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약 한 달...
그로부터 약 한 달이 지나갔다. 그때 나는 알라딘의 10년 고객으로써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서재질을 해왔던 알라디너로서 느꼈던 바들을 썼으며, 더불어 알라딘의 이달의 당선작에 따른 적립금 정책에 대해 재고를 촉구하는 의미에서 나름 강도 높은 비판의 글을 게재했다(http://blog.aladin.co.kr/stella09/5568500). 그런지 한 달이 넘어갔지만 아직까지도 알라딘은 일체 묵묵부답으로 자신들의 일만 충실히 잘하고 있(는가 보)다. 물론 그 한번으로 알라딘이 눈 하나 깜짝할 거라고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 역시 그것을 알기에 한번으로 넘어 가려고 했다.
사실 그글을 썼을 때는 나름 심각했다. 시쳇말로 멘탈붕괴라고 해야 할까? 매 토요일이면 발행하는 자사의 전자 신문에 거의 매주 나의 글을 노출시켜 주고 정작 이달의 당선작에선 제외시켰다. 그 노출된 글들은 대체로 추천도 높았고, 내가 생각해도 못 쓰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국 그렇게 되고 보니 순간 '아니, 도대체 이 사람네들이 남의 글을 가지고 무슨 짓을 한 거야?' 까닭모를 화가 치밀었다. 물론 알라딘으로선, 신문에 실렸다고 그것이 꼭 이달의 당선작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신문에 실릴 정도라면 그 사람이 그 글을 얼마나 정성을 다해 썼겠는지를. 그리고 그글이 알라딘에 좋은 영향력을 미친다고 판단하니까 올린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어느 누구도 내 글 신문에 실어 달라고 바란 적은 없다. 문제는 그거다. 알라딘은 그렇게 알라디너의 글을 자사의 신문에 실어주는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알라 뭐 그런 심보가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알라딘 서재에 올라 온 모든 글은 알라딘이 관리한다는 규정은 있을 법하다(하지만 이것도 확실하지는 않다. 그냥 가정할 뿐이다). 하지만 그 글도 알고보면 알라디너의 지적자산이다. 그것을 공으로 게재한다는 것에 대한 일말의 책임의식 같은 것은 없나? <오마이뉴스> 같은 경우 시민 기자단이 발품을 팔아 글을 올리면 그것에 대해 일정 부분 원고료를 지급한다고 들었다. 적어도 알라딘이 '오마이뉴스' 같지는 않더라도 그에 준하는 예를 알라디너들에게 갖출 의향이 없는가? 이쯤되면 묻고 싶다.
하지만 내가 말하려 하는 것은 자사의 신문에 왜 알라디너의 글을 무단게재 했느냐가 아니다(지금 내가 한 달 전에 제기한 문제가 해결이 안된 마당에 그것까지 끄집어 낸다는 것은 다소 과한 느낌이 있다. 하지만 이것도 언젠가는 꼭 짚고 넘어갈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한 달 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당선작에 관한 적립금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그동안 나를 둘러 싼 일들에 관하여
그 일은 나로선 적지않은 용기를 필요로 했다. 말했지만 그동안은 간간이 불만을 토로하는 정도로만 했을 뿐이지 그렇게 정면으로 문제제기를 한적은 없었다. 막상 그렇게 하고 나오니 정말 반응도 여러 가지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대체로 공감해주고 동조해주는 고마운 이웃님들이 계셨지만, 게중엔 생판 알지도 못한 사람이 그동안 간간이 알라딘이 베풀어 준 은혜를 누렸던 것으로 아는데 이런 페이퍼가 웬말이냐는 식의 댓글을 받기도 했다. 그뿐인가? 그에 대한 후폭풍이 만만치가 않았다. 그중 누구라고는 말하지 않겠지만, 그 사람은 나름 합리주의자를 자처하며 내 편도 알라딘 편도 아닌 자신만의 독특한 논평(!)을 자신의 서재에 올리기도 했는데 좀 어의가 없었다. 내용 역시도 읽어보면 시작은 그렇게 중도적 입장이라고 밝히고 꽤 합리적으로 쓰고 있지만 별로 건질 말은 없었던 것 같고, 처음엔 꼭집어 나의 닉네임을 거론하지 않았지만 후에 누군가의 댓글에 대한 답글에서 자신의 글로 인해 내가 상처 받았을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말을 남긴 것을 보았다.
