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비틀 Mariabeetle - 킬러들의 광시곡
이사카 고타로 지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시속 200킬로미터로 질주하는 신칸센에 모여드는 위험한 사람들. 각자 다른 칸에서 출발했으나 배달 중이던 검은색 가방을 둘러싸고 일촉즉발의 상황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벌어진다. <그래스호퍼>의 속편 격이 되겠으나 연결된 이야기는 아니다. 전작에 등장한 인물들은 그저 업계에 떠도는 유명한 전설 정도로 언급되는데, 무시무시한 킬러들의 세계에도 참 다양한 인간이 존재하는구나 싶도록 인간군상에 대한 묘사가 뛰어나다. 그야말로 이사카 코타로의 매력이 확연히 드러나는 작품이다.

 

이야기는 등장인물의 시각을 따라 각장이 바뀌는 형태로 전개된다. 생사를 헤매는 아들의 복수를 위해 열차에 오른 ‘기무라’, 천진만만한 아이의 얼굴 뒤에 냉혹한 악의를 지닌 소년 ‘왕자’, 정반대의 성격을 지녔으나 쌍둥이처럼 닮은 외모의 2인조 킬러 ‘밀감’과 ‘레몬’, 그리고 평범해 보이지만 지독한 불운이 따라다니는 남자 ‘무당벌레’ 나나오. 독특하기로는 당할 자가 없을 만큼 개성 넘치는 소유자들이 같은 열차에 타게 된 건 우연만은 아니다. 알코올중독에 오래 일을 쉬어 무뎌진 기무라는 왕자가 놓은 덫에 걸린 것이고, 과일 콤비 킬러와 무당벌레가 맡은 일에는 가방이 얽혀있다. 처음에는 서로의 존재를 몰랐으나 사소한 사건이 겹치고 한명씩 부딪치게 되면서 열차는 종점을 앞두고 아수라장이 되어버린다. 예측할 수 없는 승부 아닌 승부. 이젠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다. 과연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

 

명확한 주인공은 없지만 ‘악의’라는 점에서 확실히 분류되는 인물은 있다. 위험한 일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은 임무 수행과 생존을 위해서라는 자기합리화라도 할 수 있겠으나, 남을 지배하고 타인의 슬픔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악마의 화신만큼은 용서할 수가 없다. 가장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는 인물에게 관심이 가는 건 당연한 흐름일터. 자꾸만 나나오에게 응원을 하게 된다. 제목이 <마리아비틀>인 것도 그런 암시인지도 모르겠다. 치열한 경쟁, 은근한 악의, 온갖 불합리함이 도사리고 있는 세상이지만 불운과 행운이 종이 한 장 차이인 불확실한 시대에 살고 있는 만큼 언젠가 날아오를 순간은 찾아올 것이라 믿고 살자.


[도쿄발 신칸센 ‘하야테’에 모인 인물들] ; 출판사(21세기북스) 서평 참고

* 기무라 유이치

: 한때 위험한 일에 몸담기도 했지만, 지금은 단순한 알코올 중독자. 목숨보다 소중한 아들 와타루를 옥상에서 떠민 범인을 찾아 신칸센을 타게 된다.

* 왕자

: 수려한 외모와 명석한 두뇌를 지닌 중학생. 겉으로는 그저 귀엽고 착한 아이로만 보이지만, 천사 같은 얼굴 뒤에 인간에 대한 끝없는 악의를 감추고 있다.

* 밀감 

: 파트너 ‘레몬’과 함께 콤비로 활동하는 청부업자. 소설을 좋아하며, 차분하고 진지한 성품으로 전형적인 A형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 레몬

: 밀감의 파트너이자 청부업자. 독특한 말투와 엉뚱한 행동을 일삼아 종종 밀감을 곤혹스럽게 한다. ‘꼬마기관차 토마스’를 매우 좋아해 등장하는 캐릭터를 모두 외우고 있다.

* 나나오(무당벌레)

: 모종의 의뢰를 받고 신칸센에 탑승한 청부업자. 실력은 나쁘지 않으나 끝을 알 수 없는 불운으로 가는 곳마다 예기치 못한 사태를 맞이하곤 한다.

레이디버그ladybird, 레이디비틀ladybeetles, 무당벌레는 영어로 그렇게 불린다. 그 레이디는 마리아 님을 가리킨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마리아 님은 일곱 가지 슬픔을 등에 지고 날아간다. 그래서 무당벌레는 레이디비틀이라고 불린다. p.554
무당벌레는 더 이상 높이 올라갈 수 없다고 느끼는 데까지 올라가면, 각오를 다지려는지 동작을 멈춘다. 호흡을 한 번 멈춘 후, 빨간 겉날개를 활짝 펼치고, 곧게 뻗은 날개를 파닥거리며 날아간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은, 그 검은 반점만큼 작기는 하지만 자신의 슬픔을 그 벌레가 덜어줬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p.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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