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기다리셨나요? 참 이런 인사가 뻘쭘하긴 합니다.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니 오늘부터 댓글창을 열어 두겠습니다.

그전에 미리 밝혀 둘게 있는데요, 저는 이 토론을 단칼에 끝장을 볼 생각이 없습니다. 제가 누누히 강조했지만, 우리의 문화가 그래왔잖습니까? 단칼에 끝장을 보려고 하는. 그래서 아무런 결론없이 끝내버리고. 제가 앞에서 그런 말하지 않았습니까? 저 아는 지인이 그러던데 프랑스 사람들은 토론을 하면 몇날며칠, 심지어는 몇달씩 한다고. 그 과정에서 찡그리는 것 없이 서로 웃어가면서 즐겁게 토론을 한다구. 아무리 남의 나라라도 그런 건 우리가 좀 배울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것을 길게 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 저로 인해 일어날지도 모르는 알라딘 내에서의 파장을 최소화 하자는 생각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늘 이 글을 쓰고 다음 주 어느 날에 다시 쓰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 안에 죽지만 않으면. 그러므로 어떤 사람 보기엔 속 터져 죽겠다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네. 그러면 죽으십시오. 안 말립니다. 제가 책임질 것도 아니니까. 단지, 속터져 죽고 싶지 않으면 보지 마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왜 제가 했던 말을 또 되풀이 하면서 시작하는지 아십니까? 제가 지난 며칠 전부터 이해를 구하는 멘트를 내 나름껏은 정말 많이 날렸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꼭 딴소리 걸고 나오는 분이 계세요. 제가 이제까지 댓글창 닫고, 먼댓글창 닫아 놓은 이유에 대해 말했던 것으로 아는데 딴소리 하시는 분이 계시더란 말이죠. 하긴, 이런 사람 어디든지 가면 꼭 있죠. 이해 합니다. 사람은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을 기억한다고. 그런 거죠. 그래서 되풀이가 필요한 거죠. 여기 오늘 처음 들어와서 보실 분도 계실 것이고.

 

그런데 제가 그랬죠? 저의 1인 시위를 유일하게 지지하셨던 한 분이 계셨다구요. 전 그분께 지금도 고마운 마음인데요(아, 이분 말고도 다른 경로로 저를 지지해 주신 분이 한 분 더 계십니다. 이 정도면 뭐 거의 좌청룡 우백호쯤 되는 건가요?ㅋ), 그분이 저를 지지해 주시면서 끝에 이런 말을 남기셨더랬습니다. "1인시위란, 법이 법답지 못할 때에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즐겁게 싸우고, 즐겁게 글을 쓰시기를 바랍니다." 라구요. 저 이 말에 완전 감동 먹었다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그분과 약속을 했습니다. 꼭 그러겠다구요. 하지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즐겁게 싸우는 건지. 또 이게 저만 그러겠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닌 것 같고, 그래서 즐겁게 싸우기 위한 몇 가지 규칙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 아십니까? 분명 저의 시위와 앞으로 펼쳐질 토론을 지켜 볼 익명의 알라디너들이 있다는 거? 그들은 저의 이 방법이 알라딘 내에서 관행처럼 있어왔던 소요 사태에 대안아 될 수 있을까? 지켜보고 있을 겁니다. 어떤 분은 좋은 마음으로 지켜 볼 것이고, 어떤 사람은 칼을 품고 지켜 보기도 하겠지요. 참고로 김두식 교수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끊임없이 남을 감시하고 비난하고 있다구요. 뭐할 때? 개인의 욕망이 출구를 찾지 못할 때. 이런 사람 저는 어제 봤습니다. 저의 방명록에 왔더군요. 그것도 비로그인으로. 닉네임을 밝혀도 될 것 같습니다. 뭐 실제 그런 이름으로 서재 활동을 하고 있을 것 같지는 않으니까요. 바로 '알라딘의 바닥'이라는 분이셨습니다. 현재 제가 그분의 댓글은 삭제해 버린 상태인데요, 이분이 처음에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저번에 쓴 저의 페이퍼 동의는 않하지만 추천을 눌렀다고. 왜냐하면 토론을 하신다기에 더 많은 사람이 들어와 보라고 눌렀다는 겁니다. 뭐 그것까지는 저도 나쁘지 않게 받아 들였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 저의를 드러내는데, 제가 얼마 전 알라딘 이달의 당선작 가지고 꼬장 부렸잖아요. 그것 어떻게 해명할 건지 알고 싶어서 그랬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 흔한 정의니 뭐니 하는 말로 포장할 생각하지 말라구요. 그래서 그냥 웃으면서 삭제했습니다. 제가 웬만해서 제 서재에 남이 달아놓은 댓글을 쉽게 지우고 하는 사람이 아닌데요, 어차피 말도 안 되는 닉네임을 달고 비로그인으로 들어오셨고, 말도 안되는 댓글을 다셨으니 삭제했습니다.  

제가 분명 이 부분 대해서도 지나친 것도 없지않아 사과를 했다고 생각하는데(물론 나중에 한 번 더 구할 생각입니다만) 그분은 이 생각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고 계신 것 같더군요. 참, 사람이 죄 짓고는 못산다더니, 사람이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지 모르지만 이 사람도 알고 보면 욕망의 출구를 제대로 찾은 사람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보십시오. 닉네임도 '알라딘의 바닥'이라지 않습니까? 본인을 그런 식으로까지 비하시키면서 저의 방명록에 그런 추잡한 댓글을 달 필요가 있었을까요? 그래서 그분도 인격은 있을 테니 남이 볼까 두려워 또한 삭제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때요? 이만하면 잘하지 않았나요?ㅋ. 물론 압니다. 저 보라고 정한 닉네임이란 거. '너는 알라딘의 바닥이야.' 뭐 그런 뜻으로도 이해되지 않겠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더더욱 이 '알라딘의 바닥'님이란 분은 욕망의 출구를 못 찾고 계신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런데 왜 제가 이것을 꼼꼼하게 적는지 아십니까? 저는 댓글창을 열면서 이렇게 앞으로 있을지 모를 남을 비방하거나 비난하고, 인신공격이나 인격 모독등을 엄단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를 하다보면 분명 네 편, 내 편이 갈라질지 모릅니다. 물론 저는 당연 저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을 더 좋아하겠죠. 가재는 게 편이라고. 하지만 그분도 예외없이 누군가를 비방하거나 인신공격을 하는 댓글을 쓰신다면 형평성에 의해 역시 삭제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이 저의 첫번째 룰입니다. 물론 삭제할 때는 그냥 하지 않겠습니다. 반드시 복사를 따로 해 놓고 삭제하겠습니다. 왜? 혹시 그분이 나중에 왜 내 댓글을 삭제했느냐고 물으면 증거로 보여드릴 수 있어야 하니까. 이점 유념해 주십시오.

 

그런데 한 가지, 이 제안을 하면서 알라딘에 정중히 요청하고 싶은데요, 며칠 전 라***님이 저 읽어보라고 쓴 글 아실거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인격모독의 혐의가 있어 보이는데 본인이 그 글을 안 내리고 있는데 이쯤되면 알라딘에서 삭제 조치에 들어가 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어느 님은 추천이 과도하게 많은 걸 보고 '감정의 배설'이라고까지 했는데, 각 사이트마다 욕설이나 비방의 글을 운영측에서 임의로 삭제하는 권한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알라딘은 그런 규정도 없이 사이트를 운영해 오신 건가요? 적어도 그 글을 쓰신 분의 인격을 보호해 주는 차원해서라도 임의로 삭제할 뜻은 없는 건가요? 묻고 싶습니다.

 

두번째 룰을 말씀 드리죠. 제가 댓글창은 열지만 먼댓글창은 여전히 닫고 있습니다. 그것은 관련해서 파생 페이퍼를 만들지 말아 달라는 간곡한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파생 페이퍼 만들지 말아 주십시오. 좋은 말이든, 무슨 말이든 여기 이곳 댓글에 다 하십시오. 파생 페이퍼 만들면 우린 또 예전으로 돌아갑니다. 예전에 어떤 분은 남이 올린 페이퍼를 복사해다가 빨간펜 선생을 자처하며 회 뜨고 계시던데, 전 또 그런 일이 생길까봐 겁이 납니다.    

 

세째, 무슨 말을 하고 싶더라도 그걸 직설화법으로 하시지 마시고, 설득하려고 하시려고 노력하십시오. 이것도 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생각은 자기와 다를 수 있는 건데 그것에 대해 나는 이러 이러하게 생각한다고 조리있게 설명하면 되는 것을, 보고 자기 서재에 무슨 말이든 자기 좋을 때로 뇌까려 버리면 아무리 악의가 아니라고 해도 당사자는 상처 받거나 오해 받습니다. 그런다지요, 사이버테러를 하는 사람들 나중에 물어보면 그게 그렇게 잘못인 줄 몰랐다고. 자신이 한 행동이 그 사람한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 안 해봤다고. 물론 이건 하나의 예긴 하지만, 우린 우리도 모르게 그와 비슷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 같고. 이러한 일을 막으려면 스스로가 자정하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래서 제가 이전에 그런 말도 했잖아요. 질문이 중요한 것 같다고. 듣는 사람은 다 알고 있는 것 같아도, 말한 사람과 분명 뜻이 같지 않거든요. 그러므로 혹시 뜻이 다르다면, 나는 그 말을 이러 이러하게 알아 들었다. 맞느냐? 확인하시고, 그런데 나는 이러이러하게 생각한다.라고 말한다면 우린 즐거운 토론은 몰라도 존중 받는 토론은 할 수 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말이 길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찬찬히 내 의도를 밟아 주지 않으면 어떤 사단이 생길지 몰라 그렇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자, 그럼 이제부터 제가 거론하고 싶은 사안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사실 이쯤에서 저의 1인 시위를 지지해 주셨던 분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는데, 된장님이십니다. 원래 제가 문제제기를 했던 건 '이달의 당선작'이었는데, 된장님께서 방명록에 쓰신 글을 읽으면서 급한 건 그게 아니겠구나. 더 급한 건 '알라딘 뉴스레터'겠구나 싶었습니다. 왜냐구요? 이달의 당선작은 한 달에 한 번 나가는 거지만, 그건 매주 나가고 있잖아요. 그러므로 일단 급한 불부터 꺼보자는 생각입니다.

 

물론 이 '알라딘 뉴스레터'가 그 전에 한번 도마위에 올려졌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조금 다른 사안일 수도 있는데, 된장님이 저의 1인 시위를 지지해 주셨던 건 바로 이 부분 때문이기도 하셨을 것입니다. 그것은, 알라딘이 뉴스레터에 알라디너의 글을 실으면서 원고료는 지급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명백히 법을 위반하는 것이더군요. 이것을 알라딘이 모르고 있었는지, 알고 있었는데 묵인한 것은 아닌지 그것이 알고 싶습니다. 됭장님은 이에 대한 법적 대응 방법까지도 알려주셨는데요, 양해를 구하면서 그대로 옮겨 보겠습니다. 된장님은, "1인시위도 여러 길이 있을 텐데, '이달 당선작'으로 '내 글을 쓰지 말라' 하는 일과 '알라딘 전자신문에 내 글을 쓰지 말라' 하는 길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알라딘 전자신문'에 글을 싣는다면, 이 글은 반드시 알라딘에서 원고료를 따로 주어야 옳습니다. 알라딘 전자신문에 글을 싣고 원고료를 안 주었다면, 저작권심의위원회에 제소를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간편제소'라는 방법이 있어요. 법정까지 가지 않고 저작권심의위원회에 제소하는 방법인데, 이렇게 해서 작게나마 성과를 거둘 수 있을 테고, 간편제소로 안 되면, 내용증명을 보내면서, 이 내용증명으로 stella09님 계신 집하고 가까운 지방법원에 가서 민사소송(피해보상)을 내보십시오." 1인 시위도 뭘 알아야 하는 것이겠구나를 새삼 절감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언제부턴가 이 부분이 깨름칙했습니다. 알라딘이 알리디너의 글을 관리하는 거 당연하지만, 알라디너의 글도 지적 자산인데 이걸 왜 인정해 주지않고 임의로 싣느냐는 겁니다. 그뿐입니까? 얼마 전, 저의 10년 서재질을 회고하는 그글이 뉴스레터에 실릴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솔직히 그걸 안 순간 좀 정서적 충격이 있었습니다. 왜 어떤 알라디너는 정서적 충격을 받으면서까지 알라딘 뉴스레터를 받아 보아야 하는 건가요? 이건 앞서 지적한 과거에 뉴스레터가 도마 위에 올랐던 그 문제와 같은 맥락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든 글쓴이가 원치 않으면 싣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 제작측은 한번이라도 와서 의사를 물어 본적이 있었습니까? 그리고 어쨌든 실렸다면 그에 준하는 원고료를 지급하는 것이 마땅한 겁니다.

 

이 문제는 알라딘이 그냥 넘어갈 문제는 아닙니라고 생각합니다. 전 꼭 알라디너의 권익만을 대변하고자 이글을 쓰지 않습니다. 알라딘도 이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문제는 언제든 누구에 의해서 또 붉어져 나올 테니까요. 모르긴 해도 된장님은 정말 제가 알라딘의 이런 부당행위에 대해 제소하길 바라고 저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이 방법이 있다고 참고적으로 알려주시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저는 지금 저 방법을 당장 시행할 생각은 없거든요. 알라딘과 동고동락한 세월이 얼만데 그렇게 쉽게 배신을 때리겠습니까? 적어도 이것에 대한 성실한 해명을 하시겠다면 제소하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저렇게 밝혀놓은 것은 그 누구라도 피해 보지 말라고 해서 밝힌 것입니다.

 

또한 알라딘이 모르고 그렇게 뉴스레터를 발행해 온 사실을 인정된다면 적어도 3개월 전의 뉴스레터부터 소급 적용해서 알라디너들께 원고료를 지급할 생각이 없는지 묻고 싶습니다. 물론 거의 대부분 알라디너들은 삭제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기록은 제작측에는 그대로 보관되어 있지 않습니까?  

 

자, 오늘은 이 정도만 하겠습니다. 한 가지 알라디너에게 부탁드리는 것이 있다면, 제가 이런 글을 썼다고 바로 댓글을 달아주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신중히 생각해 보시고 달아 주십시오. 왜냐하면 저의 1인 시위는 알라딘을 향해 있습니다. 이 문제는 우리가 왈가왈부 하기전에 알라딘이 충분히 납득이 가게끔만 설명하면 생각 보다 간단하고 깨끗하게 끝낼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알라딘도 시간을 벌어 보겠죠. 회의도 해야하고, 분위기도 파악해야 할 것 같고. 

