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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제국과 세계사의 탄생 ㅣ 돌베개 석학인문강좌 12
김호동 지음 / 돌베개 / 2010년 8월
평점 :
승자의 시각으로 기술되는 역사에서 유라시아를 아우른 패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주목받지 못했던 몽골과 유목문명,
본서는 그간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몽골제국에 대해 또 다른 거시적 프레임을 제시해줍니다.
일단 몽골제국이라는 막강한 지배체제을 갖추기까지의 과정을 기술한 뒤
굵직굵직한 주요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 이들의 영향력을 고려한 새로운 해석의 틀을 보여주는데,
저자는 서구 혹은 중국 중심적 역사관에 갇혀있는 현대 한국인들에게 그 모든 것이 편견일 수 있으며
몽골제국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세계사를 충분히 다르게 해석할 수 있음을 말합니다.
핵심을 간추리면
○ 유목·목축이 농경 대비 '미개'하거나 야만적 혹은 원시적인 생산방식이 아니라는 점
- 유목민과 농경민의 접촉-대결은 세계사 곳곳에서 발견되는 거대한 흐름이자 현상이며
칭기스칸을 위시한 몽골인들이 저지른 학살이 과연 홀로코스트나 원자폭탄, 남경대학살 등에 비해 더 야만적인지
○ 실크로드에서의 유목민족들의 역할과 소그드·인도·페르시아 등 국제상인들과의 밀접한 관계
-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국제상인들을 약탈하거나 보호해주는데 그치는 수준이 절대 아니었으며
위구르~소그드 상인 간의 협력관계처럼 실크로드를 장악하여 원거리 교역에서의 실리를 얻는 동시에
동서양을 활발하게 연결해주는 중대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것
○ 대중국-소중국이라는 개념적 함정, '대중국'이라는 용어 설정은 과연 타당한가
- 대개 유목민족이 일궈낸 국가들을 칭하는 대중국이라는 용어는, 이들을 이미 중국의 일부로 보는 인식을 전제함
○ 칭기즈칸 이후 다수의 칸국으로 나뉘어진 대제국을 과연 '분열'이라고 볼 수 있는지
- 다수의 유기적 연합체들로 이루어진 유목민 특유의 복합단체로 여러 '울루스'들에 통치권한을 분할 위임한,
유목지대부터 농경지대를 아우르는 광대한 영토를 다스리기 위한 <대몽골 울루스>로 바라볼 수도 있음
○ 유라시아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면서 동서양 간 '대여행시대'의 도래를 가능케한 몽골인
- 단순 <대완열전>, <왕오천축국전> 수준을 넘어 동서 간 대단위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인류의 세계관이 확장됨.
보다 정교해진 세계지도를 비롯 몽골인들의 적극적인 역할이 없었다면 소위 대항해시대가 가능했을지
○ 중국은 역사적으로 해양세력의 침공보다는 내륙 방어에 힘써야했던 나라
- 정화의 대원정은 당시 서양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던 규모였지만 그것이 지속되지 못한 건
흔히 생각하듯 이들이 폐쇄적이어서라기보다는 유목민 등이 가할 수 있는 내륙의 위협에 대비할 필요성이 큰
중국의 역사적 맥락을 살펴봐야한다는 측면
(이는 막강한 해군력에도 불구하고 위협적인 인근 사파비 왕조로 인해 해양진출을 멈춘 오스만 제국 또한 마찬가지)
왜 유럽, 속칭 서구권이 19세기 이후 전세계 주도권을 장악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선 수많은 이론이 난무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유목민이나 페르시아 등 강력한 내륙의 적대세력들이 존재하여
중국이나 오스만 제국이 해양제국보다 육상제국을 지향할 수밖에 없었다는 내용은 본서의 핵심 중 하나입니다.
위협적인 적들이 눈 앞에 존재하는 상황에서 해양개척이라는 이상향적 도전정신을 발휘하기란 어려운 일이고,
만약 유럽이 중국·이란처럼 몽골로부터의 강력한 위협을 꾸준히 의식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마찬가지로 해외로 눈을 돌릴 여유가 별로 없었겠지요.
다양한 요인들이 상호 중첩적으로 작용하면서 지금의 상황이 도래했겠으나 역사적 전개상황 상 저자의 의견대로
강성했던 몽골의 존재와 지배는 현대 유럽과 비유럽의 운명을 갈라놓은 한 요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 외에도 본서에는 당시 몽골의 군사적 능력 및 부족 간 전투에서 '철'의 산지가 얼마나 중요했는지,
대량의 물자 운송수단이자 신속한 정보전달의 매개체였던 역참제도의 특징과 압도적인 규모, 마르코 폴로 이야기,
친인척 관계에 근거한 안다-연맹 형태의 누케르-단순 노비가 아닌 적극적 주종관계인 보골이라는 체계 등등
여러 재미있는 내용들이 간결하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중요도 대비 간과되어온 유목민들의 역할을 재조명하는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큰 틀의 관점 또한
분명 하나의 가설이기에 그 경중을 논하는 건 각자의 몫이겠지요.
<몽골제국과 세계사의 탄생>은 약 250쪽에 불과한 짧은 분량이어서 대부분 거시적 흐름 위주로 서술되지만
세계사라는 넓은 단위를 포괄하는 '통찰'에 있어서는 아주 광대하고도 신선한 관점을 선사해주기에
사고의 전환을 가능케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 책이 되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