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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문을 두드리며 - 우주와 과학의 미래를 이해하는 출발점 사이언스 클래식 25
리사 랜들 지음, 이강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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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빅뉴스로 ‘중력파 발견’이라는 과학계의 소식을 접했다. 2014년에 개봉했던 ‘인터스텔라' 이후로 우주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거기에서 ‘중력파’의 개념을 처음으로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 영화의 고문을 담당했고 이번 발견으로 노벨상 1순위로 주목받고 있는 킵 손 교수는 [인터스텔라의 과학]이라는 책을 쓴 적이 있다. 나는 인터스텔라 덕분에 고무된 과학적 호기심으로 킵 손 교수의 책이 출간되자마자 구입해서 의욕적으로 읽었으나 어려워서 중도 포기했다. 뼛속까지 문과 출신에다가 미술 쪽에 발을 살짝 담갔다 꺼낸 내가 과학을, 그것도 물리학에 관한 책을 읽으려고 할 때는 대단한 각오와 인내가 필요하다. [인터스텔라의 과학]은 나의 각오와 인내를 가혹하게 시험하는 책이었다.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도 그런 부류의 책이라고 짐작했지만, 전작 [숨겨진 우주]에 대해 가졌던 호감의 기억 덕분에 선뜻 독서 의지를 발휘할 수 있었다. 작년 겨울에 앞서 읽었던 [인터스텔라의 과학]이 너무 딱딱하고 건조했기에 그 다음으로 읽었던 [숨겨진 우주]는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어조로 조곤조곤 설명해주는 분위기의 책이라 읽기가 더 나았다. 방대한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분류하고 체계적으로 배치하여 적재적소의 명료한 그림 자료와 함께 이해를 돕는 저자의 구성 솜씨와 문장력이 돋보였다. 그렇다고 쉬운 책이라는 것은 아니다. 처음 만나는 생소한 개념들은 어쩔 수 없이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숨겨진 우주]를 [인터스텔라의 과학]과는 달리 끝까지 읽어낼 수 있었다.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에서는 전작에서 보여준 능력이 더 극대화된 듯하다. 일단 다루는 내용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고 책의 컨셉 때문이기도 하다. 이 책은 영화로 따지자면 프리퀄에 해당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전작인 [숨겨진 우주]의 오리지날 스토리이며 전작의 빈틈을 메우는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숨겨진 우주]를 먼저 읽고 나중에 나온 이 책을 읽어도 좋겠지만, 이 책을 먼저 읽고 [숨겨진 우주]를 읽으면 한층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과학에 대한, 그중에서도 입자 물리학에 대한 배경지식을 다져주고 과학과 과학적 사고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다. 심지어 나 같은 과학 초짜의 이해도 도와준다. 리사 랜들의 글쓰기가 얼마나 인상 깊었는지 이 책을 읽으면서 ‘리사 랜들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면 과학도가 되어도 좋았을 것 같은데!’라고 (문과 출신에 예술가적 기질이 미세하고 불량하게 있는) 내 뼛속을 갈아엎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이다.


책을 펼치면 목차가 나오기 전에 바로 ‘책을 시작하며’라는 글이 나온다. 책 전반에 대한 소개와 안내가 감탄스러울 정도로 명료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이 글만 잘 읽는다면 이 책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나는 본문을 읽으면서 종종 이 글로 돌아와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큰 그림을 상기하고 다시 본문으로 돌아갔다. 나 같이 기억력 나쁜 독자가 있을까봐 저자는 본문에서도 내용을 요약해서 마무리해주거나 다음에 나올 내용을 요약해서 알려주기도 하며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게 길잡이를 해준다.

이 책의 전체에 걸쳐서 반복 등장하고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핵심 개념은 ‘스케일’이다. 지금까지 내가 사용한 스케일의 개념이 주로 미술에서 쓰는 용도의 개념이었다면 이 책을 통해 나는 과학적 스케일과 더 나아가 삶의 전반에 대한 통찰적인 스케일까지 이해의 폭을 확장할 수 있었다. 