이번 주 토요일 날도 알라디너들의 글이 실린 뉴스레터가 발행되겠죠. 그 다음 주도 어김없이 발행될 것입니다. 어떻게 하실 건가요?

 

참고로, 이 시간 이후 여러분의 의견이 담긴 댓글은 다음 번 저의 글에 정리되어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한사람 2012-05-24 18:06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스텔라님.
제 댓글이 좀 길어 질 것 같은데 먼댓글로 작성한 페이퍼 보다는 이 페이퍼에 댓글로 의견을 남겨 달라 하셔서 (길어짐에 대해)먼저 양해를 구합니다.

그동안 스텔라님이 주장하는 알라딘을 향한 1인 시위에 대해 저도 의견을 드리고 싶었지만 많이 망설였습니다. 첫 번째로는 내가 과연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고 다음은 괜히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되지는 않을까 싶어서 였습니다. 그래서 사태를 관망해보자는 태도가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전에 쓰신 글들이 한 가지 문제만 언급하신 게 아니라 개인적인 감정에서부터 여러 사안이 복합적으로 포함되어 있어 어디서부터 어떻게 접근을 해야 할지가 난감했는데, 오늘 이렇게 한 가지 문제만 지적해주셔서 답을 하기가 수월하네요. 저도 다른 이야기는 접고 제기하신 문제 위주로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첨부 및 부연, 그리고 의견을 제시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저는‘알라딘 뉴스레터’건에 대해 크게 반감을 가져온 사람은 아닙니다. 다른 온라인 서점에서도 저마다 제목을 붙여서 홍보용 레터를 보내주기 때문에 그저 의례적인 DM정도로 생각해왔습니다. 현재 알라딘 뉴스레터에는 알라딘 종합 뉴스레터, 화장품&기프트 뉴스레터, 분야별 뉴스레터, 그리고 알라딘 서재 뉴스레터가 있더군요. 뉴스레터 수신을 원치 않으면 나의 계정>뉴스레터 수신&SNS 설정에서 변경을 할 수 있습니다. 아마 기본 값이 모두 선택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변경하지 않았다면 알라딘 회원 누구나 뉴스레터를 받게 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제로 지적하신 레터는‘알라딘 서재 뉴스레터’를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서재 뉴스레터는 ‘월간 서재 브리핑을 한눈에 볼 수 있으며, 화제의 서재글, 이달의 당선작, 주요 저자 행사/문화행사 등 1개월간의 서재의 다양한 소식’을 전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기본값을 변경하지 않는 이상 회원에겐 모두 발송되는 이유로 서재 이용자에게만 발송되는 메일은 아닙니다. 이 메일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화제의 서재글’과 ‘이달의 당선작’일 것입니다. (그런데 '화제의 글'과 '이달의 당선작'과 관련 있는 분들이 거의 정해진 분들이므로 이 분들 이외에는 이 문제가 그다지 공론화 될만큼 관심사항일지는 모르겠어요...)그래서 저는 게시물에 대한 저작권 및 사용에 관련된 알라딘의 약관을 찾아 보았습니다.


한사람 2012-05-24 18:09   URL

현재 알라딘에 '커뮤니티 이용약관'이 있고 그 아래 제 8조 <회원의 게시물>과 제 9조 <게시물에 대한 저작권>에 관한 내용이 있습니다.
http://www.aladin.co.kr/cs_center/wcs_guide_detail.aspx?pn=firstguide_08

전문을 옮기기는 어려워 언급하신 부분과 관련된 부분만 발췌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제 8조 (회원의 게시물)
④ 회사는 커뮤니티 서비스 운영목적에 반한다고 판단되는 다음의 게시물이나 자료를 사전통지 없이 삭제하거나 이동 또는 등록 거부를 할 수 있습니다.
-다른 회원 또는 제 3자에게 심한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손상시키는 내용인 경우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와 관련되거나, 그 행위를 구성하는 게시물, 자료로서 이해당사자의 삭제 등 요청이 있거나 회사가 피소, 고발 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는 게시물
-다른 이용자 또는 제 3자의 저작권 등 기타 권리를 침해하는 내용인 경우 등등

제9조 (게시물에 대한 저작권 등)
③ 회원이 등록한 게시물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저작권자에게 귀속합니다.
④ 회원은 자신이 창작, 등록한 게시물에 대하여 회사가 커뮤니티 서비스를 운영, 전시, 전송배포 또는 홍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다음의 각호에 행위를 할 수 있는, 세계적이고 사용료 없는 비독점적 사용권을 회사에게 부여합니다.
-커뮤니티 서비스 내에서 회원 게시물의 복제, 수정, 개조, 전시, 전송, 배포, 출판 및 2차 저작물과 편집 저작물 작성
-회사에서 제공하는 관련 서비스내에서 회원 게시물의 복제, 수정, 개조, 전시, 배포, 출판 및 2차 저작물과 편집 저작물 작성
-미디어, 통신사 등 커뮤니티 서비스 제휴 파트너에게 회원의 게시물 내용을 제공, 사용하게 하는 것. 단, 이 경우 회사는 회원의 별도 동의없이 개인정보를 제휴 파트너에게 제공하지 않습니다.

⑤ 회원은 본조 제4항의 사용권 부여가 회사가 커뮤니티 서비스 를 운영하는 동안 확정적으로 유효하며, 회원의 탈퇴 후에도 유효함에 동의합니다.
⑥ 회사는 본조 제4항 이외의 방법으로 회원의 게시물을 상업적 이용하고자 하는 경우, 전화, 팩스, 전자우편 등의 방법을 통해 사전에 회원의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 단, 회원정보에 등록된 연락처가 사실과 다르거나 회원이 회사의 연락에 응하지 않아 사전에 동의를 구하지 못한 경우, 회사는 사후에 동의 절차를 구할 수 있습니다. 회사가 본 항에 따라 회원의 게시물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경우 회사는 별도의 보상제도를 운영할 수 있습니다.
⑦ 게시물에 대하여 제3자로부터 저작권 및 기타 권리의 침해 또는 명예훼손, 음란성 등의 이유로 이의가 제기된 경우 회사는 당해 게시물을 임시 삭제할 수 있으며, 이의를 제기한 자와 게시물 등록자 간에 소송, 합의 등을 통해 당해 게시물에 관한 법적 문제가 종결된 후 이를 근거로 회사에 신청이 있는 경우에만 상기 임시 삭제된 게시물은 다시 등록될 수 있습니다.


한사람 2012-05-24 18:20   URL

우리는 회원가입할 때 위의 모든 약관에 동의한다는 버튼을 누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된장님의 조언처럼 서재뉴스레터에 실린 글에 대한 원고료를 운운한다면 알라딘은 우리 회사 약관에 이렇게 동의하지 않았느냐 할 수 있습니다. 자세히 보시면(9조 5번항) 알라딘은 회원의 게시글을 회원탈퇴 후에도 사용할 수 있다고(기한도 언급없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세계적이고 사용료 없는 비독점적 사용권을 회사에게 부여’한다는 모호한 기준을 덧붙여 놓았습니다. 일방적이고 독점적인 사용으로 보이는 것은 저만 그런 것일까요.

자체적 홍보 이외의 상업적 사용에만 회원에 고지하고 보상한다는 항목도 있는데 그런 경우 대부분 알라딘 이외의 회사에서 자발적으로 연락이 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실상 알라딘은 자사의 도서홍보와 판매증진을 위해 회원 글을 자유롭게 편집, 수정, 개조, 배포할 권한을 가진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분이 강조하셨듯이 이 곳이 도서쇼핑몰인 만큼 모든 글의 사용은 상업행위에 귀속된다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팔고자 글을 게시하는 것이 아닌 언론사도 소정의 원고료를 지급하고 사전 고지를 하는데 결국 도서판매를 위한 2차 저작을 하는 것이면서 회원에게 고지 혹은 동의도 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일방적이라는 생각은 안드시나요?

또 하나 그런데 여기서 의아한 것은 보시면 아시겠지만 알라딘은 자신들이 표준으로 내세운 일이라도 그것이 고객의 입장에서 바라는 일일 경우 처리하는데 상당히 여유롭고 고객의 입장에서 불리하다 판단되는 부분은 완벽하게 실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스텔라님이 토론의 의제로 앞세우지는 않으셨지만 알라딘에 타인 비방에 관한 글을 삭제하는‘그런 규정도 없이 사이트를 운영해 오셨나’는 말씀을 하셔서 규정은 당연히 있지만 ‘삭제한다’ 혹은 ‘해야 한다’가 아닌 ‘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 수준에서 언급하고 구멍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어서입니다.(물론 다른 블로그도 똑같습니다. 다만 큰 회사일 경우 더욱 명예훼손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대대적으로 공지하고 시행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이의가 제기 된 경우' 삭제를 할 수 있다는 것은 곧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니까요. 전에 알라딘은 제가 비방글에 대한 관리 요청을 했을때 자신들은 '가치판단'을 하지 않기 때문에 삭제 혹은 어떠한 조치도 할 수 없다고 답한 바 있습니다. 보시다 시피 가치판단이 아닌 이의가 제기 된 경우 삭제를 할수 있다고 하였지만 이 원칙은 지켜지지 않은 것이지요. 이러한 게시글에 대한 약관은 알라딘뿐 아니라 다른 커뮤니티도 거의 복사해서 회사 이름만 바꾼다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도 일일이 읽어보지 않고 회사도 한번 정한 약관을 여간해선 수정하지 않으니 그런 줄 알고 살아가는 것이죠. 그러니 아마 게시글에 대한 저작권 주장은 업체 입장에선 참 답답한 소리로 보일 것 같습니다.

한사람 2012-05-24 18:54   URL

하지만 목마른 쪽이 우물을 판다고 알라딘 약관을 알았으니 되었다, 혹은 그만하자, 귀찮다 하고 말기엔 무언가 불공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달에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을 것인가>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 책에 보니 고객은 회사의 표준을 확인하고 그것을 활용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있더군요. 표준이란 언제나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회사든 예외사항이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것이죠.

일련의 사태를 보았을 때 경험상 알라딘은 자사의 표준 운영에 있어 회원들 간의 자율적인 판단을 더 우선시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좋게 말해 진보적, 개방적이며 나쁘게 말해 방관적이고 무책임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알라딘은 익명의 추천을 근거로 회원 게시글을 노출해왔고 다수의 추천수에 의지해 민감한 사안을 무위화 해온 것도 사실입니다.(추천의 문제에 대해선 나중에 따로 제 페이퍼를 통해 자세히 언급하겠습니다) 허나 문제점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이 대다수라고 하여 실제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또 어떠한 문제가 잠잠해졌다고 해서 알라딘이 제기된 문제에 답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저는 알라딘이 지금의 개방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내에서 사용자를 위한 유저 인터페이스를 좀 더 세밀하게 개발해 줄 것을 바랍니다. 여기서 제가 조선일보 같은 언론사나 다른 대형 포털과 비교하기 보다는 아무래도 동종업계와 비교하는 것이 타당할 듯해 옆동네 예스 24를(불쾌하시겠지만)언급하겠습니다. 전에도 한번 말씀드렸지만 예스 24는 사용자가 글을 올릴 때 내 글이 임의로 복사되어도 좋을지 말지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쓴 글이 채널예스의 블로그 뉴스에 발행되어도 좋을지 선택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뉴스레터에 발행되는 글은 대부분 파워 블로거의 리뷰를 위주로 싣고 있더군요. 아무래도 리뷰는 공적인 느낌이 많이 나죠...)

내가 쓴 글이 스크랩이나 드래그 복사가 되지 않도록 사용자가 미리 선택할 수 있다면 추후에 저작권 관련 불미스런 일이 일어나도 사용자의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서재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읽는 것은 좋지만 불특정 다수의 회원에게 발송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선택할 수 있다면(나의 서재를 즐찾한 사람에게만 노출한다 말구요) 혹시 모르는 누군가가 그 글을 읽고 내 서재에 들어와 무례한 글을 남기는 일은 줄일 수 있습니다.(제 경우 모르는 분이었지만 조선일보 글을 서재뉴스레터로 읽으시고 제 서재에 아주 감동적인 글을 남겨주신 분이 몇몇 있었습니다)

꼭 댓글 반응이 아니더라도 그 글을 작성할 당시에는 ‘화제의 글’이 될지도 몰랐고 서재뉴스레터로 발송될지도 몰랐을 수 있겠죠. 그러니 작성할때 스스로 민감하다 생각되거나 한정된 시기에만 올리고 싶다거나 여러 이유가 있을 때 선택의 폭을 넓히면 어떨까 싶습니다. 기왕 화제의 글에서 화제가 된 거 서재뉴스레터로도 발송되어 알려지면 영광이고 좋겠다 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사실 서재 뉴스레터로 날아온 글 들 중에는 화제의 글에 올라간 글들 중에서도 또 선택되어져 서재에서만 해당되는 상당히 민감한 문제들도 많았습니다. 특히나 좋은 소리도 아니고 좀 잊고 싶은 글인데 뉴스레터로 돌아올 때 그 글의 작성자나 이해 관계자의 일차적인 느낌은 당황스럽지 않을까요. 제 경우 저와 관련이 없었지만 어떤 글은 상당히 사적으로 보인 글이 있어 과연 그 분은 좀 부끄럽지 않을까 싶었던 글도 있었습니다...전에 어떤 분은 사적인 글을 사람들이 보기 원치 않으면 온라인에 그 글을 올리지 말아야 한다는 사용자 책임원칙을 강조하셨지만 다른 블로그를 하지 않고 알라딘 서재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분명 알라딘 서재 이용자들만이 내 글을 보았으면 싶다 생각하지 않을까요? 다음 뷰의 경우도 노출의 대상이 '책'이라는 주제하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맞는 말씀이지만 그 책임을 나누자는 것입니다.

예스 24와 알라딘은 서재 운영방식도 다르고 각기 추구하는 커뮤니티 문화도 다를텐데 무례하게 비교를 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예스 24도 분명 알라딘과 비교하면 단점이 있고 배울점이 있을 것입니다. 제 결론은 알라딘이 사용자 입장에서 좀 더 다양한 선택을 할수 있는 그리하여 사용자 스스로가 글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을 동시에 질수 있는(책임을 서로 나눌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개발해주시길 바란다는 것입니다. 너무 큰 욕심이라 생각지는 않습니다. 언젠가 부터 알라딘 메인 페이지에 로긴하면 맨 위에 제 서재에 일어난 일이 공지사항처럼 뜨더군요. 그외 알라딘은 기프티콘등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하여 고객의 니드에 부응하려 노력하고 있는 줄로 압니다.

