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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관심을 증오한다 - 그람시 산문선
안토니오 그람시 지음, 김종법 옮김 / 바다출판사 / 2016년 3월
평점 :
품절
“무관심한 사람을 증오한다”
그람시가 초기 사회혁명가와 하원의원으로 활동하면서 가졌던 시대정신을 민주주의라는 주제로 편집한 정치평론집인 이 책의 첫문장은 이렇게 선언하며 시작한다. ‘무관심을 증오한다’는 이 책의 짧은 글의 소제목 중 하나이지만 이 책의 전체는 물론 그람시의 사상을 관통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람시는 “산다는 것은 지지자(참여자)가 된다는 것을 뜻한다”라는 말을 믿었으며 무관심은 무기력이고 기생적인 것이며 비겁함일 뿐 진정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고 일갈한다. 무관심에 대한 그람시의 비판을 더 들어 보자.
“무관심은 종종 도시를 둘러싼 견고한 성벽보다도, 그리고 도시를 지키고자 하는 전사들의 뜨거운 충성심보다도 훨씬 방어가 잘되는 깊고 깊은 늪이 되기도 한다.(생략) 무관심은 역사 안에서 늘 강력하게 작동했다. 비록 그것이 수동적일지라도 항상 작동했다.(p28)”
역사를 통틀어 대중들의 무관심이라는 묵인이 불러온 크고 작은 참극들이 얼마나 많은가. 홀로코스트의 나치즘이 그랬고, 이 책의 배경인 이탈리아 파시즘도 그랬다. 멀리 갈 것도 없다. 현재의 우리나라 정치행태도 무관심이 낳은 산물이다. 단적인 예로 투표율을 들어보자. 우리나라 투표율은 2011년에 46%로 OECD 국가들 중 최하위였다. 2016년은 58%로 상승했지만, OECD 국가들의 평균 투표율은 70% 수준이라고 한다. 낮은 투표율은 사회나 정치체제에 대한 불만과 불신으로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공동체 문제에 대한 참여가 저조해서 생기는 현상이다.
대체로 공동체의 문제에 무관심한 사람들은 일의 결과가 좋을 경우에는 조용히 묻어가며 혜택을 고스란히 받지만, 일의 결과가 나쁠 경우에는 결과에까지 무관심하지 않는다. 관심을 가지고 참여한 사람들에게 비난을 아낌없이 퍼붓고 나쁜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며 스스로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암울한 정치 현실과 사회는 상당부분 무관심의 대가이다. “오늘날 우리는 타인의 무능함을 방치하고, 현실을 외면하고 주변 상황과 사회 부조리에 눈감은 잘못에 대한 죗값을 치르고 있다.(p50)”라는 그람시의 말처럼.
1920년대 초반, 전쟁 직후의 이탈리아는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준다면 어떤 체제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거기서 파시즘이 시작되었다. 여기에 IMF 이후 한국의 현실이 겹쳐진다. 먹고사는 문제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부자되세요~”가 덕담이 된 분위기 속에서 경제를 최우선 공약으로 내세운 경제대통령을 뽑았고, 그도 모자라 창조경제대통령까지 또 뽑았다. 그람시가 [감옥에서 보낸 편지]에서 이런 글을 썼던가.
“5년, 8년, 또는 10년째 감옥에 있는 사람들을 볼 때,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어떻게 비뚤어지는가를 볼 때, 나는 내가 어떻게 될까를 생각하며 몸서리를 쳤소. 틀림없이 그들도 처음에는 자신들이 결코 이러한 체제에 굴복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을 거요. 하지만 그 과정이 너무나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인식조차 하지 못하면서 그들은 갑자기 완전히 변해버린 오늘의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실제로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정확히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빼앗아간다오.”
10년째 경제대통령들의 창살없는 치하에서 사람들의 마음이 비뚤어지지 않았는지, 이러한 체제에 순응하지 않으리라 다짐했건만 인식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서서히 변해서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우리도 발견하게 되는 건 아닌지, 그러고도 스스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인식할 수 있는 능력까지도 뺏긴 건 아닌지. 이에 대한 확인은 내년 대선 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도 우리는 계속 무관심하며 낮은 투표율로 정치를 묵인할 것인가. “나는 살아 있고 삶에 참여하는 인간이다.( p32)”. 그람시의 말처럼 우리는 살아 있고 참여하는 인간이기를 바란다. 누군가를 뽑기 위해서도 투표를 하지만 뽑지 않기 위해서도 투표를 해야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치는 결코 남 일이 아니다. 우리의 일이다. 관심이 그 시작이다.
덧글.
어이쿵. 쓰다보니 흥분해서 개인적인 독후감을 남발했네요. 책에 대한 평을 조금 덧붙이자면 번역의 문제인지 그람시 문체의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짧은 글들의 분량에 비해 문장들이 읽기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곱씹어야할 내용들이 많이 나옵니다. 이로써 16기 신간평가단의 공식 활동이 끝났습니다. 시원섭섭~^^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