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을 잃어버리고 무력만이 살아남았다는 문장에서 미국의 참담함이 드러난다. 그래도 선한 아메리카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위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벤 샨과 에드워드 사이드에 관한 글이 좋았다. 이제 더는 작가의 새로운 글을 만나보게 되지 못한다는 것이 슬프다.
먼 곳의 비유를 끌어와 문장을 이어나간다. 처음에는 말이 되나 하고 읽어나가면 말이 되면서 리듬이 생기고 상상력이 확장되는 재미가 있다. 엄마, 할머니의 진부한 인물들의 이야기임에도 진부하기에 원초적인 연민을 불러온다. 다만 서평이 수다스러워 책에 기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농담에도 뼈가 있다.
농담에서 나오는 웃음은 분명히 쾌락의 신호이며, 우리는 이 쾌락을 이제까지 집중됐던 정신적 에너지의 극복과 관련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농담을 듣는 사람은 웃는데 그것을 만들어 낸 사람은 웃을 수 없다는 것은, 농담을 하는 사람에게서는 집중됐던 정신적 에너지가 없어지거나 방출되는 데 방해물이 생기는 반면 듣는 사람에게서는 집중됐던 정신적 에너지 비용이 사라지고 방출된다는 점을 말해 주는 것일것이다. 농담에서 제삼자인 듣는 사람은 자신의 비용을 아주 적게 들여 농담의 쾌락을 산다고 강조하는 것이 제삼자에게서 일어나는 정신적 과정의 특징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일 것이다. 말하자면 농담의 쾌락은 제삼자에게 선사되는 것이다. 제삼자가 듣는 농담의 표현들은 그 자신이 하려 했을 때 그에게서도 상당한 내적 금지에 직면했을 표상이나 사고 연관을 그의 내면에서 발생시킨다. 그는 그런 생각들을 자발적으로 하기 위해서 자신의 노력을 기울여야만 했을 것이다. 적어도 생각의 금지, 억제또는 억압의 강도에 해당하는 만큼의 정신적 비용를 투입했어야하는데 그 정신적 비용을 던 것이다. - 189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