순간 그는 내가 그의 말에 상처 받기를 바랬을까? 좀 뜨아했다. 난 그가 그런 글을 올린 것 자체가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나 보다 젊은 사람이 어떻게 글은 그렇게 보수적으로 쓸 수 있을까? 의아스럽기도 했고, 아쉽기도 했다(그 사람은 당시 덩달아 문제제기를 했던 각종 알라디너의 글을 채집해 정리를 하기도 했는데 취미 한번 독특하다 싶었다. 이 글도 또 한번 자신의 서재 페이퍼에 올릴 건가? 궁금하다). 하지만 평소 그와 나는 교류가 없었으니 바라는 것도 없다. 모르긴 해도 그는 자신이 그 글을 쓰는 시간을 바쳐서 알라딘에 또 한바탕 들고 일어난 불을 끄게 되길 바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그런데 내가 잘못하긴 했다. 내가 애초에 그 글을 썼을 때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이 동조해 주고, 함께 생각해 봐 주길 바랐다. 특히 나와 비슷한 시기나 나름 오래 서재활동을 한 알라디너들이 그냥 관심없다로만 일관하지 말고 한번쯤 생각해 주길 바랐다. 이런 건 연대가 중요하니까. 하지만 결과는 좀 참담했다.
마음 아팠던 건, 나의 생각에 적극 동조해 주었던 나의 이웃님이(누구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그분이 또 피해를 볼까 봐)선의의 피해를 보기 시작했다. 물론 양상은 내가 애초에 지적한 문제가 아닌 그분이 또 다른 이웃과 과거에 미처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촉발되면서 2차 논쟁에서 붉어진 일이긴 했지만, 애초의 시발은 나였다는 점에서 지금도 마음이 무겁고, 이 글이 그분의 상처를 또 건드리는 건 아닌가 조심스럽다. 그런데 내가 말하려 하는 것은 이것이다. 사람들이 (원래 제기한)문제를 직시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에만 치우쳐 2차, 3차의 문제로 확대 재생산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난 솔직히 그게 놀라웠다. 아무리 남의 말 하기 좋아 하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심할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적어도 블로그질을 할 정도면 나름 교양인이고 생각 좀 한다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너무 속 편한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를 그때 새삼 알았다. 이럴 것 같으면 차라리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알라디너가 차라리 고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솔직히 그들이라고 하고 싶은 말이 없을까?
아무튼 그때 난 그분의 안위가 걱정이 되서 알라딘 서재가 아닌 따로 핸드폰으로 문자를 주고 받았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있다고 했다. 마음이 아팠다. 왜 고 최진실은 안재환의 문제에 휩쓸려 3천개나 되는 댓글을 일일이 다 읽고 그 모진 목숨을 끊었을지 알 것도 같다. 사람의 마음이 그렇지 않아 댓글 10개 중 7,8개가 좋은 댓글을 받아도 나머지 2,3개 때문에 마음앓이를 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그것 때문에 사람이 저리 파죽음이 되어가고 있는데, 나의 상황이 아니라고 함부로 비난하는 주둥아리들한테 정말 실망했고, 예전의 알라딘이 아님을 실감했다. 그리고 이렇게 선의의 피해를 받는 사람이 생긴다면 연대도 함부로 바랄 것이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들끓을 줄만 알았지 진정으로 무엇을 위해 들끊어해야 하는지 투쟁해야 하는지를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 무엇보다 이제 이런 제도적인 문제를 제기하면 알라딘은 모르쇠로 일관할 수 있다. 이렇게 알아서 감정 내키는대로 촛점을 다른 곳으로 분산시켜 불을 꺼주는 고마운 알라디너가 있는데 제도에 대해선 더 이상 말할 것이 없어지게 만드는 거다. 게다가 이러고 저러고 다 시끄럽다고 소리치는 사람도 있는데 이렇게 되면 시작도 하기 전에 게임은 종결이다. 오죽했으면 그분은 알라딘 내에서의 소란을 잠재우기 위해 스스로 사과를 자청했을까? 잘못한 건 그분이 아닌데.