알라딘 서재 이용자가 전체 알라딘 회원중 몇 퍼센트나 차지하는지 알지 못하고 또 그들이 매출에 얼마나한 영향을 주고 있는지 통계적으로 알지 못합니다. 최근에 인터넷 서점이 작년같지 않고 한없이 추락하고 있다는 기사를 자주 접합니다. 책을 사는 사람이 눈에 띠게 줄은 것이죠. 신규 회원을 위주로한 마케팅도 좋지만 기존에 충성 고객들의 불만과 의견을 더 세밀하게 해결하는 모습은 분명 장기적인 관점에서 알라딘을 경쟁력 있는 회사로 만들어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너무 댓글이 길어서 죄송합니다 ㅠㅠ 주제넘었다면 모든 분에게 넓은 마음으로 혜량을 바랍니다.

원하면구하라 2012-05-24 19:01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드래그금지 관련해서 알라딘에 문의한 적이 있었습니다.
알라딘 측의 입장을 답변으로 받았고요.
검색해보니 태그를 써서 복사금지를 설정할 수 있다는 팁을 알라딘 측에서 공지한 적도 있더군요.

포털 등에 복사금지 태그를 쳐봤습니다. 어렵지 않게 답이 나왔습니다.

<★div oncontextmenu="return false" ondragstart="return false" onselectstart="return false">

글 작성하실 때 HTML 네모칸에 체크하신 뒤 위 태그를 입력하세요.
(댓글에도 태그가 먹히는지 몰라서 앞에 별표를 넣었는데 쓰실 땐 별표 지우세요.)

이미 이 태그를 쓰고 있는 서재도 꽤 있더군요.


예스24 블로그에서 지원하는 드래그 금지 설정을 해놔도,
아주 쉽게 복사와 드래그가 가능합니다. 합법적인 방법을 이용해서요.
굳이 이걸 뚫어서 남의 글을 드래그하려는 생각이 없는 사람들도 사용하는 OS에 따라 자동적으로 드래그 금지가 풀리는 일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사측에서 간단한 설정을 해두었다고 해서 저작권 침해가 일어났을 때 그 책임을 사용자(글 작성자)에게 물을 수만은 없는 이유입니다.

물론 사측에서 지원하는 드래그 금지 설정을 체크해서 이용 중이라면 자신의 글을 남이 복사하는 걸 원치 않는다는 메시지는 전달되겠죠. 하지만 위에 언급한 것처럼 그런 설정은 무용지물에 가깝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금지 설정을 풀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차라리 자신의 서재나 작성글 하단에 복사 및 드래그를 금지한다는 문구를 넣으시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알라딘에게 받은 답변도, 이런 문제를 고심하다가 결국 드래그 방지 기능을 쓰지 않는 쪽으로 결론 내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한사람 2012-05-24 19:35   URL

방금 제 글에 적용해봤는데 드래그 복사가 안되네요, 감사합니다^^
(좀 더 찾아 볼걸 ..이게 아주 복잡한 시스템인지 알았거든요 ㅠ)

전에 알라딘 측에서 맘만 먹으면 누구나 복사해 간다고 하셔서
그래도 도둑이 들어와도 방범창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에 의미와
발생률이 다르다면 대비할수 있는 것이 아니겠냐 답한 적 있습니다.

작정하고 덤벼드는 사람은 또 언제든 방법을 찾겠죠...
암튼, 좋은 방법을 알게 되었네요^^


원하면구하라 2012-05-24 21:05   수정 | 삭제 | URL
전에 네이버 블로그를 쓴 적이 있는데 복사드래그 금지가 된 상태임에도 제 글을 다 퍼가더군요. 알고 보니 아주 쉽고 간단해서 놀랐습니다.

네이버 메인에 글이 소개된 적도 몇 번 있는데 그때 방문자 수가 몇 만이었습니다. 따로 마련된 코너에 글을 올리는 게 아니라 제 블로그에 공개로 올린 것이었으니 원고료니 하는 걸 따질 생각은 안 들었습니다.

알라딘 뉴스레터를 본 적은 없는데 거기에 알라디너의 글 전문이 그대로 실렸는지 아니면 몇 문장 정도 보이고 링크 누르면 글 쓴 알라디너의 서재로 이동되는지, 그 부분도 살펴서 판단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stella09 2012-05-24 21:13   URL
그런가요? 그럼 뭔가가 달라지는 건가요?
어쨌든 저작권 침해 소지는 있는 거잖아요.

원하면구하라 2012-05-25 12:18   수정 | 삭제 | URL
저작권 침해 소지 따져보려면 리뷰 쓸 때 검색해서 넣는 이미지들부터 해서 끝도 없겠죠. 뉴스레터에 대한 건 정성진님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스텔라님 아는 분은 다르게 답하셨다니 잘 참고해서 결정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알라딘의 바닥이라는 닉은 스텔라님이 바닥이라는 뜻으로 쓴 게 아닙니다. 전에 스텔라님이 알라딘 사람들의 바닥을 본 것 같다는 말씀 하신 적 있죠.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가리키신 것 같아서 거기에 저도 해당되겠거니 하고 쓴 겁니다.

삭제하신 제 댓글에 "해명"이라는 단어는 없었습니다. 스텔라님이 뭘 원하시는 걸로 보이냐는 질문이 있어서 제가 보기엔 개인적인 요구를 하시는 중인데 그걸 모두를 위한 싸움처럼 포장하시니까 알라딘 측에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을 것 같다고 썼습니다.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하다고 말미에 적었는데 이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불쾌하시면 이것도 삭제하셔도 됩니다. 어쨌거나 잘 해결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stella09 2012-05-25 20:02   URL
그뜻이었군요. 잘 알겠습니다.
그렇게까지 자책하실 필요는 없으신 것 같은데...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제가 잘못한 건 인정했으니까
태도도 바꾸도록 노력해야겠죠.
지금으로선 뭘 결정하고 말고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일단 알라딘이 침묵하고 있고,
저의 생각도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죠.
이렇게 의견이 다양하니.
아무튼 고맙습니다.

??? 2012-05-25 20:32   수정 | 삭제 | URL
자책한 적은 없습니다.

소장 접수하면 원고료 받는다는 된장님 글을 보고 거기에 동의한 분도 계시니 그렇게 가실 건가 싶어 어떤 식으로 하시든 시끄럽지 않게 (아무쪼록 빠른 시일 내에) 결정나길 바란다는 거고요.

된장 2012-05-24 20:35   댓글달기 | URL
한사람 님께서 애써 '알라딘 약관'을 찾아보셨는데요,
저작권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하는 저작권법 조항과 심판'에다가 '재판소 판결'은
어떠한 포탈사이트에서 '약관'을 만들어 '회원 동의'를 받도록 하더라도,
이러한 약관이 '저작권법 조항과 어긋나'면 '원천 무효'로 판결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약관이 있거나 말거나 하나도 대수롭지 않아요.
한사람 님이 '알라딘 약관'을 옮겨 주셨지요?
이 약관을 보면,

"(3) 회원이 등록한 게시물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저작권자에게 귀속합니다." 하고 나와요.
'해당 저작권'이 저작권자(글을 쓴 사람)한테 있다고 밝혀요.
이렇게 안 밝히다가는 약관으로도 저작권법에 걸리거든요.
그런데 (3)항에서는 저작권이 저작권자한테 있다고 하면서도
(4)항에서는 저작권료(사용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는 항목을 넣었어요.

이 항목은, 알라딘서재 이용자인 우리들이 개인으로든 집단으로든
저작권심의위원회나 지방법원에 제소를 하거나 소송을 걸면
100퍼센트 '알라딘서재 이용자가 완승'을 거둡니다.

알라딘 회사 쪽에서는 이에 이의를 제기하며 대법원까지 갈 수 있지만,
대법원 판결까지 가더라도 알라딘 회사가 이길 수 없습니다.
이는 저작권법 판례 사례집에도 숱하게 나와요.

사례 보기를 하나 든다면,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이야기해 볼게요.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에는 '상금을 받은 작품'을 출판사에서
예전에 작가한테 인세를 '더 안 주고 발행'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작가들이 법원에 단체고소를 했어요.
대법원까지 갔는데, 1심과 2심을 거치며 '출판사가 지불할 벌금'이
많이 줄었지만, 1심도 3심도 3심도,
곧 대법원까지도 모두 출판사 패소로 결정했어요.

이상문학상을 주면서 '상금을 준 것'으로 인세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상금은 상금이고, 책을 따로 내놓으면, 책에는 이에 걸맞게
새롭게 인세를 주어야 한다고 판결했어요.

그러니까, 알라딘에서도
뉴스레터에서 '알라딘서재 글'을 실어서 보낸다 하면,
이 '뉴스레터'는 회사에서 '사외보'와 똑같기 때문에
반드시 '원고료(저작권 사용료)'를 지불해야 해요.

그동안 지불하지 않은 원고료는,
알라딘서재 이용자가 '집단 항의'를 하면
아주 당연하게도
'그동안 못 받은 몫'까지 모두 받아낼 뿐 아니라
알라딘 회사는 '이용자'한테 '벌금'을 내야 하기도 하고,
이것 말고도 '피해배상금'을 물어 주어야 해요.

(알라딘 회사 관계자가 이 댓글을 읽으신다면,
하루 빨리 회사 스스로 원고료 문제를 풀 길을 찾으시기를 빌어요.
안 그러면, 나중에 누군가 알라딘 회사를 정식으로 고소하거나 제소하면
알라딘 회사는 벌금과 피해배상금뿐 아니라
정신과 물질 모두 크게 피해를 입거든요.
원고료라 해 보았자 돈으로 치면 얼마 안 될 텐데,
이 돈 아끼거나 어물쩍 넘어가려 하다가
큰코를 다쳐요.
게다가, 저작권법에서는 '수십 년 지난 원고료도 소급해서 배상하도록'
규정으로 마련해 놓으니까, 예전에 나온 뉴스레터 문제도
앞으로도 '들불'처럼 살아숨쉬는 문제입니다.
부디, 알라딘 회사 스스로 먼저 슬기롭게 잘 나서 주기를 바랍니다.)

저는, 뉴스레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이런 데까지 들여다볼 겨를이 없어서
굳이 문제제기를 할 수 없었지만,
누군가 이 '알라딘 뉴스레터'에 '이의제기'와 '민사소송'을 한다면
제 이름을 같이 걸고 동참할 뜻이 있습니다.

덧붙여, '아예 전남 고흥 지방법원'에 소장을 넣을 수 있어요.
그러면, 알라딘 회사 관계자는 '전남 고흥 지방법원'으로 출두해서
검사한테서 심문을 받고
재판을 받아야 한답니다 ^^;;;

회사는 서울에 있을 텐데,
서울부터 전남 고흥까지 법원 출두를 하자면
얼마나 고단하겠어요... @.@


stella09 2012-05-24 21:06   URL
오, 된장님 정말 짱이십니다!!!
근데 제 글을 다시 읽고 보니 3개월 소급이란 말이 좀 우습고,
문제가 있어 보이네요. 왜 제가 저렇게 임의로 썼을까요?
이럴 경우 그동안 몰랐던 걸 알았을 때 소급 적용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한사람 2012-05-24 21:06   URL

헉... 그동안 못받은 원고료 이 부분에서 눈이 번쩍 ㅋㅋㅋㅋ

정말 소중한 정보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수동적인 고객이라 약관이 그러면 그냥 끽소리 못하는 줄 알았지 뭐여요 ㅠ

그렇긴 한데 뉴스레터 발행 건에 대해 문제를 느끼시는 분이 과연 얼마나 많을지가 의아하네요.(제가 느낀 서재 이용자 분들은 알라딘의 운영에 대해선 불만이 별로 없는 듯 하여 ㅠ)
된장님 글을 읽으니 얼마전에 네이트인가 개인정보 유출에 대해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떠오릅니다^^
변호사가 소송한다고 했을때 콧방귀끼다가
백만원 받게 된다니까 그 변호사 사무실 난리 났다는 ㅋ
(그러니까 이곳에서도 뉴스레터 발행 문제제기할 때는 웃기네, 하였지만
정말로 고소 들어가서 피해배상금이나 원고료 지급 결정이 났다면
그때도 웃기다 할수 있을까요? 몇 번 뉴스레터에 올라갔고 그리하여 금액은 얼마인지 열심히 계산하고 계시지 않을지 ㅠㅠ)

그러니 불미스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알라딘 운영측에서
지혜롭게 대응방안이 마련되어지길 바라옵니다^^

stella09 2012-05-24 21:05   댓글달기 | URL
아니 근데요, 문제를 느끼는 사람이 몇명인가가 그렇게 중요할까요?
중요한 건 알라딘이 이 법을 무시하거나 모르고 있었다는 게 더 중요한 거 아닌가요? 모르고 있었다는 것도 솔직히 말이 안 되지만.
저라면 된장님 따라 소장 제출할 것 같습니다.
그럼 된장님 말씀대로 서울에서 고흥까지 법원 출두! 생각만 해도.ㅋㅋㅋ

한사람 2012-05-24 21:11   URL

하하, 저도 고흥에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만약을 가정한)1번 동참이요^^
약관 찾은 거 잘했죠?(뭐, 시간 문제이긴 하지만 ㅋ, 칭찬을 안해주셔서 ㅠ)

stella09 2012-05-24 21:15   URL
참참참 잘했어요!!
이제 됐죠?ㅎㅎㅎ

정성진 2012-05-24 22:04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지나가다 보게 된 글인데요, 자초지종을 잘 파악하기는 힘드나, 주요지는 브러그 서비스를 제공한 알라딘과 이를 이용하는 브러거 간에 과연 원고료 지불 관계가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각자의 브러그가 있고 이 글들을 모아주는 허브가 알라딘마을이라는 공간, 그리고 이를 소식지 형태로 전달하는 서재뉴스레터 3가지 매체가 있는거겠죠. 각자의 블러그가 핵심적인 개인 공간이고, 나머지는 이를 링크로 알리고, 이 것의 운영주체도 블러그 서비스 제공자라고 하면 과연 원고료를 지불해야하는 당연성이 생기는지는 의문이 아닐까싶습니다.
그렇다고하면 미국의 아마존이나 야후의 블로그도 원고료를 지불하고 있을텐데, 그렇지는 않고있지요. (출판사와 저자 또는 신문사와 원고작성자 관계는 브러그와 전혀 다릅니다(청탁한 원고가 아닌 자발적인 독자코너의 경우에는 사전에 얘기했다면 주지만, 그렇지않다면 지불 의무는 없습니다. 기념품과같은 작은 감사의 사례는 원고료가 아니죠) 전자의 경우에는 대가 지불 계약관계가 있을 수 있지만 후자는 그렇다고 보기 어렵지않을까싶습니다. 공개 브러그 서비스에서 통상적으로 원고료 지불을 하고 있는 사례를 찾아보셔야할것 같습니다. )
브러그 사용자의 저작권과 더불어 서비스제공업자의 사용권, 사회구성원들의 통념상 원고료 개념이 발생하는지는 법적으로 따져볼만은 하나 제가 보기엔 원고료를 받기는 어려워보이고, 이용약관이 상위법에 저촉되지않는 한 약관 그대로 서비스제공자와 사용자사이의 합리적 관계가 지속되어오고 있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또, 정보통신법이나 저작권법이 이 두 당사자간에 어떤 경우에든지 반드시 글을 쓰고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야한다고 규정되어있지는 않으니까요. 또 얼마든지 이 브러그를 떠나서 쉽게 다른 서비스를 이용할수있었고, 또 다른 블러그를 이용하면 받을 수있었는데 알라딘의 기만에 의해서 그 기회를 박탈당한것도 아니니까요.
암튼 두어분께서 서로간의 지식에 국한해서 대화를 끌어가시는 것을 보고, 이건 아니다싶어 어줍잖게 적어봤습니다. 불편하신 글이라면 죄송합니다.

stella09 2012-05-24 22:19   URL
아닙니다. 모르는 것을 알려주셨으니 오히려 감사하죠.
하지만 이건 좀 더 논의해 봐야할 것 같습니다.
저도 법조계에서 일하는 분을 알고 있는데
원고료를 지불해야 한다고 하던데요?
뭐 꼭 그게 아니더라도, 알라딘이 원치 않는다면 뉴스 레터에
사람들의 글을 싣지 않을 수 있는 권리 정도는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글에도 썼지만 이메일을 열었을 때 제 글이 실린 것을 보고 얼마나 당황했는데요. 물론 그런 일이 앞으로 얼마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이런 문제는 제가 아니더라도 앞으로도 계속 논란의 소지는 있어 보입니다.



