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가 위장에 탈이 나면 풀을 먹듯이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 강유원, 『책과 세계』의 한 구절이다. 북튜버 김겨울 님의 『책의 말들』에서 이 문장을 발견하고 고개를 끄덕였었다. 내 경우에도 그랬다. 단순히 재미를 찾기 위해서, 문장의 아름다움을 향유하고 싶어서 책을 읽기도 하지만 나는 근본적으로 짧은 시야 어디에서도 답을 구할 수 없을 때 책을 펼친다. 그래서 더욱 “나는 책에서 세상을 납득하기 위한 도구를 얻었다.” 라는 카피에 눈이 갔다.
『시절의 독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법관으로 재직한 김영란 법관의 책으로 프롤로그, 에필로그와 함께 루이자 메이 올컷, 브론테 자매들, 버지니아 울프, 도리스 레싱, 마거릿 애트우드, 카프카와 쿤데라, 커트 보니것, 안데르센, 총 열 작가의 작품과 생애, 그리고 그들이 겪었던 역경을 소개하고 있다. 자유롭다고 생각할 수 없었던 시대 속에서의 고민, 그리고 직업과 가정을 가진 여성으로서의 고민, 또 어떤 인습과 편견, 변혁 가운데에서 살아온 저자는 책장에서 만난 다른 세상의 면면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에 실린 작품들 중 읽은 책도 있고, 읽고 싶었던 책들도 있었다. 그리고 읽고 싶어진 책들도 생겼는데, 자유 의지에 대해 이야기한 커트 보니것의 『제5도살장』이 특히 그랬다. 요즈음의 나는 언젠가의 일기에도 언급했던 것처럼 세상의 많은 것들에 조금은 무력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었다. 노력이라는 것을 하고는 있으나 매진하지 않았고, 반성했지만 어느 것이고 쉽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근래 어쩌면 인생의 다른 챕터로 넘어갈 수 있는 마지막 전환점에 서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들을 자주 했다. 아마 실제로도 그럴 것이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나은 선택지를, 최선의 선택지를 고를 수 있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 보면 이 모든 걸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무겁고 두렵게만 느껴졌다. 미지의 미래 앞에서 나는 너무나 작은 인간이라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다 보면 가상의 인간들을 데리고 그냥 말 그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게임 ‘심즈’처럼 그냥 나를 누군가가 커서로 조종해 줬으면 하는 말도 안 되는 망상에 빠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