어쨌든 알라딘은 며칠 전 또 어김없이 이달의 당선작을 발표했다. 내가 알기론 하루 늦춰 발표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누가 당선했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알라딘에 잘한 것이 없으니 뭐 이쁘다고 나에게 당선의 영광을 주겠는가? 하지만 하루 늦게 발표를 했다는 그것이 일말의 희망을 갖게 했다. 그리고 맞서야 할 것은 맞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록 또 한 번의 실망을 맛보게 될지라도. 역시 나는 이번 달에도 당선이 되지 못했다. 지난 달 나는 적어도 두 편의 리뷰를 나름 정성껏 썼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추천이 높았고, 하나는 추천이 생각보다 저조했지만 알라딘이 하나 좋은 건, 추천이 낮다고 해서 당선을 제외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대를 하게 만들었는데 역시 안 됐다. 하지만 이번엔 안 됐다고 해서 실망이 되지는 않았다. 말했다시피 내가 알라딘에서 문제를 일으켰고 강도 높은 비판을 했으니 미운털이 박힌 거야 당연한 것 아닌가.
하지만 그후에 오는 감정은 이제까지 느꼈던 당선 안 됐다고 실망했던 것 보다 더 쓰고 절망스러운 것이었다. 다른 사람은 저렇게 당선이 돼서 깃발을 펄럭이고 있는데 나는 지난 날 뭐했지? 자책감 보다는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난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이 확실하며, 알라딘이 문제를 일으킨 알라디너가 있으면 어떻게 하는지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잠을 자다말고 요의를 느껴 화장실 변기에 걸터 앉는 순간 비집고 올라 온 생각은, 내가 알라딘에 뭘 했지? 진짜 뻘짓한 건가? 이럴 땐 도망가야 하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2년 전쯤이던가? 알라딘에 누구라면 알만한 알라디너 한분이 알라딘 내에서 비정규직 규탄을 위해 불매 운동은 벌였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정말 폭풍이 만만치 않았다. 그때 그 분은 1년 동안 싸웠다고 했고, 최선을 다한 일에 후회는 없다고 하시고는 홀연히 알라딘을 떠났다. 그분이 생각이 났다(하필 변기통에서!). 그때 나는 그분의 힘이 되어 드리지 못했다. 그때만해도 뭘 몰랐다. 그저 뒷짐지고 관망만했고, 어서 하루속히 그 태풍이 지나가 다시 알라딘에 평안이 찾아 오길 바랬다. 비정규직은 없어져야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때만해도 나름 똑똑하고 의식있다고 생각했던 알라딘이 왜 비정규직을 고용해 이런 사단이 일어나게 만들었는지 씁쓸했다.
그후 그 문제가 어떻게 해결이 났는지 난 알지 못한다(하긴 알라딘이 미해결된 문제가 어디 이것뿐인가?) 그때도 알라디너는 지금 같았다. 시끄럽다고 했고, 관심없다고 했다. 물론 그분과 함께 불매 운동에 참여했던 알라디너도 꽤 많았지만, 우리야 책을 사고 싶으면 사고 안 사고 싶으면 안 사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 비정규 사원은 밥줄이 걸린 문제였다. 적어도 찬물은 끼얹지는 말아야 하지 않는가? 또한 그분은 자신의 일도 아닌 것을 어떻게 그 짧지 않은 기간 그 바람을 다 맞고 있었을까? 얼마나 외로웠을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미안하고 그분이라면 뭐라고 하실까 궁금했다.
알라딘 이달의 당선작이 왜 문제인가?
난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게 당선 편수를 줄이면서 당선금을 올린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오히려 늘려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도 보라. 예전엔 주말이면 알라딘에 올라 오는 글이 줄어들었던 반면, 지금은 목요일부터 그것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나의 서재 브리핑 페이지가 그 표본을 말해주고 있는데, 다들 비슷할 것이다. 난 오히려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즐겨찾기를 했지만 이것은 변함이 없다. 그것이 꼭 SNS의 환경이 좋아져서만일까? 어떻게든 알라디너를 끌어 앉혀 주옥같은 글을 각 개인의 서재에 쏟아 낼 수 있도록 해야하지 않을까? 그런데도 당선 편수를 줄이고, 당선금을 올리면 글 잘 쓰는 알라디너야 계속 쓴다지만 스스로 못 쓴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시작도 하기 전에 사기가 꺾여 "난 해도 안 돼." 하며 책상을 박차고 일어날 것 같다. 하긴 될 수 있으면 적은 수로 가름할 수 있으니 알라딘으로선 그게 더 편할지 모르겠다.