정성진님댓글을 보고 2012-05-25 06:54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님의 글 읽고, 된장님 글을 읽다가, 그렇다면 네이트의 그 게시판 글들 모두 원고료를 받을 수 있다면, 네이버 블로그, 카페의 글이 네이버 메인에 노출된다고 원고료 달라는 소송이 있으면 sk이든, 네이버든 한방에 훅 보낼수 있겠구나하면서 좋아라하면서도, 설마 sk나 네이버 같은 그 큰 회사들이 법도 모르고 그런 서비스를하까 싶었는데요...
역시 정성진님의 댓글을 보니, 그건 매우 어렵운 일이라는 생각이 저도 드네요....
알라딘은 무료로 서재 서비스를 제공하고, 알라딘 서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원고료때문이 아니라 이 서재가 다른 블로그 보다 좋아서, 책좋아하고 지적인 대화할수 있는 커뮤니티라서 글을 쓰고 다른 사람 글을 읽고 내글에 추천수 올라가는 걸 보고 뿌듯해하고, 뭐... 이런게 아니었나싶습니다. 약관은 읽어보지도 않았지만 약관에 돈 준다고 안되어있고, 계약과 조건 등을 고려치않고 글쓰면 무조건 돈 받을 수 있다는게 저작권법에 단순하게 명시되어있지도 않고, 서재활동하면 돈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번도 안해봤으니 법상식도 아닌것 같고....

이제와서 "원고료 받을 수 있는데 못 받았구나!"는 비약적인것 같구요. 만약 어떤 분에게 알라딘 서재에서 글을 쓰면 한달에 50만원 준다고 알라딘과 계약했는데, 애초 계약했던 범위 이상으로 그 글이 활용된다면 "50만원으론 안되니 돈을 더 내던지 아니면 계약 범위 밖에 쓰인 내 글을 내려알라고... 그건 소송을 하든지 할수 있겠지만 그런 계약도 없는 일반적인 서내 이용자가 그동안 서재에서 내가 쓴 글에 대한 원고료를 달라는 건 좀 아닌듯..
그리고 종종 신문 독자란에 투고하는데 돈을 주지는 않더라구요. 돈 주고 받는 원고청탁은 일종의 계약관계인 것 같은데, 자발성에 기초한 신문 투고란은 그렇지않은 듯 해요. 한겨레 왜냐면이라는 수준 높은 토론 글도 돈 주지않믄 걸로 알고 있구요.

제가 잠깐 낚인 오해의 발단은 된장님의 다음 댓글때문인것 같은데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비약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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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회원이 등록한 게시물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저작권자에게 귀속합니다." 하고 나와요.
'해당 저작권'이 저작권자(글을 쓴 사람)한테 있다고 밝혀요.
이렇게 안 밝히다가는 약관으로도 저작권법에 걸리거든요.
그런데 (3)항에서는 저작권이 저작권자한테 있다고 하면서도
(4)항에서는 저작권료(사용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는 항목을 넣었어요.

이 항목은, 알라딘서재 이용자인 우리들이 개인으로든 집단으로든
저작권심의위원회나 지방법원에 제소를 하거나 소송을 걸면
100퍼센트 '알라딘서재 이용자가 완승'을 거둡니다.
-------------------------------------------------------------------------------

아... 그리고 서재 뉴스레터에 안 실리고 싶으면 글 쓸때 하단에 노출 안하는 옵션이 있습니다. 이런 기능에 대해서 알라딘이 해줘야한다고 말씀하시는거면... 이미 있었어요.... 저는 한번도 체크해본적은 없지만...

된장 2012-05-25 15:05   댓글달기 | URL
알라딘이라는 서비스를 본다면,
알라딘서재는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알라딘 사용자'로서 서재인이 되면,
'공간을 무료로 받아서 쓰는' 일이 아니라,
'알라딘 광고와 트래픽 발생'을 해 주면서
알라딘 기업에 간접광고와 회사이익창출을 해 주어요.

어떠한 포털사이트도 개개인한테 공짜로 자리를 주지 않아요.
모두 간접광고와 여러모로 포털 회사 이익에 이바지를 해요.

'알라딘 뉴스레터'는
제가 보기로는 '2중으로 알라딘 이익'을 '대가를 안 치르고'
쓰는 셈이 아닌가 싶어요.

'뉴스레터'는 영어 이름을 붙였습니다만,
틀림없이 '사외보' 성격이거든요.
뉴스레터는 사외보와 마찬가지이고,
여기에 알라딘 광고 구실까지 한다면,
이러한 인터넷'매체'를 발행해서 회원한테 보낸다면,
이에 걸맞게 '저작권 사용료'를 물어야 해요.
(왜냐하면, 뉴스레터는 '책 파는 도움 구실'을 하니,
이렇게 뉴스레터를 발행하면서 이에 걸맞게
뉴스레터 저작권자 사용료를 안 주는 일은
참말 앞뒤 안 맞는 엉뚱한 노릇입니다)

다만, 한국은 아직 저작권 문화가 제대로 자리잡히지 않았으니
너무 엉터리로 이루어지는 일이 많아요.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어느 책에 실린 글월 한 줄을 읽'어도
이렇게 읽은 저작권료를 치르도록 법으로 규정합니다.
예전에는 라디오 방송에서 책 구절을 '저작권료' 안 치르고 읽었지만,
이제는, 어느 책에서 인용해서 읽더라도
반드시 저작권료를 치러야 하고,
저작권료를 안 치르고 방송에서 책 본문을 한 줄이라도 읽거나,
또 사진을 쓴다면,
이를 법으로 제소하면 모두 범법이 되거든요.

..

그런데, 저는 이런 댓글을,
우리가 '알라딘 회사한테서 돈을 받아내자'는 뜻으로 쓰지 않았어요.

알라딘 회사가 사고파는 주된 물품이 '책'인 만큼,
책을 제대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책을 좋아하는 알라딘 이용자인 우리들이
더 즐겁고 더 오붓하게
알라딘 서재마을을 누릴 수 있는 길을
슬기롭게 잘 연다면 참말 좋겠다고 생각해요.

2중이익동감 2012-05-25 17:22   수정 | 삭제 | URL
몇달전에 서재뉴슨지 그냥뉴슨지에 제 리뷰가 실렸어요.
그런데 그 리뷰보고 책사셨는지 암튼 쌩쓰 두번 받았나??
저야 웬 떡이냐 했는데 어쨌든 알라딘은 제 리뷰를 미끼로 책장사한건 맞죠.
원고료까지 무는건 좀 그렇고 미리 고지는 해줘야 한다고 보네요.
저도 이익은 볼수 있으니 꼭 나쁜 건 아니잖아요ㅎㅎ

비약과비논리 2012-05-25 18:55   수정 | 삭제 | URL
이미 몇몇분들이 상식적수준의 저작권에 대한 오해를 바로 잡는 얘기를 하셨는데요, stella09님이 된장님 말씀을 맞다고 응수를 하시니, 혹시 나중에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오해할것 같아 저도 몇마디 거들고자합니다. (개인적으로 알라딘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나 이번 건은 너무 논리 비약과 법상식에 벗어난 얘기로 흘러가고 있어서 끼어들 수 밖에 없는데, 알라딘도 꽤 큰 기업인걸로 알고 있는데, 이런 기업과 제대로 한방 붙어보시려면 최소한의 법과 사실확인, 그리고 논리를 갖추면 좋겠네요)

저작권(또는 저작권 침해)과 사용료를 혼동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작권이 있다고 사용료를 무조건 받을 수 있지는 않습니다.
알라딘이 약관에 저작권을 블로거에게 있다고 명시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용료를 지불한다고하지않았고, 이에 대해 동의하고 자발적으로 글을 써왔다면, 이에 대해 나중에서야 "사용료를 내라"고 하긴 어렵습니다.
뉴스레터의 경우에, 같은 서비스제공 주체가 운영하고 이에 대한 독자도 알라딘 회원이고, 이 표현방식이 아웃링크여서, 링크를 타고 글 작성자의 블로그 글로 온다면 저작권 침해가 아니고, 이 뉴스레터의 범위가 알라딘 약관에서 규정하는 범위 내라면 사용료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와 이용자 사이의 약관이 상위법을 위반하지않는 한, 일종의 사적 계약으로 유효합니다. 저작권법이 모든 조건에 대해 사용료를 줘야한다고 규정한 법이 아닙니다. 따라서 알라딘의 약관이 상위법을 위반했다고 단정 짓기는 어려울 것 같고(대부분 정부에서 권고하는 "표준약관"에 기초하고있죠), 그러기에 사용료를 받아내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일 것 같습니다.

"한국은..."이라시며 한국이 저작권법 수준이 낮다고 보시는데 그렇지않습니다. 2009년에 개정된 저작권법은 미국 보다 더 한 측면이 있습니다. 5살 아동의 가수 노래를 따라하는 동영상에 대해서 저작권을 들이밀거나 개인블로거의 블로그에 노랫말을 못 올리게 하는 등의 상식 이하의 법이 있는 현실입니다.

또, 미국에서도 무료 블로그 서비스는 많은데, 광고 게재 기능을 이용하는 블로거와 이 수익을 쉐어하는 것 외에 서비스 제공자가 원고료를 준다는 것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워드프레스, 블로거닷컴, 야후블로그 등 블로그서비스 제공사들은 웹사이트 초기화면은 물론 이메일마케팅을 하고 있지만 이에 대해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된장님에 말씀에 따르면 이들 업체들이 공짜로 블로그 용량을 주지만 모두 상업적인 이익을 가져가므로 블로거 글을 게시하는데 사용료를 지불해야한다고 주장하시지만, 약관상 그렇지아니하다는 걸 동의하고도 자발적으로 계속 이용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지금 프로필이미지에 쓰인 책표지이미지와 블로그 상단에 디자인한 책표지 수십개는 저작권자의 동의 또는 사용료를 내고 쓰시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stella09 2012-05-25 20:05   URL
비로그인으로 들어오셔서 정확히 어느 분이 쓰신 건지는 모르겠는데요,
그래요. 알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근데 약간 흥분해 계신 것 같습니다.
그냥 본인이 생각하는 바를 알려만 주시면 되는 거예요. 뉴스 레터에 대해선 여러 가지 생각하는 바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본인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흥분할 사안이 아니라는 거죠.
님이 말씀 하신바가 맞을 수 있어요.
하지만 뉴스레터를 불편해 하는 사람이 분명 있거든요. 뭔가 부당한 것 같은 측면이 있을 수 있구요.
법이 그렇고, 알라딘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크다고 해서 겁먹고 아무 문제도 제기하면 안 되는 건가요? 적어도 문제제기는 할 수 있는 거잖아요.
힘 없는 자는 늘 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고, 아무 말도 못하고 있어야 하는 건가요? 그리고 우리나라 법체계가 힘있는 자에게 유리하고 약한 자에게 약한 거 아시잖아요.
난 오히려 알라딘이 님 말씀대로 크다면 사람들이 뉴스레터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우리가 법 가지고 얘기하면 그쪽도 그럼 우리도 법으로 얘기하지. 뭐 그런 생각 할 수도 있겠네요.
그래도 저는 이 문제를 제기하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생각과 의견이 있을 거라곤 생각 못했거든요.
덕분에 제가 몰랐던 것을 알게되서 오히려 공부가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좀 더 얘기를 들어보기로 합시다.



