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열 - 극일에서 분단을 넘은 박애주의자 독립기념관 : 한국의 독립운동가들 49
김인덕 지음 / 역사공간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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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대심원은 2월 26일부터 매일 개정했다. 박열은 한복과 사모관대를 쓰고 조선말로 당당하게 말했다. “나는 박열이다” 가네코 후미코도 한복을 입고 조선말로 자신은 “박문자”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최후진술을 통해 자신이 왜 천황을 죽이려 했는가를 밝혔다. 3월 1일까지 4차례의 최후 공판을 마쳤다. 그리고 3월 25일 재판장 마키노 기쿠노스케(牧野菊之助)는 박열과 가네코 두 사람에게 예상대로 사형을 선고했다. 사형선고를 받은 박열의 기개는 대단한 것이었다.

“재판장 수고했네. 내 육체야 자네들 마음대로 죽이라. 그러나 정신이야 어찌할 수 있겠는가?”

가네코 후미코는 한 술 더 떴다.

“만세! 모든 것이 죄악이요, 허위요, 가식이다”

재판정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박열은 민족주의, 사회주의를 넘어 또 무정부주의를 넘어 모든 것을 악으로 보고 전부 파괴해야한다는 허무주의에 이르른다. 하지만 그의 사상에 대한 동조여부는 논외로 하고 막강한 일제에 맨몸으로 대항하는 그의 불꽃같은 투쟁과 픽션보다 더 치열한 그의 짧은 생애를 잠시 들여다 본 것만으로도 긴 여운을 남기는 책이다.

 

 

그의 부인이자 동료였던 가내코 후미코의 자살 전 옥중에서 쓴 단가 한 편이 그의 생애를 말해준다.

웃을 틈도 없이

또다시 떠오르는 B의 모습

나는 열아홉 그는 스물하나

둘이 함께 살다니 조숙했다 할 수 밖에

집을 나와 그를 만나

밤늦도록 길을 걸은 적도 있었지

너무도 뜻이 높아

동지들에게마저 오해를 산 니힐리스트 B

적이든 우리 편이든 웃을테면 웃어라

XXXX나 기꺼이 사랑에 죽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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