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별장, 그 후
유디트 헤르만 지음, 박양규 옮김 / 민음사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란 문학 작품이나 그림, 조각 따위의 예술품을 창작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뜻한다.

 소설이 될 수도, 시가 될 수도, 수필이 될 수도 있다. 글이란 매개체를 통하여 자신만의 가치관과 생각..아니 뭐 이런 거창한 것이 아니더라도 그 글을 읽는 다른 사람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만 하면 그뿐이지 않을까? 하지만 한국 사회 내에서는 이런 생각으로 작가를 하고 있는 사람이 드물다. 아니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토양 자체가 만들어 있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기 우리나라의 반대편에 있는 이제까지 풍문으로도 들어보지 못한 이 작가에게 끌렸고 그녀의 책을 넘기게 했다. 지금 독일 현대문학계에서 상당히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유디트 헤르만이란 작가는 이미 상당히 성공한 작품들이(심지어 영화화된 작품도 있다.) 있는데도 불구하고, 작가란 권위의식의 옷을 껴입지 않고 소탈하게 살아간다고 한다. 솔직히 이런 점에 끌렸던 그녀의 소설 <여름 별장, 그 후>는 나에게 또 다른 놀라움을 선사했다.

1. 이제껏 읽어왔던 독일문학들은 근대 현대로 넘어오면서 거의 독일의 과거사에 관한 것이거나 혹은 그것을 소재로 하는 소설들이 주류를 이뤘다. 그런 것들을 좋아하거나 기대했던 독자라면 이 책은 바로 덮는 것이 좋겠다. 이 단편들안에는 역사적 소재는커녕 솔직히 이렇다 할 사건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여성적 시선으로(실제로 거의 모든 단편들의 화자가 여성이며, 화자가 남성이라도 극의 중심은 여성에 맞춰져 있다.) 자신의 친구와 함께 여행가서 있었던 일이라던가, 예전에 좀 만났던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와서 한 번 만난 것과 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전부다. 작가가 겪었던 일 혹은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썼다고 한다. 이런 극적이지 못한 소설에게 나는 묘한 끌림을 갖는다. 자극적인 것들에 익숙해져 더한 자극을 찾다가 우연히 편안함을 발견한 느낌. 연신 차가 터지고 빌딩이 무너지는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영화만 보다가 잔잔한 독립영화 한편을 본 느낌이랄까?

2. 짤막한 단편들이다 보니 등장인물들이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거의 핵심인물 2~3명이 주를 이루는데, 여기서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들은 모두 우울하다. 하지만 그들은 그 우울함에 이리저리 휘둘리지도 그렇다고 그것을 이겨내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냥 그대로 내버려둔다. 영화 몽상가들의 그들과도 같은 모습이라고 떠올리기도 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함... 친밀성이 결여된 지금의 사회의 이야기. 요즘의 내 마음과 아니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감정이 아닐까? 책을 읽는 동안 내 친구에게도 가족에게도 하지 못하는 깊은 얘기를 나누는 듯 느껴졌다.

3. 책을 읽다가 아 이 책이 재밌구나생각이 드는 적은 많았다. 하지만 아 이 작가가 글을 정말 잘 쓰는 구나하고 느끼는 적은 드물었는데, 이 책을 읽고는 정말 잘 쓴다는 생각을 했다. 문장들이 굉장히 짧고 간결하다. 하지만 그 안에 섬세한 이미지 묘사가 들어있다. 예전에 코맥 매카시의 책 <더 로드>를 읽을 때 느꼈던 것과 비슷했다.(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작가는 처녀작인 이 단편집으로 독일 현대문학계에서 신동소리를 들으며 데뷔했다. 그녀의 다른 책 <단지 유령일 뿐>도 단편으로 모아진 책인데, <여름 별장, 그 후>를 읽고 그녀에게 관심이 간다면 그 책도 한번 읽어봄직 하다. 아니면 이 책들의 몇 편의 단편들을 모아 만들어진 동명의 영화 <단지 유령일 뿐>을 보고 작가의 감성을 느껴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자극적인 것들에 파묻혀버린 사람이라면, 특별히 간을 하지 않은 절밥같은 이 소설을 음미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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