일반고객입장 2012-05-26 00:15   수정 | 삭제 | URL
저도 한사람님처럼 약관에 동의했으면 아무 말 못하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된장님 정보 유용했어요. 자주 들어와보게 되네요. 저도 된장님이 소송걸어서 원고료 받아내자고 댓글썼다고 보지 않으니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오히려 이런 문제 제기하는 이쪽이 약자인듯하네요.(죄송) 약자가 최후에 찾는 것이 법인데 사람들은 알려줘도 고마와하기는 커녕 속물취급을 하니. 익명으로 알려드리자면 이곳에서 논쟁에 있어 전통적 강자는 추천과 여론을 몰고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누구말처럼 파도가 밀려오죠. 자세히 보시면 언제나 같은 분들 ㅋ 떠들고 비웃고 그러는 자신들이 속 시원하다는 수준이니 아시겠지만 무시하는 게 편해요. 논리적인 척 합리적인 척 하지만 결국 보셨듯이 바닥을 드러내요. 여기 있으면 그들 중 제 이웃들도 있는데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 나 너 싫어, 그만 재잘거려, 시끄러워, 재수없어. 저는 그렇게 들었습니다. 천자문도 안떼놓고 맹자공자 하는 격이죠. 기본이 안되었어요. 기본이 !!!(평소엔 아무 생각없다가 그들만의 히히낙낙을 보면 진짜 씁쓸해요. 참 알라딘 공식알바생들도 아니고 웃겨서. 모르죠 진짜 알라딘 직원이 있는지도)

된장님, 한사람님, 그리고 stella09님이 밀리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아는 사람들은 다 압니다. 세분의 용기와 의도를. 좀 계셨다면 저 같아도 저런 글 쓰기 쉽지 않아요. 포기하죠. 그런면에서 세분에게 숨어서 인사드리는 심정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한쪽으로 분위기 기우는거 원치 않거든요. 힘내시고 좋은 주말 되시길^^(부디 나서지 않는 사람들에게 섭섭한 마음 갖지 마실것도 귀찮고 지겨워서 그래요)

서재에만노출 2012-05-25 17:09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의 서재&즐겨찾기 브리핑}에만 노출하기를 선택하면 알라딘 서재에도 노출이 안되는 것이죠? 저는 맨 첨 분이 서재에는 노출하되 뉴스레터로는 발송되지 않기를 선택하게 하자는 걸로 이해했는데요. 아직 활발히 시작한지 얼마안되서 제 서재는 즐겨찾기 해주신 분이 열명도 안되는데 두명빼고 비공개라 누가 나를 등록했는지도 몰라요. 그럼 그 두명만 보라고 글쓰라는 건데 그러고 싶지는 않아욧 ㅋㅋ 그냥 알라딘 서재에만 노출되도록 선택기능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해요. 즐겨찾기 브리핑에만 노출이 의미있으려면 나를 누가 등록했는지 알아야 하는거 아닌가요? 다른 서점은 이웃등록한 사람은 자동으로 공개되던데 여긴 누가 나를 친구했는지 모르잖아요. {나의 서재&즐겨찾기 브리핑}기능은 아주 이웃이 많은 분들에게나 의미있는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는 일단 서재에 글을 올리고 알려야 이웃도 늘죠. (하지만 뉴스레터는 저도 사양. 올라갈 일도 없지만. 왜냐하면 저는 다른 포탈이 싫어서 떠나오다시피 여기서재를 시작하는건데 혹시라도 모든 회원에게 발송되어 제가 노출되면 따라올수 있잖아요)글을 공개하는 범위가 비공개, 나의 서재, 이웃, 알라딘 서재, 뉴스레터 이렇게 나눠진다면 현재 알라딘 서재에만 노출하고 레터부터 아닌 기능은 없는거니까 그 부분을 더 디테일하게 만들면 될 것 같은데.... 토론제기 하신내용과는 다르지만 저같이 생각하는 분도 있을거 같아서......

궁금 2012-05-25 17:51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참에 그럼 자기가 침해한 저작권에 대해서도 다 따져보죠. 내 권리를 지키는 건 당연히 중요하지만 남의 권리를 침해하면서 내 권리만 내세우면 공감 사기 힘들잖아요. 우리가 침해하는 저작권은 어떤 게 있을까요? 미리 알아서 조심하면 나중에 이렇게 문제되는 일 방지할 수 있을테니까요.

서재 메인 이미지는 그렇다 치고 리뷰에 자신의 소유가 아닌 이미지 첨부하는 건 상업적으로 쓴 게 아니니 괜찮을까요? 만약 그게 원고료 등 대가를 받고 쓴 글이거나 책 홍보를 목적으로 쓴 글이거나 상금이 걸린 대회에 참가하는 글이라면... 그래서 결국 이 이미지를 넣은 글로 금전적 이득을 취했다면 이건 상업적 사용에 해당하는 건가요?

그리고 2012-05-25 17:52   수정 | 삭제 | URL
퍼올린 음악 폴더는 일단 삭제하시거나 비공개로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거기 노래 가사도 전체가 보이던데 그것도 저작권 침해에 해당된다더군요.
음악 올리는 거야 당연히 걸리고요. 링크스크랩이 아니라 내용이 다 보이는 스크랩이면 이것도 문제가 된다고 합니다. 자료실 폴더에 올리신 신문기사도 링크 거신 게 아니라 전문 다 올리셨던데 저작권 침해라고 하더군요.
 

제가 좀 미숙하긴 했습니다. 그 글은 확실히 망설이고 또 망설이다 올린 글이긴 했지만 부끄럽기 짝이 없는 글입니다. 뭐 그런 거죠. 뭔가 답답하던 차에 어떤 표적에게 돌을 던지고 어떻게 될지 몰라 막 도망치는 모양새라고나 할까? 이왕 다시 시작한 것이라면 좀 더 성숙하고 멋있게 했어야 하는 건데 그렇게 쓰고도 뭔가 겸연쩍어 일부러 그것을 만회해 보고자 허세를 부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내가 1인 시위를 시작할 생각을 했던 건, 지난 날 제가 알라딘 서재질 10년을 회고하면서 알라디너들이 보여줬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런 글을 올리자 그분들이 기다리기라도 한듯 그동안 감춰놓았던 욕구들을 어떤 식으로든 표현하고 계셨다는 겁니다. 사실 저도 그랬거든요. 내가 아닌 누군가가 저와 비슷한 글을 썼다면 저도 기다렸다는 듯이 그래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러면서 연대를 하든 긍정의 제스추어를 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뭔가? 사람들 저마다 뭔가를 수면 밑으로 내려 앉힌 채 그들도 나처럼 소소한 신변잡기나 올리고 있었단 말 아닌가? 그도 그럴 것이 공적인 문젯 글을 올리면 또 반박의 글, 논평 글을 올릴테고 그러면 또 한번 태풍이 휩쓸고 지나갈 거니까 그게 감당이 안되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리뷰와 함께 소소한 글이나 올리는 것이 아닌가? 전 그것이 왠지 알라딘이 건강한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내 마음도 그러면 남의 마음도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제부터 전 김두식 교수의 <욕망해도 괜찮아>란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 책 프롤로그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욕망이 건강한 출구를 찾지 못할 때 우리는 끊임없이 남을 감시하고 비난하게 됩니다. 엿보고 돌을 던지는 왜곡된 방법으로라도 은밀하게 욕망을 배출하지 않고는 도저히 살아 남을 수 없는 게 인간인 까닭입니다. 마음 한편으로는 일탈을 꿈꾸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혹시 남몰래 행복한 놈이 있는지 감시하는 사냥꾼의 매서운 눈길을 날리고, 또다른 한편으로는 한방에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몸을 떠는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그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의 자화상 입니다. (5p)       

 

고백하컨대, 저 글을 읽는 순간 저는 딱 저런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게 또한 우리 알라디너의 현재 모습은 아니었을까요? 미안합니다. 서재질을 난생 처음하시는 분이나 한결 같이 좋은 마음으로 서재질을 하는 분까지 싸잡는 것 같아 조심스럽지만, 어느 정도 공감하는 말 아닌가요?

 

...... 욕망을 통제하는 사람만이 성공적인 학교, 직장, 가정, 종교 생활을 영위하는 게 우리 사회입니다. 성공의 사다리를 오른다는 것은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깊숙한 방에 자신의 욕망을 감추어두고 반복하여 좌물쇠를 채워나가는 과정입니다. 하도 많은 자물쇠를 채우다보니 어느 순간 그 방 존재 자체를 아예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자물쇠로 채워놓은 욕망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어서 언젠가는 반드시 치명적인 역습에 나섭니다. ...그런 치명적 결말을 피하기 위해 저는 오래 채워놓았던 제 마음의 자물쇠를 '살아 있는 이야기' 혹은 '고백'이라는 열쇠로 열어보고 싶습니다. 살아 있는 이야기에는 힘이 있습니다. 당장 뚜렷한 해법은 없어도 살아 있는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이야기를 나누는 단순한 행위 자체로 치유와 회복이 시작됩니다.(4~5p)

 

너무 공감이 가는 말 아닙니까? 그런데 바로 이것을 알라딘 서재에서 시도해 보려다가 오히려 더 큰 상처를 받고 알라딘을 떠나거나 그야말로 자기 좋은 얘기만 하는 처지가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요? 이 말에 얼마나 공감하실런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랬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마음을 닫아 놓은 채 자기만의 방에서 신음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혼자 소꿉놀이를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블로그질을 오래하면 이래야 하는 걸까요?

 

제가 1인 시위를 한다고 했을 때 지지의 댓글이든, 반대의 댓글이는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 댓글창을 닫아 놓겠다고 했더니 알라디너 한 분이 이왕 닫아 놓을 거라면 먼댓글창도 닫아 놓으라고 일러주셨습니다. 자신도 예전에 이 방법을 써봤는데 먼댓글창 닫아 놓은 것을 몰라 어떤 분이 먼댓글로 글을 쓰셨는데 기분이 안 좋았다고 하시면서. 저도 그 부분은 생각 못했던 건데 그분 말대로 먼댓글창도 닫아 놓았습니다. 우리가 왜 이래야 하는 걸까요? 그분은 그런 안 좋은 경험이 있어서 그 이후론 절대로 시위성 글은 쓰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제가 이전의 글에서 우리나라는 토론문화가 발달이 안 되어 있어서 앉은 자리에서 끝장을 봐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고 썼습니다. 이제 우리는 누가 문제제기를 하면 한쪽에선 폭풍을 만들어내고, 또 한쪽에선 그런 일을 하도 많이 봐 또 저러는구나고 관심도 갖지 않게 되었습니다. 왜 이래야 하는 걸까요? 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후자쪽이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자쪽일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살다보니 제가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있고, 또 하다보면 분명 화살을 맞을 텐데 최후의 방어책으로 댓글창과 먼댓글창을 닫아 놓고, 뭔 말인지도 모를 불만의 글을 잔뜩 내질러놓고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미성숙의 소치이기도 하지만, 나름의 두려움도 없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토론을 하지 못하고 논쟁을 하다가 끝내는 것은 데모 문화의 영향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지금은 조금 나은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데모는 아직도 격렬합니다. 최루탄대신 물폭탄, 혈서는 안 쓰는 것 같긴 하지만 아직도 삭발을 감행하기도 하고, 필요하면 단식 투쟁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빠른 시간안에 뭔가의 성과를 봐야하기 때문에 논쟁은 있어도 진정한 토론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와 같은 모양새가 알라디너들끼리도 의견충돌이 있을 때 여지없이 나타난다는 거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질문하지 않고 자기식의 해석과 결론을 여과없이 드러냅니다. 

 

오늘 저의 어머니는 지금부터 가을까지 먹을 김치를 담그셨습니다. 어머니의 김치 사랑은 좀 유별나서 직접 당신의 손으로 담근 김치가 아니면 안 드십니다. 고추가루를 쓰긴 하지만 전날 경동시장에 나가 빨간고추를 사다가 물에 불려 믹서기에 미리 갈아놓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엄마가 김치를 담그시는 날엔 저는 꼼짝없이 붙들려 입에 혀처럼 비서 노릇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엄마가 믹서기를 돌리고 있는데 말린 고추가 자꾸 물을 기어먹는 바람에 제가 물 심부름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엄마가 물을 찾으시길래 당연 물을 갖다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엄마가 먼저 썼던 물그릇에 물을 담아오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 그릇엔 물이 담겨있던 것이 아니라 북어대가리와 다시마를 넣고 끓인 육수가 바닥에 조금 남아 있었습니다. 싱크대엔 끓였다 식힌 물이 있었고, 옆의 큰 냄비엔 육수가 있었습니다. 원래는 바로 그 육수를 담아가지고 가져 갔어야 했는데, 물을 가지고 오라고 했으니 물을 가져갈 밖에요. 그런데 나중에 내가 물을 가져 온 것을 아시고 노발대발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너는 왜 물어 보지도 못하느냐고 되레 구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저 물을 가져오라고 해서 물을 가져갔을 뿐인데 과연 이것이 저의 잘못이기만 할까요? 물론 묻지 않은 내가 잘못이지만 당신께서도 애초에 물이라고 하지 말고 육수를 가져 오라고 해야 맞는 거 아닌가요? 하긴, 우리나라 사람은 질문을 잘 안하는 민족이긴 하죠.ㅠ

 

제가 이 말을 하는 것은 바로 말을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차이를 말하려 하는 것 입니다. 물론 말을 하는 사람은 정확하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듣는 사람도 자신이 올바로 알아 들었나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확인의 절차없이 자기가 받아 들이고 싶은 것만을 받아 들이고, 자기식의 해석과 판단을 하고, 자기식의 논평을 바로바로 쏟아 낸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 알라딘에서도 예외없이 행해지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내가 이 말을 할 때 어떤 사람한테 먹잇감이 될지 몰라 하고 싶은 말을 안하게 된다면 김두식 교수가 말했던 것처럼 치명적인 역습을 하기도 하고, 치명적인 결말을 피하기 위해 자물쇠로 잠가 놓거나 일탈을 꿈꾸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저는 그 글을 통해 일탈을 꿈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참고 있는 것도 말이 안되고, 터뜨리는 것도 좀 그렇긴 한데 지금까지 저의 느낌은 전자 보다는 후자가 훨씬 나았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그것이 어설펐을지라도. 길 가다 잘못 들었으면 바로 찾아 가면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언제까지나 댓글창을 닫고 있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때가 되면 댓글창을 다시 열고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 개인적으론 지금이 훨씬 좋긴 합니다. 저는 어제 또 고마운 이웃님들로부터 방명록 인사를 받았는데요,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빌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방명록만 열려 있으니 세상에 그렇게 편할 수가 없습니다. 댓글창을 열어 놓으면 좋든 싫든 답글을 달아야 하니 좀 피곤할 것 같긴 합니다. 이르면 내일이나 늦어도 모레쯤 댓글창을 열고 토론에 나서 볼까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알라딘에 시급히 해결해 주었으면 하는 사안이 생겼거든요. 여러분의 의견도 듣고 싶고. 

자, 오늘은 이 정도로만 하겠습니다. 얘기가 너무 길었네요. 양해 바랍니다.   



 
 
 

   

글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한 가지 양해를 구해야할 것 같다. 나는 오늘 한꺼번에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늦은 밤이고, 그동안 나의 머리를 헤집은 것을 다 풀어내봤자 이 글을 읽을 알라디너가 다 이해도 못할 것이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짜증도 내고, 분노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갑자기 예정에 없던 지인을 만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당연 나의 알라딘 내에서의 1인 시위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그 지인은 내 얘기를 들으면서 이런 말을 했다. 우리나라는 토론문화가 아직 많이 발달되지 않아 한번 시작하면 앉은 자리에서 끝장을 봐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언성을 높이고, 얼굴도 붉히지만 결론없이 끝난다고. 그런데 비해 프랑스 같은 나라는 토론을 해도 서로 웃어가면서 여유롭게 몇날 며칠을 한다고 한다. 심지어는 몇달씩 가기도 하는데 그래도 한결 같은 자세를 유지하며 그래서 그들의 언어 구사력은 상당히 발달되어 있으며 우아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겁부터 먹지 말고 찬찬히 잘 풀어 보라고 격려를 해줬다. 그 지인이 고마웠다. 그러니 오늘 내가 한꺼번에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양해해 주기 바란다. 