나는 지난 페이퍼에 알라딘 적립금 제도의 변천사를 언급했었다. 한때는 부지런히 페이퍼를 올려 30위 안에만 올리면 5천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것을 우리 알라디너는 농담삼아 '주급'이라고 했다. 주급이던 월급이던 그것도 알라디너들 사이에선 암암리에 노동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름 재밌고 괜찮은 것 같긴 하지만 부작용이 있었다. 소위 '깡통 페이퍼'를 올리고 주급을 받는 얌체족이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저급하긴 해도 노동 행위로 인정은 해 줘야할 것 같다. 주급을 준다고 해도 그것조차 안하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그것을 철폐하고 어찌 어찌해서 지금의 형태의 제도가 되었다. 덕분에 깡통 페이퍼를 올리는 사람들은 자연히 떨어져 나갔지만 문제가 해결이 된 것은 아니다. 일정 수준의 글을 써야 월급을 받다보니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있다. 이를테면 나 같은 사람이랄까? 열심히 쓰고 추천도 웬만큼 받지만 번번이 당선에서 미끌어지는 사람은 이제 안중에도 없어진 것이다.
글 잘 쓰는 사람들이야 높아진 알라딘의 수준에 당선작을 내니 자랑스러울만도 할 것이다. 그것도 거의 매달, 또는 중복에서. 하지만 매번 쓰기는 열심히 쓰면서 당선에서 미끌어져 왔던가, 가물의 콩나기로 되는 사람은 상대적인 열등감과 박탈감은 더 하다. 알라딘은 왜 그들을 생각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더구나 매번 당선을 한 사람들이 알라딘의 편애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 감정은 더더욱 증폭이 된다. 한간엔 이런 말도 있다. 신입회원 잔뜩 띄워주고 어느만치 지나고나면 끌어내릴 땐 확 끌어내린다고.
지금도 알라딘 당선작을 누가 뽑느냐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대체적인 짐작은 엠디들이 뽑는다였고, 인간이기에 주관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엔 이견이 없다. 그런데 엠디들이 뽑는 거 맞나? 내가 알기론 알라딘 직원들의 업무량이 장난이 아니라고 들었다. 물론 바쁘시겠지. 당선작을 뽑는 것도 업무의 하나로 생각하고 정말 신중의 신중을 기한다고 말할 수 있나? 예전에 나도 모처에서 리뷰 채점하는 일을 아주 잠깐 한 적이 있다. 물론 내가 그렇게 꼼꼼한 성격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거긴 그렇게 큰 곳은 아니고 리뷰 활동을 하는 사람이 한정되어 있어서 다 읽지는 않더라도 이 사람은 어떻게 글을 쓰는지 대충 감이 온다. 그래서 그에 따라 점수를 주거나 안 주거나를 결정하고 넘어간다. 아, 이대로 내가 하면 안 되겠구나 그래서 그만 두었다. 그런 일이 알라딘 내에서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어디에 있겠는가?
정확히 말은 안하겠지만 나름 지명도가 높은 출판사에서 몇년 전 리뷰대회 문제점을 집고 나온 회원이 있었다. 그에 따라 불만이 여기저기서 쏟아 나왔다. 비슷한 이유가 포함이 되었다. 그때 카페를 관리하던 직원들이 그런 불미스러운 일에 책임을 인정하고 정중히 사과를한 다음 보다 공정성을 구하기 위해 전문 인력을 투입해(그것도 보통이 아니다. 평론가다.) 보다 엄격히 리뷰를 관리하고 있다. 나는 그런 직원들의 태도에 박수를 보냈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일은 하다보면 태만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거듭나려고 회원들에게 고개를 숙이는 그들이 나는 오히려 친근하고 신뢰롭게 느껴진 것이다. 그만한 의지가 알라딘에게도 과연 있을까?
