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비행
리처드 도킨스 지음, 야나 렌초바 그림, 이한음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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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적이거나 일부이긴 하지만, 어떻게 중력의 독재로부터 벗어날까?

자연에서 비행은 어디에 좋은 것일까?

마법의 비행, 리처드 도킨스 p.19

 

 

비행은 어디에 좋을까? 어디에 좋기에 인간은 지금까지 비행하고픈 꿈을 이렇게 긴 시간 동안 꾸는 걸까?

독자에게 비행하는 꿈을 꾼 적 있냐는 물음으로 서두를 뗀 리처드 도킨슨은 곤충, 동식물, 인간의 기술로 발전한 비행 기술의 메커니즘과 진화 과정을 논리정연하게 설명한다. 이 책에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난생처음 듣는 동물과 식물의 이름들로 가득해서, 초반엔 잠깐 머리가 어지러울 수도 있다. (다행히도 그때마다 실사 같은 삽화가 이해를 돕는다.) 저자가 설명하는 비행에 관련된 사실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동식물들의 낯설고 긴 이름은 더 이상 거슬리지 않고 그 내용 자체에 감탄하게 될 거다.

 

새들이 더 잘 날기 위해 추정하기도 힘든 시간 동안 진화를 거듭해왔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 식물도 날기 위해 진화를 한다?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식물의 비행이었다. 날아다니는 식물을 생각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를까. 민들레 홀씨 정도를 상상할 수 있겠지. 하지만 책에서 말하는 식물의 비행은 직접적인 비행을 포함한 간접 비행도 이야기하고 있다. 가장 흥미로웠던 이야기는 꿀벌난초였다. 꿀벌 난초는 벌처럼 보여, 수벌을 속여 짝짓기 행위를 하게끔 유도한다. (물론 꽃은 가만히 있고 수벌이 그 위에서 난리를 치는 것이다.) 여러 차례 짝짓기를 시도한 수벌은 결국 포기하지만 이미 그 몸은 난초의 꽃가루로 뒤범벅이 되었다. 교훈을 얻지 못하는 수벌은 다른 꽃으로 가서 동일한 행위를 반복한다. 그렇게 꽃가루가 비행 능력을 가진 다른 개체의 몸을 빌려 전파된다. 난초 중 일부는 페로몬이나 파리를 흉내 내기도 한다. 우리가 보기엔 그저 가만히 그 자리에서 자라나고 시들기를 반복하는 꽃이지만 사실 이런 엄청나게 교묘한 생존방식이 숨어있다니. 너무 재미있었다.

 

 

식물은 날개를 써서 자신의 DNA를 퍼뜨린다. 날개의 소유자가 날개를 써서 자신의 DNA를 퍼뜨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식물의 날개는 빌린 날개다. 곤충, 새, 박쥐에게서 빌린(또는 고용한) 날개다.

 

마법의 비행, 리처드 도킨슨 / 을유문화사

p.266

 

 

 

식물이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릴 가장 최적의 개체를 선택해서 그들을 고용한다는 표현이 흥미로웠다. 내 머릿속에서는 오히려 주종 관계가 반대였기 때문이다. 마치 식물이 구애를 하면 관련된 곤충이나 동물이 그들을 간택해 주는 것처럼 생각했다. 인간이나 동물과 같은 의식은 없을 뿐 식물도 자신의 영향력을 펼칠 최적의 시스템을 찾고 그에 맞춰 적극적으로 진화한다는 사실이 읽는 내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동물 비행자의 자연 선택은 더 잔혹하다. 실패는 말 그대로 죽음을 의미한다. 반드시 치명적인 추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마 결함 있는 설계는 포식자를 피하는 속도가 더 느릴 것이다. ... 실패는 진정으로 실패를 의미한다. 죽음이나 적어도 번식 실패를 뜻한다.

마법의 비행, 리처드 도킨슨 / 을유문화사

p.275

 

 

 

비행이 생존의 필수 전략인 개체들은 끊임없이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며 아주 오랜 기간 동안 그들의 몸을 수정한다. 포식자를 피하거나 먹이를 잘 발견할 수 있는 유전자를 가진 이들이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죽거나 도태된다. 누구나 아는 이 자연법칙이 끊임없이 기술을 발전시켜 도태를 막고자 하는 인간의 입장에선 잔혹하게 느껴진다.

읽으면서 들었던 의문이 있다. 인간은 생명 유지나 생존에 필수적이지 않은 비행을 호기심과 동경으로 시작했다는 사실이 참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책 속에 나온 수많은 인간 외의 존재들은 비행 능력이 필수불가결하였기 때문에 더 빳빳한 깃털을 만들고, 몸 크기를 키우거나 줄이는 등 뼈를 깎는 노력을 하는데. 인간은 종족 간의 교류와 미지의 탐험을 목표로 비행 기술을 발달시켰다는 점이 독특했다.

공중 부유 생물 내용을 다루면서 도킨슨은 이렇게 말한다. '동식물이 적어도 일부 자손을 운 좋게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멀리 보내려는 외향 충동을 진화시킨 이유는 설령 부모 자신이 가능한 최고의 장소에 살고 있다고 해도 자식을 멀리 보내는 쪽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마지막 챕터에서 도킨슨은 내 의문에 답변을 한다. 화성에 정착 계획을 세우고, 끝도 없다는 우주로 자꾸만 나아가고, 작은 범위인 지구 내에서조차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을 하는 인간에게도 언젠가 운석 충돌이나 그보다 못하더라도 생활에 타격을 줄 만한 재난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자꾸만 거주지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외향 충동이 생긴다는 것. 단순히 날고자 하는 욕망의 시작은 호기심이었을지 몰라도 그 기저에는 지구에서 사는 동물로서 생존의 본능을 느꼈던 걸까. 후 불면 날아가는 민들레 홀씨를 부러워하며.

 

 

리처드 도킨슨의 대표적인 작품인 '이기적인 유전자'에 비해 가볍고, 알록달록한 삽화가 곳곳에 등장해 이해를 돕기 때문에 절대 어렵게 읽히는 책이 아니다. '대체 어떤 방식으로 행동한다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 찰나. 실사에 가까운 삽화가 등장해서 읽는 이가 중간에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준다. 나처럼 과학 도서에 취약한데 한 번쯤 하늘을 나는 원리가 궁금했던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읽다 보면 짜임새 있게 얽힌 논리와 여러 동식물에 관한 이야기들 속에 빠질 거다. 마지막 챕터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생존을 위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니 책장을 덮고 성찰할 기회도 얻을 수 있다! (엄청난 장점!)

 

꼭 옆에 앉아서 리처드 도킨슨과 친구가 되어 비행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만 같은 자연스러움과 중간중간 섞인 그의 유머 덕분에 책을 읽는 동안 아주 즐거웠다. 책을 다 읽은 나는 이제 박쥐의 손가락과 칼부리벌새의 긴 부리 등에 관심을 가지며 그들의 진화를 마음껏 놀라워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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