 

먼저 나는 알라디너분들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글을 올려 놓고 나는 지난 며칠 동안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를 틈나는대로 들어와 지켜보았다. 사실 알라딘 내에서 1인 시위는 처음 하는 일이라 나로서도 겁나는 일이었는데 생각 보다 우려할 정도는 아니었고, 섣부른 판단 일지는 모르지만 나름 이 방법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내가 1인 시위를 결행하게 된 이유를 이미 밝히긴 했다. 나는 그글을 쓰기 전에 무척이나 많이도 망설였다. 그래서 알라딘 사이트와 내 서재를 하릴없이 드나들면서 뭔가 가슴이 답답하고 체증이 꽉 막힌 느낌이었다.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는 거다. 겨우 용기를 내서 알라딘 서재질 10년 생각을 털어 놓았는데 이러저러한 일들로 묻혀지게 되었다는 게 그렇게 만든 것 같다. 나의 성격은 대체로 소심한 편인데 한편 마음 먹은 건 또 해봐야 직성이 풀리기도 한다. 가슴 속에서 뭔가를 하라고 자꾸 떠미는 것 같았다. 해 봐. 너 지난 번에 하다가 말았잖아. 가슴이 답답하잖아. 괜히 서성이지 말고 일단 해 보란 말야. 해 보지 않고 어떻게 알아? 자꾸 이런 말이 들리는 거다. 대신 방법을 달리 해 보는 것이다. 그게 1인 시위였다. 

 

광화문이나 여의도에 가면 1인 시위하는 사람 보면 좀 안쓰러웠다. 얼마나 외로울까? 누가 알아주는 이도 없는데. 그걸 내가 해 보는 거다. 이유는 대략 두 가지다. 하나는 알라딘을 향한 것이었고, 그에 따른 알라딘 내에서 파장을 최소화 시켜보자는 것이었다.

 

솔직히 인정할 건 인정하자. 여태까지 어떤 알라디너가 문제제기를 하면 그것을 바로 맞받아쳐서 자신의 생각만 서재에 얘기 할 줄 알았지, 그 사람이 왜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는지, 그글을 읽었을 때 어떤 기분이 들건지, 어떤 심정이 될지에 대해서 고려해 본적이 있었는가? 결국 어떠한 성과도 없이 감정만 상하고 끝나버린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 양태는 과거나 현재나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1인 시위가 나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던 건, 사전에 미리 내 뜻을 밝히기도 했지만 나 자신을 최대한 낮췄더니 애초에 우려한 사태는 발생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할 말이 있다면 먼댓글이나 개인 서재에 페이퍼 글로 하지 말고 방명록에 남겨달라고도 했다. 그것도 주효했던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 몇분이 방명록에 글을 남겨 주셨다.

 

감사했다. 무엇이 감사했냐구? 그렇게 써 주셔서. 참고로 그분들은 적어도 한 분을 제외하고, 내 의견에 반대의 뜻을 전해 주셨다. 그래도 나는 그분들께 충분히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건 그분들은 반대의 뜻을 전달하는데 있어 언어 선택에 신중하셨다는 것이다. 물론 섭섭하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그러나 그분들은 내 마음이 다칠까봐 언어를 최대한 완곡하게 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시고 계셨다. 그러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러고 나니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이 잘못만 지적하면 감정이 상하고 오히려 반항심이 일어나는 법이다. 하지만 그분들은 반대는 하셨지만 나의 생각을 비난하거나 비판하지 않고 존중해 주셨다. 난 그것이 또한 감사했다.

그동안 내가 비난 받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내가 얼마나 경직되 있었는지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원하는 건 그런 것이다. 설령 남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졌을지라도 그것 그대로를 인정해 주는 것. 이해 같은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실제로 어느 님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그분에겐 죄송하지만 나는 그분을 이해시킬 자신도 생각도 없다. 어떻게 살면서 모든 사람들을 다 이해시키고, 다 이해 받기를 바라면서 살겠는가. 단지 있는 그대로 다른 생각이 있을 수 있다는 것만 인정 받는 것으로도 난 만족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놀라운 건 그분의 그런 말씀 속에서도 내 문제가 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충분히 내뜻을 전달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감정에 치우쳐 한꺼번에 너무 많은 말을 내뱉았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사람들은 사람은 상대가 무슨 말을 하던지 간에 자기가 받아 들이고 싶어하는 것만을 받아 들이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그것 역시 뭐라고 할 수 없는 것이 그에 대한 책임도 나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렇게 반응하고 말씀하시는 건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그점에 있어서는 나의 잘못이 컸음을 인정한다. 내가 경솔했다. 정식으로 사과한다. 그리고 앞으로는 한큐에 하나씩만 다시 짚고 넘어가 볼 생각이다. 그것이 얼마가 걸리던간에.

 

그런데 유감이긴 하다. 저 추천이 200개가 넘은 나 읽어보라고 쓴 알라디너. 그는 내가 안 읽었을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며칠동안 내가 일체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니. 하지만 난 그가 그글을 쓴 당일날부터 봤다. 물론 나도 사람이다. 욱하는 성질있다. 반박의 글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안 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반박의 글을 쓰면 예전의 알라딘 내에서의 소요사태를 또 만들어 내는 꼴 밖엔 안될 것이니까. 단지 그 알라디너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아무리 남의 생각이 본인과 다르다고 할지라도 그렇게 과격한 표현은 삼가해 줬으면 한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라. 사람의 생각은 다 다를 수 있는데 누가 그런 식의 글을 그대에게 보냈다면 그대는 좋은가? 이건 거의 인신공격에 가깝다. 사람 마음은 똑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개가 넘는 추천을 받았다면 이에 대한 해석도 여러가지 있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말 역시 별로 필요한 것 같지 않아 언급을 회피하겠다.

 

물론 보다시피 나는 그에 비하면 형편없이 저조한 추천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난 이것 마저도 감사한다. 솔직히 하나도 못 받을 줄 알았다. 난 애초에 그분들이 내 생각을 동조해서 추천을 눌러주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거진 대부분은 공감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떤 식으로든 생각해 볼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추천을 눌렀을 거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나는 즐찾이 둘이나 늘었다. 오히려 줄지만 않으면 다행이일텐데 늘었으니 그도 감사할 일이다. 이래저래 1인 시위 방법은 좀 더 두고 볼 일이지만 나쁘지 않아 보인다.

 

앞서 말한 그 알라디너는 글 가운데 나의 저 근조리본이 처음엔 5.18을 기념해서 단 것인 줄 알았단다. 나도 그글을 읽고 팡 터졌다. 그런데 그 정도 가지고야. 솔직히 저 근조리본 생각보다 예쁘지 않나? 토요일날 모임에 나갔더니 아는 여자 후배가 저 비슷한 핀을 머리에 꽂고 있었는데 예뻤다. 또 어찌보면 나비넥타이 같다. 왜 나비넥타이는 여자는 잘 안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해 봤다.ㅋ 웃자고 한 소리다. 썰렁하면 할 수 없고. 아, 혹시 앞으로 다가 올 6월6일날도 내 서재에서 저것을 보게 되거든 순국하신 분들을 위로한다고 착각하지 마시라!

 

밤이 늦었다. 그동안은 신경줄이 팽팽해서 잠을 잘 못잤다. 본의 아니게 누를 끼친 죄인이지만, 오늘 밤은 좀 편히 잤으면 하는데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로부터 약 한 달...

 

그로부터 약 한 달이 지나갔다. 그때 나는 알라딘의 10년 고객으로써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서재질을 해왔던 알라디너로서 느꼈던 바들을 썼으며, 더불어 알라딘의 이달의 당선작에 따른 적립금 정책에 대해 재고를 촉구하는 의미에서 나름 강도 높은 비판의 글을 게재했다(http://blog.aladin.co.kr/stella09/5568500). 그런지 한 달이 넘어갔지만 아직까지도 알라딘은 일체 묵묵부답으로 자신들의 일만 충실히 잘하고 있(는가 보)다. 물론 그 한번으로 알라딘이 눈 하나 깜짝할 거라고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 역시 그것을 알기에 한번으로 넘어 가려고 했다. 

 

사실 그글을 썼을 때는 나름 심각했다. 시쳇말로 멘탈붕괴라고 해야 할까? 매 토요일이면 발행하는 자사의 전자 신문에 거의 매주 나의 글을 노출시켜 주고 정작 이달의 당선작에선 제외시켰다. 그 노출된 글들은 대체로 추천도 높았고, 내가 생각해도 못 쓰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국 그렇게 되고 보니 순간 '아니, 도대체 이 사람네들이 남의 글을 가지고 무슨 짓을 한 거야?' 까닭모를 화가 치밀었다. 물론 알라딘으로선, 신문에 실렸다고 그것이 꼭 이달의 당선작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신문에 실릴 정도라면 그 사람이 그 글을 얼마나 정성을 다해 썼겠는지를. 그리고 그글이 알라딘에 좋은 영향력을 미친다고 판단하니까 올린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어느 누구도 내 글 신문에 실어 달라고 바란 적은 없다. 문제는 그거다. 알라딘은 그렇게 알라디너의 글을 자사의 신문에 실어주는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알라 뭐 그런 심보가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알라딘 서재에 올라 온 모든 글은 알라딘이 관리한다는 규정은 있을 법하다(하지만 이것도 확실하지는 않다. 그냥 가정할 뿐이다). 하지만 그 글도 알고보면 알라디너의 지적자산이다. 그것을 공으로 게재한다는 것에 대한 일말의 책임의식 같은 것은 없나? <오마이뉴스> 같은 경우 시민 기자단이 발품을 팔아 글을 올리면 그것에 대해 일정 부분 원고료를 지급한다고 들었다. 적어도 알라딘이 '오마이뉴스' 같지는 않더라도 그에 준하는 예를 알라디너들에게 갖출 의향이 없는가? 이쯤되면 묻고 싶다.    

 

하지만 내가 말하려 하는 것은 자사의 신문에 왜 알라디너의 글을 무단게재 했느냐가 아니다(지금 내가 한 달 전에 제기한 문제가 해결이 안된 마당에 그것까지 끄집어 낸다는 것은 다소 과한 느낌이 있다. 하지만 이것도 언젠가는 꼭 짚고 넘어갈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한 달 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당선작에 관한 적립금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그동안 나를 둘러 싼 일들에 관하여

 

그 일은 나로선 적지않은 용기를 필요로 했다. 말했지만 그동안은 간간이 불만을 토로하는 정도로만 했을 뿐이지 그렇게 정면으로 문제제기를 한적은 없었다. 막상 그렇게 하고 나오니 정말 반응도 여러 가지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대체로 공감해주고 동조해주는 고마운 이웃님들이 계셨지만, 게중엔 생판 알지도 못한 사람이 그동안 간간이 알라딘이 베풀어 준 은혜를 누렸던 것으로 아는데 이런 페이퍼가 웬말이냐는 식의 댓글을 받기도 했다. 그뿐인가? 그에 대한 후폭풍이 만만치가 않았다. 그중 누구라고는 말하지 않겠지만, 그 사람은 나름 합리주의자를 자처하며 내 편도 알라딘 편도 아닌 자신만의 독특한 논평(!)을 자신의 서재에 올리기도 했는데 좀 어의가 없었다.  내용 역시도 읽어보면 시작은 그렇게 중도적 입장이라고 밝히고 꽤 합리적으로 쓰고 있지만 별로 건질 말은 없었던 것 같고, 처음엔 꼭집어 나의 닉네임을 거론하지 않았지만 후에 누군가의 댓글에 대한 답글에서 자신의 글로 인해 내가 상처 받았을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말을 남긴 것을 보았다.

순간 그는 내가 그의 말에 상처 받기를 바랬을까? 좀 뜨아했다. 난 그가 그런 글을 올린 것 자체가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나 보다 젊은 사람이 어떻게 글은 그렇게 보수적으로 쓸 수 있을까? 의아스럽기도 했고, 아쉽기도 했다(그 사람은 당시 덩달아 문제제기를 했던 각종 알라디너의 글을 채집해 정리를 하기도 했는데 취미 한번 독특하다 싶었다. 이 글도 또 한번 자신의 서재 페이퍼에 올릴 건가? 궁금하다). 하지만 평소 그와 나는 교류가 없었으니 바라는 것도 없다. 모르긴 해도 그는 자신이 그 글을 쓰는 시간을 바쳐서 알라딘에 또 한바탕 들고 일어난 불을 끄게 되길 바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그런데 내가 잘못하긴 했다. 내가 애초에 그 글을 썼을 때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이 동조해 주고, 함께 생각해 봐 주길 바랐다. 특히 나와 비슷한 시기나 나름 오래 서재활동을 한 알라디너들이 그냥 관심없다로만 일관하지 말고 한번쯤 생각해 주길 바랐다. 이런 건 연대가 중요하니까. 하지만 결과는 좀 참담했다. 

마음 아팠던 건, 나의 생각에 적극 동조해 주었던 나의 이웃님이(누구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그분이 또 피해를 볼까 봐)선의의 피해를 보기 시작했다. 물론 양상은 내가 애초에 지적한 문제가 아닌 그분이 또 다른 이웃과 과거에 미처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촉발되면서 2차 논쟁에서 붉어진 일이긴 했지만, 애초의 시발은 나였다는 점에서 지금도 마음이 무겁고, 이 글이 그분의 상처를 또 건드리는 건 아닌가 조심스럽다. 그런데 내가 말하려 하는 것은 이것이다. 사람들이 (원래 제기한)문제를 직시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에만 치우쳐 2차, 3차의 문제로 확대 재생산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난 솔직히 그게 놀라웠다. 아무리 남의 말 하기 좋아 하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심할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적어도 블로그질을 할 정도면 나름 교양인이고 생각 좀 한다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너무 속 편한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를 그때 새삼 알았다. 이럴 것 같으면 차라리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알라디너가 차라리 고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솔직히 그들이라고 하고 싶은 말이 없을까?