독서도 노동이다
나는 얼마 전 박노자와 지승호의 <좌파하라>를 읽었다. 그책에서 다소 나에게 충격적이었던 것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을 노동이라고 보는 박노자의 생각이었다. 그는 더불어 학교에서 하는 '학습노동'이외에 집에서 하는 숙제도 '노동'으로 보고 있었다.
우린 공부를 노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히 그냥 해야하는 일로 여긴다. 거기엔 뭐라 이름 붙일 것이 없었다. 하긴, 0교시 수업이나 보충수업이니, 야간자율학습이니 이 모든 것은 학생이나 교사에게나 착취라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했다. 야간자율학습이란 것도 야간학습이면 야간학습이지 자율은 뭔가 싶다.
내가 요즘 읽고 있는 책중에 <통하면 아프지 않다>를 읽고 있다(이책 정말 좋다. 꼭 사 보라). 거기에 보면 하종강 씨는 전교조는 처음에 불법 노조였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신성한 교직이 어떻게 노동자인가?"라며 한탄을 했단다.
좀 놀라웠다. 학습과 교육을 그동안은 노동으로 보지 않았다는데 놀라웠고, 그것을 노동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 놀라웠다(가사도 마찬가지다. 노동으로 본지가 얼마 안 된다.) 그렇다면 독서는 어떤가? 독서도 노동이라고 봐야한다. 이는 시간들여 리뷰를 쓰는 행위도 포함한다. 이것은 내가 앞서 지적한 알라디너의 지적 자산과도 관련있는 얘기다.
알라디너라면 누구든 한 번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고 읽고 리뷰를 써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그렇게 협찬 받은 책은 공짜 책 받는다고 생각하고 리뷰를 쓸 때 상당히 조심스럽게 쓴다는 말을 들은 적이있다. 그건 구태의연하다. 내 돈 들여 책을 안 사면면 그게 다 공짜책인가? 그것을 읽고 리뷰를 쓰는 것도 노동이고 시간을 들인다는 측면에서 충분히 돈을 대신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난 이것을 기회있을 때마다 강조했다. 굳이 부르자면 '자발적 노동'인 것이다. 그러므로 취미가 독서라고 말하는 사람을 나는 그리 좋아하지 않은다. 독서가 어떻게 취미인가? 노동이지. 독서를 좋아하긴 하지만 나 같은 경우는 눈도 안 좋아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수할 일이 되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 우리가 잠 자는 시간과 움직이지 않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이 노동 아닌가?
정당한 권리를 요구함
생각해 봤다. 왜 이것이 문제제기로만 끝나고 있을까? 왜 알라딘은 알라디너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지? 그런데 한 가지 실마리를 찾았다. 알라딘은 적립금 제도를 알라딘이 할 수 있는 여러 많은 서비스중의 하나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비스는 해줘도 그만이고 안 해줘도 그만이고, 고객의 입장에서도 받아도 그만이고 안 받아도 그만인 것이다. 나는 이참에 알라딘 고객을 두 부류로 나누고 싶은데, 하나는 그야말로 순수 고객이다. 책만 주문하는. 하나는 참여 고객으로 알라디너다. 순수 고객은 알라딘이 베풀어주는 여러가지 혜택을 누리면 된다. 하지만 이렇게 참여 하는 고객은 자신의 서재를 통해 여론을 형성하거나 주도할 수 있는 정당한 권리를 갖는다. 또한 그것을 요구할 수 있다. 이것을 두고 <오마이뉴스>의 오연호 기자는 '실핏줄 언론'이라고 했고 그것이 갖는 힘은 결코 약하지 않다고 했다('통하면 아프지 않다'에서).
