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센트 밀리언셀러 클럽 121
스콧 터로 지음, 신예경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예전에 무척 재미있게 감상했던 해리슨 포드 주연의 영화 '의혹'. 하지만 원작소설 <무죄추정>을 읽고 생각이 약간 바뀌었다. 작가가 담고자했던 인간 깊은 곳의 심리를 모두 담기엔 한편의 영화로는 부족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에 더욱 궁금해진 스콧 터로우의 작품들을 찾아 읽는 동안 어느새 그의 팬이 되어버렸다. 그래봐야 번역서가 <증발><사형판결> 밖에 없어 몇 권 못 읽었지만, 그것만으로도 그의 작품관은 충분히 엿볼 수 있었다. 현직 변호사의 경험과 지식으로 인해 뛰어난 법정 스릴러로 명성이 자자한 작가의 작품들은 읽으면 읽을수록 씁쓸한 인생의 뒷맛을 남긴다. <무죄추정>에서 20여 년 뒤를 그린 작품 <이노센트> 역시 마찬가지다. 그토록 힘든 사건을 겪고 오랜 세월 쌓아온 연륜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마음은 여전히 강한 유혹의 바람이 불면 쉽게 흔들리고 마는 나약한 존재일 뿐이다.

 

전작 <무죄추정>의 주인공 러스티 사비치의 20년 후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내연 관계였던 동료 검사 캐롤린 폴헤무스를 살인한 혐의를 받아 용의자로서 법정에 섰던 그날 이후 러스티의 삶은 중요한 요소가 빠진 채 흘러가고 있다. 사회적으로는 항소법원의 법원장에 유력한 대법원장 후보로 성공을 목전에 두고 있다고 볼 수 있겠으나 가정생활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듯 불안한 평온을 가장하고 있다. 신경불안증의 아내 바바라와 섬세하고 유약한 아들 냇, 이들 가족의 문제는 모두들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라는 것. 차라리 평범하고 둔감했으면 인생을 좀 더 편안하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예순을 앞두고 찾아온 유혹의 손길을 여전히 떨쳐버리지 못하는 러스티라는 남자, 답답하지만 하긴 젊고 매력적인 여자의 유혹을 거부하기가 어디 그리 쉬우랴. 이번에는 아내의 살인 혐의로 법정에 선 러스티. 그에게 남은 인생은 예상치 못했던 또 다른 길로 접어들고 말았다. 과거 사건에서 씁쓸한 패배만을 맛보았던 라이벌 검사 토미, 매력적인 부하 직원 애나, 겉도는 부모와의 생활에서 불안정하게 자랄 수밖에 없었던 아들 냇. 이야기는 네 사람의 입장에서 묘사되는 에피소드로 연결된다.

 

스콧 터로우 작품속 등장인물의 특징은 절대악도 절대선도 없으며 누구나 약점을 갖고 있는 불완전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행동이 잘한 것인지 잘못한 것인지 아무도 규정지을 수 없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각자의 입장이 있었을 뿐. 그저 받아들이고 이후의 상황에 맞춰 앞으로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내 주변을 비춰본다. 내 마음도 다 알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모두 이해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범인 찾기가 아니라 사건과 인간 심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작품으로 법정 심리와 등장인물들의 심경을 따라가노라면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야기의 첫 부분, 바바라가 죽은 걸 발견하고 러스티가 흘려보낸 24시간에 대한 의문도. 그런 거였어...? 과연 대단한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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