 

아무튼 그때 난 그분의 안위가 걱정이 되서 알라딘 서재가 아닌 따로 핸드폰으로 문자를 주고 받았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있다고 했다. 마음이 아팠다. 왜 고 최진실은 안재환의 문제에 휩쓸려 3천개나 되는 댓글을 일일이 다 읽고 그 모진 목숨을 끊었을지 알 것도 같다. 사람의 마음이 그렇지 않아 댓글 10개 중 7,8개가 좋은 댓글을 받아도 나머지 2,3개 때문에 마음앓이를 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그것 때문에 사람이 저리 파죽음이 되어가고 있는데, 나의 상황이 아니라고 함부로 비난하는 주둥아리들한테 정말 실망했고, 예전의 알라딘이 아님을 실감했다. 그리고 이렇게 선의의 피해를 받는 사람이 생긴다면 연대도 함부로 바랄 것이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들끓을 줄만 알았지 진정으로 무엇을 위해 들끊어해야 하는지 투쟁해야 하는지를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 무엇보다 이제 이런 제도적인 문제를 제기하면 알라딘은 모르쇠로 일관할 수 있다. 이렇게 알아서 감정 내키는대로 촛점을 다른 곳으로 분산시켜 불을 꺼주는 고마운 알라디너가 있는데 제도에 대해선 더 이상 말할 것이 없어지게 만드는 거다. 게다가 이러고 저러고 다 시끄럽다고 소리치는 사람도 있는데 이렇게 되면 시작도 하기 전에 게임은 종결이다. 오죽했으면 그분은 알라딘 내에서의 소란을 잠재우기 위해 스스로 사과를 자청했을까? 잘못한 건 그분이 아닌데.

 

어쨌든 알라딘은 며칠 전 또 어김없이 이달의 당선작을 발표했다. 내가 알기론 하루 늦춰 발표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누가 당선했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알라딘에 잘한 것이 없으니 뭐 이쁘다고 나에게 당선의 영광을 주겠는가? 하지만 하루 늦게 발표를 했다는 그것이 일말의 희망을 갖게 했다. 그리고 맞서야 할 것은 맞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록 또 한 번의 실망을 맛보게 될지라도. 역시 나는 이번 달에도 당선이 되지 못했다. 지난 달 나는 적어도 두 편의 리뷰를 나름 정성껏 썼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추천이 높았고, 하나는 추천이 생각보다 저조했지만 알라딘이 하나 좋은 건, 추천이 낮다고 해서 당선을 제외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대를 하게 만들었는데 역시 안 됐다. 하지만 이번엔 안 됐다고 해서 실망이 되지는 않았다. 말했다시피 내가 알라딘에서 문제를 일으켰고 강도 높은 비판을 했으니 미운털이 박힌 거야 당연한 것 아닌가.  

하지만 그후에 오는 감정은 이제까지 느꼈던 당선 안 됐다고 실망했던 것 보다 더 쓰고 절망스러운 것이었다. 다른 사람은 저렇게 당선이 돼서 깃발을 펄럭이고 있는데 나는 지난 날 뭐했지? 자책감 보다는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난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이 확실하며, 알라딘이 문제를 일으킨 알라디너가 있으면 어떻게 하는지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잠을 자다말고 요의를 느껴 화장실 변기에 걸터 앉는 순간 비집고 올라 온 생각은, 내가 알라딘에 뭘 했지? 진짜 뻘짓한 건가? 이럴 땐 도망가야 하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2년 전쯤이던가? 알라딘에 누구라면 알만한 알라디너 한분이 알라딘 내에서 비정규직 규탄을 위해 불매 운동은 벌였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정말 폭풍이 만만치 않았다. 그때 그 분은 1년 동안 싸웠다고 했고, 최선을 다한 일에 후회는 없다고 하시고는 홀연히 알라딘을 떠났다. 그분이 생각이 났다(하필 변기통에서!). 그때 나는 그분의 힘이 되어 드리지 못했다. 그때만해도 뭘 몰랐다. 그저 뒷짐지고 관망만했고, 어서 하루속히 그 태풍이 지나가 다시 알라딘에 평안이 찾아 오길 바랬다. 비정규직은 없어져야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때만해도 나름 똑똑하고 의식있다고 생각했던 알라딘이 왜 비정규직을 고용해 이런 사단이 일어나게 만들었는지 씁쓸했다.

그후 그 문제가 어떻게 해결이 났는지 난 알지 못한다(하긴 알라딘이 미해결된 문제가 어디 이것뿐인가?) 그때도 알라디너는 지금 같았다. 시끄럽다고 했고, 관심없다고 했다. 물론 그분과 함께 불매 운동에 참여했던 알라디너도 꽤 많았지만, 우리야 책을 사고 싶으면 사고 안 사고 싶으면 안 사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 비정규 사원은 밥줄이 걸린 문제였다. 적어도 찬물은 끼얹지는 말아야 하지 않는가? 또한 그분은 자신의 일도 아닌 것을 어떻게 그 짧지 않은 기간 그 바람을 다 맞고 있었을까? 얼마나 외로웠을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미안하고 그분이라면 뭐라고 하실까 궁금했다.

 

알라딘 이달의 당선작이 왜 문제인가?

 

난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게 당선 편수를 줄이면서 당선금을 올린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오히려 늘려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도 보라. 예전엔 주말이면 알라딘에 올라 오는 글이 줄어들었던 반면, 지금은 목요일부터 그것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나의 서재 브리핑 페이지가 그 표본을 말해주고 있는데, 다들 비슷할 것이다. 난 오히려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즐겨찾기를 했지만 이것은 변함이 없다. 그것이 꼭 SNS의 환경이 좋아져서만일까? 어떻게든 알라디너를 끌어 앉혀 주옥같은 글을 각 개인의 서재에 쏟아 낼 수 있도록 해야하지 않을까? 그런데도 당선 편수를 줄이고, 당선금을 올리면 글 잘 쓰는 알라디너야 계속 쓴다지만 스스로 못 쓴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시작도 하기 전에 사기가 꺾여 "난 해도 안 돼." 하며 책상을 박차고 일어날 것 같다. 하긴 될 수 있으면 적은 수로 가름할 수 있으니 알라딘으로선 그게 더 편할지 모르겠다.

 

나는 지난 페이퍼에 알라딘 적립금 제도의 변천사를 언급했었다. 한때는 부지런히 페이퍼를 올려 30위 안에만 올리면 5천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것을 우리 알라디너는 농담삼아 '주급'이라고 했다. 주급이던 월급이던 그것도 알라디너들 사이에선 암암리에 노동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름 재밌고 괜찮은 것 같긴 하지만 부작용이 있었다. 소위 '깡통 페이퍼'를 올리고 주급을 받는 얌체족이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저급하긴 해도 노동 행위로 인정은 해 줘야할 것 같다. 주급을 준다고 해도 그것조차 안하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그것을 철폐하고 어찌 어찌해서 지금의 형태의 제도가 되었다. 덕분에 깡통 페이퍼를 올리는 사람들은 자연히 떨어져 나갔지만 문제가 해결이 된 것은 아니다. 일정 수준의 글을 써야 월급을 받다보니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있다. 이를테면 나 같은 사람이랄까? 열심히 쓰고 추천도 웬만큼 받지만 번번이 당선에서 미끌어지는 사람은 이제 안중에도 없어진 것이다.

글 잘 쓰는 사람들이야 높아진 알라딘의 수준에 당선작을 내니 자랑스러울만도 할 것이다. 그것도 거의 매달, 또는 중복에서. 하지만 매번 쓰기는 열심히 쓰면서 당선에서 미끌어져 왔던가, 가물의 콩나기로 되는 사람은 상대적인 열등감과 박탈감은 더 하다. 알라딘은 왜 그들을 생각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더구나 매번 당선을 한 사람들이 알라딘의 편애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 감정은 더더욱 증폭이 된다. 한간엔 이런 말도 있다. 신입회원 잔뜩 띄워주고 어느만치 지나고나면 끌어내릴 땐 확 끌어내린다고. 

 

지금도 알라딘 당선작을 누가 뽑느냐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대체적인 짐작은 엠디들이 뽑는다였고, 인간이기에 주관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엔 이견이 없다. 그런데 엠디들이 뽑는 거 맞나? 내가 알기론 알라딘 직원들의 업무량이 장난이 아니라고 들었다. 물론 바쁘시겠지. 당선작을 뽑는 것도 업무의 하나로 생각하고 정말 신중의 신중을 기한다고 말할 수 있나? 예전에 나도 모처에서 리뷰 채점하는 일을 아주 잠깐 한 적이 있다. 물론 내가 그렇게 꼼꼼한 성격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거긴 그렇게 큰 곳은 아니고 리뷰 활동을 하는 사람이 한정되어 있어서 다 읽지는 않더라도 이 사람은 어떻게 글을 쓰는지 대충 감이 온다. 그래서 그에 따라 점수를 주거나 안 주거나를 결정하고 넘어간다. 아, 이대로 내가 하면 안 되겠구나 그래서 그만 두었다. 그런 일이 알라딘 내에서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어디에 있겠는가?

 

정확히 말은 안하겠지만 나름 지명도가 높은 출판사에서 몇년 전 리뷰대회 문제점을 집고 나온 회원이 있었다. 그에 따라 불만이 여기저기서 쏟아 나왔다. 비슷한 이유가 포함이 되었다. 그때 카페를 관리하던 직원들이 그런 불미스러운 일에 책임을 인정하고 정중히 사과를한 다음 보다 공정성을 구하기 위해 전문 인력을 투입해(그것도 보통이 아니다. 평론가다.) 보다 엄격히 리뷰를 관리하고 있다. 나는 그런 직원들의 태도에 박수를 보냈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일은 하다보면 태만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거듭나려고 회원들에게 고개를 숙이는 그들이 나는 오히려 친근하고 신뢰롭게 느껴진 것이다. 그만한 의지가 알라딘에게도 과연 있을까?

 

독서도 노동이다

 

나는 얼마 전 박노자와 지승호의 <좌파하라>를 읽었다. 그책에서 다소 나에게 충격적이었던 것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을 노동이라고 보는 박노자의 생각이었다. 그는 더불어 학교에서 하는 '학습노동'이외에 집에서 하는 숙제도 '노동'으로 보고 있었다.

우린 공부를 노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히 그냥 해야하는 일로 여긴다. 거기엔 뭐라 이름 붙일 것이 없었다. 하긴, 0교시 수업이나 보충수업이니, 야간자율학습이니 이 모든 것은 학생이나 교사에게나 착취라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했다. 야간자율학습이란 것도 야간학습이면 야간학습이지 자율은 뭔가 싶다. 

 

 

내가 요즘 읽고 있는 책중에 <통하면 아프지 않다>를 읽고 있다(이책 정말 좋다. 꼭 사 보라). 거기에 보면  하종강 씨는 전교조는 처음에 불법 노조였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신성한 교직이 어떻게 노동자인가?"라며 한탄을 했단다. 

좀 놀라웠다. 학습과 교육을 그동안은 노동으로 보지 않았다는데 놀라웠고, 그것을 노동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 놀라웠다(가사도 마찬가지다. 노동으로 본지가 얼마 안 된다.) 그렇다면 독서는 어떤가? 독서도 노동이라고 봐야한다. 이는 시간들여 리뷰를 쓰는 행위도 포함한다. 이것은 내가 앞서 지적한 알라디너의 지적 자산과도 관련있는 얘기다. 

 

알라디너라면 누구든 한 번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고 읽고 리뷰를 써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그렇게 협찬 받은 책은 공짜 책 받는다고 생각하고 리뷰를 쓸 때 상당히 조심스럽게 쓴다는 말을 들은 적이있다. 그건 구태의연하다. 내 돈 들여 책을 안 사면면 그게 다 공짜책인가? 그것을 읽고 리뷰를 쓰는 것도 노동이고 시간을 들인다는 측면에서 충분히 돈을 대신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난 이것을 기회있을 때마다 강조했다. 굳이 부르자면 '자발적 노동'인 것이다. 그러므로 취미가 독서라고 말하는 사람을 나는 그리 좋아하지 않은다. 독서가 어떻게 취미인가? 노동이지. 독서를 좋아하긴 하지만 나 같은 경우는 눈도 안 좋아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수할 일이 되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 우리가 잠 자는 시간과 움직이지 않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이 노동 아닌가?

 

정당한 권리를 요구함

 

생각해 봤다. 왜 이것이 문제제기로만 끝나고 있을까? 왜 알라딘은 알라디너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지? 그런데 한 가지 실마리를 찾았다. 알라딘은 적립금 제도를 알라딘이 할 수 있는 여러 많은 서비스중의 하나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비스는 해줘도 그만이고 안 해줘도 그만이고, 고객의 입장에서도 받아도 그만이고 안 받아도 그만인 것이다. 나는 이참에 알라딘 고객을 두 부류로 나누고 싶은데, 하나는 그야말로 순수 고객이다. 책만 주문하는. 하나는 참여 고객으로 알라디너다. 순수 고객은 알라딘이 베풀어주는 여러가지 혜택을 누리면 된다. 하지만 이렇게 참여 하는 고객은 자신의 서재를 통해 여론을 형성하거나 주도할 수 있는 정당한 권리를 갖는다. 또한 그것을 요구할 수 있다. 이것을 두고 <오마이뉴스>의 오연호 기자는 '실핏줄 언론'이라고 했고 그것이 갖는 힘은 결코 약하지 않다고 했다('통하면 아프지 않다'에서). 

 

지난 번 '나는 알라딘은 갑이고 알라디너는 을인가?'라고 말했을 때 모르긴해도 적지 않은 알라디너들이 놀랐을지 모르겠다. 알라딘에서 자신의 위치와 정체를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적립금 정책이 잘못되었다고 비판을 주장하는데 왜 비난을 받아야 하는가? 내 글이 제대로 대접을 못 받고 있는데 왜 가만히 있는가? 이것은 우리 알라디너의 문제다. 그런데 왜 시끄럽다고 하고, 관심없다고 하고, 중도적 입장이라면서 점잖음을 가장하는가?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

 

앞에서 말했던 알라딘 내에서의 비정규직을 규탄했던 그 알라디너는 그 이후 알라딘을 떠났다. 그때 뒷짐쥐고 있었던 나는 지금은 그마음이 어떨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모르긴 해도 그는 알라딘을 떠날 것을 각오부터 하고 그 투쟁을 벌였을 것이다. 지금 내 마음이 그와 같다. 나 역시 떠나고 싶다. 요즘처럼 알라딘에 글을 쓰는 것이 괴로운 적도 없다. 그래서 전엔 글을 쓸 일이 있으면 알라딘에 직접 대고 쓰지만 지금은 아예 다른 사이트 내 블로그에 쓴 다음 그것을 복사해서 올리고 있다. 오프라인이라면 어느 상점이 부당하고 손님 대접을 제대로 안 해주면 다른 상점으로 옮기면 그만인데 이상하게도 알라딘은 그렇지가 못하다. 이대로 문제제기만 하고 떠나는 것도 옳은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나는, 내 나름의 1인 시위를 꿈꾸기로 했다. 내가 1인 시위를 꿈꾸는 건 지난번 사태 때 나와 연대해 주었던 나의 이웃분이 선의의 피해를 보는 것을 보면서 더 이상 그것을 바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이놈의 동네는 연대도 맘대로 못한다ㅠ). 또한 나 역시 이유없는 비난을 감당하리만치 강단이 세지 못하다. 그때 나는 휘청거릴 정도였고 그 후유증은 지금도 여전하다. 그래서 생각한 것은 이 페이퍼를 시작으로 모든 글 제목란에 근조 리본을 뜻하는 ▶◀표를 달 기로했다. 언제까지라고는 장담하지 못한다. 알라딘이 달리 나와 주면 생각 보다 일찍 철회를 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됐다 싶을 때까지 계속 할 것이다.