지난 번 '나는 알라딘은 갑이고 알라디너는 을인가?'라고 말했을 때 모르긴해도 적지 않은 알라디너들이 놀랐을지 모르겠다. 알라딘에서 자신의 위치와 정체를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적립금 정책이 잘못되었다고 비판을 주장하는데 왜 비난을 받아야 하는가? 내 글이 제대로 대접을 못 받고 있는데 왜 가만히 있는가? 이것은 우리 알라디너의 문제다. 그런데 왜 시끄럽다고 하고, 관심없다고 하고, 중도적 입장이라면서 점잖음을 가장하는가?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
앞에서 말했던 알라딘 내에서의 비정규직을 규탄했던 그 알라디너는 그 이후 알라딘을 떠났다. 그때 뒷짐쥐고 있었던 나는 지금은 그마음이 어떨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모르긴 해도 그는 알라딘을 떠날 것을 각오부터 하고 그 투쟁을 벌였을 것이다. 지금 내 마음이 그와 같다. 나 역시 떠나고 싶다. 요즘처럼 알라딘에 글을 쓰는 것이 괴로운 적도 없다. 그래서 전엔 글을 쓸 일이 있으면 알라딘에 직접 대고 쓰지만 지금은 아예 다른 사이트 내 블로그에 쓴 다음 그것을 복사해서 올리고 있다. 오프라인이라면 어느 상점이 부당하고 손님 대접을 제대로 안 해주면 다른 상점으로 옮기면 그만인데 이상하게도 알라딘은 그렇지가 못하다. 이대로 문제제기만 하고 떠나는 것도 옳은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나는, 내 나름의 1인 시위를 꿈꾸기로 했다. 내가 1인 시위를 꿈꾸는 건 지난번 사태 때 나와 연대해 주었던 나의 이웃분이 선의의 피해를 보는 것을 보면서 더 이상 그것을 바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이놈의 동네는 연대도 맘대로 못한다ㅠ). 또한 나 역시 이유없는 비난을 감당하리만치 강단이 세지 못하다. 그때 나는 휘청거릴 정도였고 그 후유증은 지금도 여전하다. 그래서 생각한 것은 이 페이퍼를 시작으로 모든 글 제목란에 근조 리본을 뜻하는 ▶◀표를 달 기로했다. 언제까지라고는 장담하지 못한다. 알라딘이 달리 나와 주면 생각 보다 일찍 철회를 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됐다 싶을 때까지 계속 할 것이다.
또한 댓글창을 다 막아놓을 것이다. 이것도 나의 시위의 또 하나의 방법이다. 나를 아는 알라디너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지난 번 경험에 의하면 지지하는 댓글이든 비난하는 댓글이든 둘 다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 대신 방명록은 어떻게 할 수 없으니 거기에 글을 쓰는 건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가급적 방명록에 글을 남기는 것도 안 해줬으면 한다. 내 글에 비난을 할 생각이 있는 알라디너라면 더더욱 노땡큐다. 물론 새로운 제안이라면 환영이다. 그런 건 알라딘이 보라고 각자의 서재에 올려주면 좋겠다. 그러나 남을 비방하고 비난하는 글은 정말 삼가해 달라. 이 페이퍼가 지난 번처럼 폭풍을 만들어내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냥 난 이런 인간이려니 하고 잠잠히 있어 달라.
하지만 만일 나의 이뜻에 동조할 의향이 있다면 조용히 근조 리본을 달아 주기 바란다. 그것도 꼭 바라는 것도 아니고 부탁하는 것도 아니다. 전혀 동의 하지 않는다면 그냥 써왔던 대로 서재 활동을 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타인의 페이퍼를 봐주고 좋고 잘 쓴 페이퍼라면 추천하고, 격려해줘라. 그리고 알라딘 엠디들이 볼 수 있도록 댓글창에 '이 글을 이달의 당선작으로 추천합니다'라고 쓰고 나와 주기 바란다. 그리고 자신이 추천한 남의 글이 이달의 당선작에 올라갔는지 안 올라갔는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확인해 달라. 남의 글이든, 내 글이든 안 올라갔으면 왜 안 올라 갔냐고 따질 수 있는 용기를 가져줬으면 좋겠다. 마음 같아선 알라딘에서 뽑는 것 말고, '우리끼리 당선작' 뭐 그런 걸 따로 뽑는 것까지 하고 싶지만 그건 아무래도 무리고 상상에 맡겨야 할 것 같다.
이제 내가 할 말은 다 한 것 같다. 더 이상 이렇게 쓸 일이 없을 것 같다. 좀 길게 썼지만 이왕 읽어 줄 마음 있으면 꼼꼼히 읽어 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