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 영성 - 영적 무감각에 빠뜨리는 '바쁨'을 제거하라
존 마크 코머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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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본 영화 "주토피아"에서 내가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주인공이 나오는 순간이 아니였다.

조연급도 아닌 엑스트라에 가까웠던 나무늘보가 나왔던 장면이다.

나무늘보가 말도 느리고 행동도 느리고 심지어 유머를 듣고 웃는 포인트도 느린 모습으로 등장했다.

그 장면을 보며 나는 정말 답답해서 가슴 속에서 악 소리를 질렀다.

왜냐하면

나는 말도 빠르고, 행동도 빠르고, 판단도 빠르고, 손도 빠르다. 그래서 나는 느린게 익숙하지 않으며,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 나는 책 제목이 달갑지 않았다.

'패스트 영성' 과 같은 제목의 책의 출간을 기다리며 이 책 읽기를 잠시 미루고 싶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영성과 가장 걸맞지 않은 단어라는 사실을 알게 해줬다.)

내가 뭐든 빠르다고 하면 다들 좋겠다며 부러워하고, 또 우러러 보는 시선도 있음을 알고있다.

책을 읽으며 그 시선과 평가를 즐겼던 순간들과 그 기대에 부응하고자 더 빠르게를 외쳤던 지난 날의 내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때의 내가 있었기에 오늘 내가 이렇게 무거운 멍에를 지고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여백의 미가 내 삶에 없었다.

소리나 활동, 스마트폰이나 사람, 그 어떤 것으로든 나는 내 삶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채움이 나를 더 무거운 멍에를 지는 삶으로 인도하는 거라는 걸 왜 그때는 알지 못했을 까.

스스로 직접 이 진리를 깨닫고 삶에서 쉬운 멍에 곧 예수님의 삶의 방식을 채택하여

습관을 연습하고 수칙을 게임처럼 즐겁게 지켜낸 작가의 고백들은 힘이 있었다.

이미 수없이 '말씀을 가까이하고 제발 기도하라'고 외치시는 수많은 목사님들의 설교를 듣고 자라

이제 단련이 된 현대의 기독교인들에게 다시금 기도하라고 답을 제시하는 것이 얼마나 들리지 않는 문장인지

저자는 잘 아는 듯 했다.

그래서 아주 많은 인용문과 논리와 사실을 가지고 와서 우리를 설득한다.

이 쉬운 멍에를 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있으며 너를 자유케 하는지 차근차근 설명해준다.

죄책감과 수치심을 주고 싶은게 자신의 목적이 아님을 몇번이나 강조해서 말한다. 그만큼 저자는 간절했다.

우리 삶을 피상적으로 만들고,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게 만들고, 하나님을 향한 관심을 사그라들게 하는

수많은 것들로부터 이제 그만 나오라고. 그것은 너의 탓만은 아니라고 그러니 부끄러워 말고

한계를 인정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채택해보라고 권유한다.

나는 충분히 설득이 되었다.

이미 고민하던 많은 문제들 ( 기도,큐티 등 고요한 시간의 회복, 물건 정리, 멀티 테스킹 등)에 대한 답을 얻었고

실천과 적용만 남아있는 듯 하다.

여전히 나는 설거지를 하면서 설교를 듣거나 강의를 듣는 일이 효율적이어서 좋고,

빨래를 개면서 드라마를 보거나, 최대한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끝마치는 것이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예수님이 나라면 오늘의 시대에 이렇게 사시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상상을 해보니, 조금 다르게 살아보고 싶은 소망이 생겼다.

다르게 사는게 목적이 아니라 '최종 목적은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한 저자의 결론을 놓치지 않고

천천히 하나씩 해나가며

많은 것에서 속도를 늦추며,

아이들과 함께 본 영화 "주토피아"에서 내가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주인공이 나오는 순간이 아니였다.

조연급도 아닌 엑스트라에 가까웠던 나무늘보가 나왔던 장면이다.

나무늘보가 말도 느리고 행동도 느리고 심지어 유머를 듣고 웃는 포인트도 느린 모습으로 등장했다.

그 장면을 보며 나는 정말 답답해서 가슴 속에서 악 소리를 질렀다.

왜냐하면

나는 말도 빠르고, 행동도 빠르고, 판단도 빠르고, 손도 빠르다. 그래서 나는 느린게 익숙하지 않으며,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 나는 책 제목이 달갑지 않았다.

'패스트 영성' 과 같은 제목의 책의 출간을 기다리며 이 책 읽기를 잠시 미루고 싶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영성과 가장 걸맞지 않은 단어라는 사실을 알게 해줬다.)

내가 뭐든 빠르다고 하면 다들 좋겠다며 부러워하고, 또 우러러 보는 시선도 있음을 알고있다.

책을 읽으며 그 시선과 평가를 즐겼던 순간들과 그 기대에 부응하고자 더 빠르게를 외쳤던 지난 날의 내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때의 내가 있었기에 오늘 내가 이렇게 무거운 멍에를 지고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여백의 미가 내 삶에 없었다.

소리나 활동, 스마트폰이나 사람, 그 어떤 것으로든 나는 내 삶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채움이 나를 더 무거운 멍에를 지는 삶으로 인도하는 거라는 걸 왜 그때는 알지 못했을 까.

스스로 직접 이 진리를 깨닫고 삶에서 쉬운 멍에 곧 예수님의 삶의 방식을 채택하여

습관을 연습하고 수칙을 게임처럼 즐겁게 지켜낸 작가의 고백들은 힘이 있었다.

이미 수없이 '말씀을 가까이하고 제발 기도하라'고 외치시는 수많은 목사님들의 설교를 듣고 자라

이제 단련이 된 현대의 기독교인들에게 다시금 기도하라고 답을 제시하는 것이 얼마나 들리지 않는 문장인지

저자는 잘 아는 듯 했다.

그래서 아주 많은 인용문과 논리와 사실을 가지고 와서 우리를 설득한다.

이 쉬운 멍에를 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있으며 너를 자유케 하는지 차근차근 설명해준다.

죄책감과 수치심을 주고 싶은게 자신의 목적이 아님을 몇번이나 강조해서 말한다. 그만큼 저자는 간절했다.

우리 삶을 피상적으로 만들고,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게 만들고, 하나님을 향한 관심을 사그라들게 하는

수많은 것들로부터 이제 그만 나오라고. 그것은 너의 탓만은 아니라고 그러니 부끄러워 말고

한계를 인정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채택해보라고 권유한다.

나는 충분히 설득이 되었다.

이미 고민하던 많은 문제들 ( 기도,큐티 등 고요한 시간의 회복, 물건 정리, 멀티 테스킹 등)에 대한 답을 얻었고

실천과 적용만 남아있는 듯 하다.

여전히 나는 설거지를 하면서 설교를 듣거나 강의를 듣는 일이 효율적이어서 좋고,

빨래를 개면서 드라마를 보거나, 최대한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끝마치는 것이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예수님이 나라면 오늘의 시대에 이렇게 사시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상상을 해보니, 조금 다르게 살아보고 싶은 소망이 생겼다.

다르게 사는게 목적이 아니라 '최종 목적은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한 저자의 결론을 놓치지 않고

천천히 하나씩 해나가며

많은 것에서 속도를 늦추며,

'이미 충분해'를 외치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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