 

또한 댓글창을 다 막아놓을 것이다. 이것도 나의 시위의 또 하나의 방법이다. 나를 아는 알라디너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지난 번 경험에 의하면 지지하는 댓글이든 비난하는 댓글이든 둘 다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 대신 방명록은 어떻게 할 수 없으니 거기에 글을 쓰는 건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가급적 방명록에 글을 남기는 것도 안 해줬으면 한다. 내 글에 비난을 할 생각이 있는 알라디너라면 더더욱 노땡큐다. 물론 새로운 제안이라면 환영이다. 그런 건 알라딘이 보라고 각자의 서재에 올려주면 좋겠다. 그러나 남을 비방하고 비난하는 글은 정말 삼가해 달라. 이 페이퍼가 지난 번처럼 폭풍을 만들어내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냥 난 이런 인간이려니 하고 잠잠히 있어 달라.

하지만 만일 나의 이뜻에 동조할 의향이 있다면 조용히 근조 리본을 달아 주기 바란다. 그것도 꼭 바라는 것도 아니고 부탁하는 것도 아니다. 전혀 동의 하지 않는다면 그냥 써왔던 대로 서재 활동을 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타인의 페이퍼를 봐주고 좋고 잘 쓴 페이퍼라면 추천하고, 격려해줘라. 그리고 알라딘 엠디들이 볼 수 있도록 댓글창에 '이 글을 이달의 당선작으로 추천합니다'라고 쓰고 나와 주기 바란다. 그리고 자신이 추천한 남의 글이 이달의 당선작에 올라갔는지 안 올라갔는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확인해 달라. 남의 글이든, 내 글이든 안 올라갔으면 왜 안 올라 갔냐고 따질 수 있는 용기를 가져줬으면 좋겠다. 마음 같아선 알라딘에서 뽑는 것 말고, '우리끼리 당선작' 뭐 그런 걸 따로 뽑는 것까지 하고 싶지만 그건 아무래도 무리고 상상에 맡겨야 할 것 같다. 

 

이제 내가 할 말은 다 한 것 같다. 더 이상 이렇게 쓸 일이 없을 것 같다. 좀 길게 썼지만 이왕 읽어 줄 마음 있으면 꼼꼼히 읽어 줬으면 좋겠다.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 - 류시화 제3시집 
류시화 지음 / 문학의숲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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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언제나 나에겐 관심 밖이었다.  

어쩌면 그리도 속 깊은 것인지? 어쩌면 그리도 낮선 것인지? 

내가 나를 알 수가 없는데 남의 속 깊은 뜻을 어찌 알까 싶어 일부러 외면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문외한이 되었다. 그래도 시인 류시화를 모른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워낙에 시로, 번역으로 잘 알려진 사람이라 언젠가 한번은 그의 작품을 마주하고 싶었다. 

 

비록 우리는 시인이 될 수 없을지라도

 

 시인의 시는 뭐랄까, 명상을 하는 시인이라서 그럴까? 상당히 깊은 언어의 세계를 구가한다. 또 그래서 그럴까? 그는 시인의 시어를 사랑한다. 정말 '만일 시인이 사전을 만들었다면' 어떻게 만들어질까 궁금하다. 그에 대한 실례로 시인은 몇 가지 단어를 그만의 언어로 재해석 한다. '만일 시인이 사전을 만들었다면 세상의 말들이 달라졌으리라'고 하면서,

 

봄은 떠난 자들의 환생으로 자리바꿈을 하고

제비꽃은 자주색이 의미하는 모든 것으로

하루는 영원의 동의어로

인간은 가슴에 불을 지닌 존재로

얼굴은 그 불을 감추는 가면으로

                                         (32p) 

그렇다. 세상에 벼라별 사전이 다 있으면서 시인의 사전이 없다니? 만약 시인의 사전이 있었더라면 세상은 좀 더 아름다워질까? 다른 건 몰라도 시인은 단언하건데, 세상의 많은 단어들이 바뀌었으리라고  말하고 있다.

눈동자는 별을 잡는 그물로

상처는 세월이 지나서야 열어 보게 되는 선물로(33p) 말이다.

그리고 또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사랑은? 인생은? 죽음은? 미움은? 후회는? 절망은? 어제는? 만남은? 이별은......? 어떻게 바뀔 수 있을까?

나 나름의 언어로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요는 자신만의 사전을 가지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는 것도 같다. 그것이 꼭 시인이 되는 것이 아니어도 좋으리라.

언어가 자신을 구원할 수 있을까?  나는 그것에 어느 정도 긍정하고 싶다. 요즘의 싸구려 언어는 타인을 공격하고, 스스로를 자해하고 있다.  메스가 사람을 살리는 도구도 될 수 있고 해하는 도구도 될 수 있는 것처럼 언어 또한 그렇지 않는가? 오늘 하루동안의 생각들, 무심코 썼던 말들을 종이에 써 보라. 그것이 그 사람을 말해 줄 것이다. 

자신이 믿는 신에게 기도를 할 때 나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없다. 다 좋은 마음과 정제된 언어로 기도를 한다.  인간이 쓰는 언어는 그래야 한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비록 시인이 될 수 없을지라도 소망의 언어탑을 쌓아야 할 것이다.

 

 가끔 K2본부에서 하는 <김승우의 승승장구>라는 프로를 보면 그날의 출연 게스트에게 자신을 나타내는 단어를 꼽으라고 한다. 그래서 그 단어의 의미와 자신이 생각하는 의미를 재해석하게 한다. 사람이 쓰는 언어란 그런 것이구나 싶다. 

 

상처를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 

 

시인은 말한다. '상처는 세월이 지나서야 열어 보게 되는 선물'이라고.

시인은 유독 시집에서 상처를 얘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상당히 긍정적이고,  자기치유적이다.

요즘은 하도 상처 받았다는 사람이 많고, 그것을 다루는 책도 많이 나왔고, 치유법도 많아졌다.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겠지만 그런 현상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뭐 그리 상처가 많아서 성처, 상처 하는 것일까? 세상은 온갖 이론을 앞세워 상처를 규명하려고만 한다. 상처가 있으면 그것을 치유하는 방법도 자기 안에 가지고 있다. 하지만 세상은 그런 것들을 무력화시키고 자기 스스로는 고칠 수 없다고 그러고, 다른 것에서 상처를 치유 받으라고 하고, 잊으라고 한다. 

왜 상처는 똑바로 응시하면 안 되는 걸까? 내 안에 상처 이외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려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나는  '상처는 세월이 지나서야 열어 보게 되는 선물'이라는 말에 동감한다. 나도 지난 날 적지 않은 상처를 받고 살아왔다. 아니 상처 받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물론 그것은 되네이기도 싫은 것들이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그때 이해하지 못한 것들이 지금은 이해가 되면서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게되고 나는 더 넓고 깊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시인이 상처를 가장 잘 표현한 것은 '옹이'라는 시에서가 아닌가 싶다.

 

흉터라고 부르지 말라

한때는 이것도 꽃이었으니 

비록 빨리 피었다 졌을지라도

상처라고 부르지 말라

한때는 눈부시게 꽃을 밀어 올렸으니

비록 눈물로 졌을지라도

 

죽지 않을 것이면 살지도 않았다

떠나지 않을 것이면 붙잡지도 않았다

침묵할 것이 아니라면 말하지도 않았다

부서지지 않을 것이면, 미워하지 않을 것이면

사랑하지도 않았다

옹이라고 부르지 말라

가장 단단한 부분이라고

한때는 이것도 여리디여렸으며

다만 열정이 지나쳐 단 한 번 상처로

다시는 피어나지 못했으니  (12P)

상처에 대해 이만큼 통찰적이고 잘 표현한 시도 드물것이다. 상처는 없애고,  잊어버려야 할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어쩌면 상처는 보듬고, 이해하고,  토닥여줘야 잘 아무는 것인지도 모른다. 상처는 미워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긍휼히 여겨야 하는 대상인지도 모른다. 그 상처도 상처가 되기까지 얼마나 싫었을까를 생각하면 말이다. 상처는 어찌보면 미리 열어 본 판도라의 상자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시집의 제목은 '이런 시를 쓴 걸 보니 누구를 그 무렵 사랑했었나 보다'란 시에서 따온 것이다.

'너는 나에게 상처를 주지만 나는 너에게 꽃을 준다, 삶이여 나의 상처는 돌이지만 너의 상처는 꽃이기를, 사랑이여 삶이라는 것이 언제 정말 우리의 것이었던 적이 있는가 

우리에게 얼굴을 만들어 주고

그 얼굴을 마모시키는 삶

잘 가라, 곁방살이 애인아(110P)

사랑도 대상이 있어야 하듯 상처도 대상이 있어야 한다. 이 시를 읽고 있으면 다분히 자조적이기도 하고 나로 인해 상처 받았던, 다시 말하면 상처를 줘야만 그 누구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도 같다. 그것도 너무 미안해 직접 구하지 못하고 한낱 자의적으로 조그맣게 구하는 용서. 나는 그에게 사랑이 되길 바랬는데 한낱 돌 같은 상처 뿐이었다니. 그돌 나에게 주고 너의 기억속에 나는 꽃같이 남아 있기를 사람들은 하나 같이 바라는 걸까? 사랑도, 상처도 이해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것을 삶이 언제 정말 우리의 것이었던 적이 있냐고 자조적으로 되묻고 있다. 우리의 것이 었다면 상처도 주지 않고 사랑을 이루고 살았겠지.  '우리에게 얼굴을 만들어 주고 그 얼굴을 마모시키는 삶' 그렇다. 따지고 보면 내 삶이 아니었던 그 알량한 삶도 나의 삶인 것이다. 그것은 얼굴을 마모 시키고 주름으로 남겠지.  '잘 가라, 곁방살이 애인아' 끝내 다가서지 못한 사랑을 곁방살이 애인이라면서 보내기 까지 했다.  상처만 줬던 곁방살이 애인. 사랑은 그리도 두려운 것이었을까? 피해버리고 말게. 그렇다면 앞으로 누구를 만나든 사랑 아니면 상처를 주겠구나란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난 이 시가 참 마음에 든다.

 

나에게 부족한 것은 비켜선 것들에 대한 예의였다

 

 

나에게 부족한 것은 비켜선 것들에 대한 예의였다

(중략)

중심에 있는 것들을 위해서는 많은 눈물 흘리면서도

비켜선 것들을 위해서는 눈물 흘리지 않았다

(중략)

곁눈질이라도 바라보아야 할 것은

비켜선 무늬들의 아름다움이었는데

일등성 별들 저 멀리 눈물겹게 반짝이고 있는 삼등성 별들이

있었는데

절벽 끝 홀로 핀 섬쑥부쟁이처럼

조금은 세상으로부터 물러나야 저녁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아, 나는 알지 못했다.

나의 증명을 위해

수많은 비켜선 존재들이 필요했다는 것을

언젠가 그들과 자리바꿈할 날이 오리라는 것을

한쪽으로 비켜서기 위해서도 용기가 필요했다는 것을

비켜선 세월만큼이나

많은 것들이 내 생을 비켜 갔다

나에게 부족한 것은 

비켜선 것들에 대한 예의였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잠깐 빛났다

모습을 감추는 것들에 대한 예의였다     (118~119P) 

문학의 증명은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비켜선 것들에 대해 사람들이 예의를 갖추도록 하는 것.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서 그것만이 그들의 세상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 그래서 문학은 늘 약자의 편이고, 잊혀지고 감추어진 것의 편인 것이다. 그것이 문학의 사명이며, 인간적이 아닌 것에 대해 끊임없이 저항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문학은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매력적이면서도 위대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또한 그것은 나에게 '시'가 아닐까 싶다. 나는 앞서 시에 대해 문외한이라고 말했는데 그동안 내가 얼마나 시에 대해 예의가 없었는지 이 시를 대하는 순간 조금은 뜨끔했다. 시는 나에게 '절벽 끝 홀로 핀 섬쑥부쟁이'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조금은 세상으로부터 물러나야 저녁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아, 나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시는 시인의 말처럼 언젠가 자리바꿈할 날'을 기다리지도 않는다. 시는 그저 항상 거기에 그렇게 있을 뿐이다. 그것의 진가를 알아주고 못 알아주는 것은 시를 대하는 사람의 몫으로 남겨둘 뿐이다. 시를 좀 더 가까이 해야겠다. 

 

그밖에...

 

나는 시인의 이런 말도 좋아한다.  

'적신호에도 멈추지 않는 사랑을 좋아한다

빛을 들고 어둠 속으로 들어가면 어둠을 알 수 없다고 말하는 시인을 좋아한다'(122p)

나도 이랬으면 좋겠다. 상처를 받아도 언제 상처를 받았느냐며 열심히 사랑을 하고, 열심히 자기 사명을 다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아이리시스 2012-05-14 17:18   URL
아.. 정적이면서 좋네요, 시요.. 저는 현실적인 시어들보다 관념적인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포착한 시어들이 좋은데 류시화님은 그런 분이라고 생각 안했는데 인용하신 부분은 좋은 것 같아요. "비켜선 것들에 대한 예의' 그건 뭐지.. 뭘까요.. 뭘까..

stella09 2012-05-15 18:01   URL
시가 조금은 어렵더라구요.
좋은 건 아주 좋은데.
하긴 시는 다 어려운 것 같아요. 이 작가뿐 아니라.
저는 류시화의 책을 정식으로 읽어 본적은 없는데
언뜻 언뜻 보면 정말 잘 쓴다 싶어요.
통찰적이고. 깊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번에 제대로 읽어 본 건데 아이님한테도 그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