물리학자에게 있어서 특정한 연구에 관련된 크기나 에너지 영역을 가리키는 스케일이라는 개념은 우리 세계의 여러 측면뿐만 아니라, 과학적 진보를 이해하는 데도 중요하다. 우리가 아는 한 가장 잘 작동되던 물리 법칙들이라고 하더라도 우주를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여러 개의 크기로 나누는 순간 잘 작동하지 않는 영역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한 스케일에서 잘 적용되던 개념이 다른 스케일로 넘어가자마자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그 개념을 쓸모 있게 만드려면 새로운 스케일에서 더 유용한 개념과 관련을 맺어야 한다. 크기나 길이에 따라 세계를 기술하는 방법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스케일을 이해한다는 것은 이것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세계를 스케일에 따라 구별할 줄 알아야 비로소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을 일관된 관점에 따라 합쳐 하나의 큰 그림을 만들 수 있다. (p28)

책의 전반에 걸쳐 LHC도 비중있게 다룬다. LHC란 ‘대형 하드론 충돌기(Large Hadron Collider)의 약자로 대형 강입자 충돌기라고도 한다. 2008년 9월 10일에 역사적인 첫 시험 가동이 있었는데 나는 그때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아주 엉뚱한 감정으로…. LHC의 가동으로 작은 크기의 인공 블랙홀이 생성될 수 있다며, 이 블랙홀이 주변을 삼키기 시작하면서 연구소 전체와 유럽 대륙, 심지어 지구까지 삼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일부 과학자들이 제시해서 언론이 떠들석했었고 그때문에 나도 당시에 쫄았던 기억이 난다. 저자는 그에 대해서도 과학적인 해명을 해주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읽었다. 이 책의 2부과 3부에 걸쳐서 LHC가 현재 수행하고 있는 중요한 실험과 작동 원리 및 실제 가동에 대해 깊이 살펴 보고, LHC에서 발견된 것들을 과학자들이 어떻게 해석하는지도 알려준다. 길이가 무려 26.6킬로미터나 되는 거대한 LHC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입자라는 사실이 묘하게 아이러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책은 수많은 분야를 차용해서 입자 물리학을 다루고 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과학 이론만 다루는 책보다 즐겁게 읽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건 나 같이 과학에 대한 상식이 부족한 독자에게는 장점이겠지만 반대로 과학적인 배경지식이 많은 독자들에게는 단점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양쪽 독자 모두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이 책이 과학적 지식으로만 읽히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지식을 통해 삶과 문학과 예술과 사회에 대한 통찰까지 가능할 수 있었던 나의 독서 경험 때문이다. 같은 의미에서 나는 스티븐 제이 굴드의 글쓰기를 좋아하는데 이제 리사 랜들의 글쓰기도 좋아하게 될 것 같다. [암흑 물질과 공룡들]이여, 어서 번역되길~



덧붙이는 기타 등등


/ 이 책은 번역보다는 교정이 상당히 아쉽다. 탈락된 글자나 오타로 여겨지는 부분이 종종 눈에 띈다. 과학을 다루기 때문에 더더욱 정확성에 만전을 기해야 하는 책이다. 적지 않은 가격을 지불하고 구입하는 독자들과 [사이언스 클래식] 시리즈를 아끼는 독자들을 위해서 출판사는 더욱 분발해주시길 바란다.  


/ 본문에 나오는 그림12의 작은 스케일로의 여행(p122)과 그림70의 커다란 스케일로의 여행(p486)을 연결하면 멋진 스케일 인포그래픽이 만들어진다. 이 그림들을 커다랗게 만들어서 벽면 하나에 바닥부터 천장까지 붙여두면 멋지리라.


/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궁금했던 건 제목이다. 과학 서적에 붙일 만한 제목은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 때문에. 왜 이 제목이 붙었는지 궁금하면 103페이지부터 찾아보면 된다.


/ 작년 겨울에 [인터스텔라의 과학]을 구입하느라 정작 [숨겨진 우주]는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를 읽고 이번에 [숨겨진 우주]도 구입했다. 다시 읽어보면 [숨겨진 우주]에 숨겨진 의미를 더 잘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 이건 너무나 개인적인 이야기이라 여기 적을 필요도 없는 글이지만 입이 근질근질…;;;; 출판사가 제공하는 책소개 페이지에서 발견했는데 리사 랜들의 생일이 나와 같다! 게다가 띠동갑이다!! 입자 물리학 스케일의 인연이라도 이어져 있다고 믿고 싶다~ㅎㅎ;;;;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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