 하나 다행스러웠던 건 경악할만한 엔딩으로 충격을 준 다음 편에서는 그래도 숨 돌릴 틈을 제공한다는 것. 주로 밤에 책을 읽다 잠드는 습관을 지닌 나로서는 꿈에 나타날까봐 졸음이 오는데도 불구하고 섬뜩한 장면이 지나갈 때까지 책을 부여잡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묘하게도 이 소설집이 끔찍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아마도 작가의 탁월한 문장력과 스토리텔링 능력 덕분일 테지만, 작품 속에서 막바지에 선 사람들끼리 손을 내미는 유대감을 통해 미약하나마 온기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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